한국고라니(Korean Water Deer)가 죽은 후 찾아온 까치와 까마귀의 행동을 지켜봤습니다.

이들이 경쟁하며 먹는 것은 고라니의 살점이 아니라 놀랍게도 OO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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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_jHs3GdAyM

까치 둥지의 교훈과 아이티 강진 대참사

 

까치들이 바빠졌다. 연초의 한파와 폭설 때 잔뜩 움츠렸던 모습과는 달리 날갯짓이 경쾌하다. 울음소리도 달라졌다. 추위 속 눈보라 칠 때만 해도 잔뜩 고뿔 걸린 소릴 내더니만 이젠 제법 맑은 소릴 낸다. 겨울을 '진하게' 나면서 득음이라도 한 양 소리가 딴판이다.

그들이 부산 떠는 까닭이 있다. 둥지틀기를 시작한 때문이다. 성급한 까치는 지난해 12월부터 나뭇가지를 물어나르고 있지만 대부분은 1월 중·하순께부터 둥지틀기에 들어갔다. 생각건대 까치가 한반도서 가장 이르게 둥지 트는 새가 아닌가 싶다. 다른 새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시기에 까치들은 태생적인 부지런함으로 남들보다 먼저 한 해 살림을 시작한다. 이 점이 바로 까치의 가장 큰 속성이다.

까치가 다른 새보다 이르게 둥지틀기에 들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둥지를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생태시계에 맞춰 새끼를 기르기 위함이다.

까치둥지는 매우 튼튼하다. 겉으로 보기엔 나뭇가지를 대충 얹어 얼기설기 지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질 않다. 시골서 자란 사람이라면 태풍에 넘어진 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육중한 나무줄기와 함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도 어디 수박 깨지듯 폭삭 부서진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일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튼튼하다.

까치둥지가 튼튼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흉내도 못낼 치밀한 건축 솜씨와 이중구조 때문이다. 무려 1600~2000개나 되는 나뭇가지를 물어다 단단한 부리로 이리 꿰고 저리 엮어 마치 철옹성 같은 둥근 외벽을 만든 다음 안쪽에는 부드러운 식물 줄기와 뿌리, 동물털 등으로 안락한 내부둥지를 튼다. 비바람에도 까딱없는 역학구조라 건축가들도 놀란다. 더욱 경이로운 건 바람이 거센 지역일수록 바깥둥지 모양을 유선형에 가깝게 짓는다는 점이다. 바람에 잘 견뎌내기 위해서다.

까치둥지는 인고의 산물이다. 절대로 얼렁뚱땅 짓질 않는다. 수많은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물어다 짓기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이나 걸린다. 그러니 자연 겨울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묵은 둥지를 보수해 사용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늦어도 1월 중·하순엔 시작해야 2월 중·하순 혹은 3월 이후 산란이 가능하다. 게다가 알 낳는 기간과 알 품는 기간(17~18일)을 합하면 둥지 틀고 난 뒤에도 거의 한 달 가까이 돼서야 새끼가 태어난다.

까치는 바로 그 기간을 계산한 것이다. 자신들의 새끼가 태어날 때쯤이면 먹이들도 활동하게 되는 생태고리를 익히 알고 있음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하고 오묘한 까치세계다.

자연 앞에 힘 없이 무너진 아이티 대참사를 보면서 언뜻 떠오른 게 까치둥지의 교훈이다. 자신들에게 닥쳐 올 대자연의 역경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모진 겨울 인내를 통해 미리 대비하는 까치들의 지혜. 비바람 아니라 나무가 송두리째 넘어가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만큼은 까딱없게 만들 줄 아는 그들의 유전자가 한치 앞도 못 내다 보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강진발생 가능성은 우리나라도 존재한다. 아이티의 눈물이 결코 남의 집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조급증으로 얼렁뚱땅 지어진 건축구조물이 아직 남아있지는 않은지. 내진시설 강화책과 함께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아울러 급변하는 자연현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개구리가 뜀 뛰듯 언제 어디서 어떤 시련이 돌발할 지 모르는 게 작금의 지구환경이다.

위기의 시대, 급변의 시대에 절실한 게 전천후 대비 자세다. 나라는 나라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만사 불여튼튼의 마음가짐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금 바로.

까치 얼어 죽 듯 짐승도 사람도 얼어붙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 하나가 있다. 해가 떠도 일어나지 않고 자꾸만 이불속을 파고드는 어린 나를 향해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얘야, 밤새 뒤꼍에 까치가 하얗게 얼어죽었으니 얼른 일어나 주워와라."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게 대여섯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그땐 진짜인 줄 알고 뒤꼍엘 가봤다. 없었다.

죽은 까치는 커녕 산 까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이웃집 애가 먼저 와서 주워갔단다. 그 뒤로도 뒷산,앞산,동구밖 등 장소만 바꿔가며 걸핏하면 하얗게 얼어죽었다는 까치는 전혀 보질 못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우리집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린 아이가 있던 집은 겨울이면 으레 까치가 얼어죽었다.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어머니들의 이같은 농담이 어린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줘 어서 일어나라고 하는 지혜였다는 것과 얼어죽은 까치가 하얗게 내린 서리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뜬금없이 얼어죽은 까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정서가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예전엔 까치소리를 들으면 기쁜 소식이나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 여겼는데 요즘엔 되레 까치가 진짜로 얼어죽는 게 반가운 소식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세태다.

길조를 넘어서 시조(市鳥)니 도조(道鳥)니 국조(國鳥)니 떠들 땐 언제고 이제와 망나니 대접을 하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이다.

언제 그들이 대접받기를 원했는가. 반가운 새니 시,도,나라를 대표하는 새니 했던 것도 다 사람 입에서 나왔지 언제 그들 입에서 나왔는가.


유해조수도 그렇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했다 하여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해조로 몰아세운 것 역시 우리들이다. 그들은 단지 둥지 틀 장소가 모자라 전봇대에 둥지 틀고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과수에 입질 했을 뿐이다. 둥지 틀 장소와 먹거리 부족은 누가 가져왔는가.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도 편견이다. 그 원인 역시 사람이 불러왔다.

 

더 큰 문제는 종 전체를 싸잡아 망나니 취급하는 일이다.

까치라고 해서 모두 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하는 건 아니다. 일부만 그런다. 엄밀히 따지면 피해를 주는 현행범은 그 일부다.

어느 한 사람이 강도짓 했다고 해서 사람 모두를 강도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수렵철인 요즘 순환수렵장 지역은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냥꾼은 많은데 짐승이 보이질 않는다. 멧토끼,고라니,멧돼지 보다 사냥개 수가 더 많다.

꿩과 멧비둘기는 물론 각 하천에 그 많던 흰뺨검둥오리며 청둥오리,비오리,논병아리 등도 모두 다 꽁지를 감췄다.

수렵장 운영 한 달이 지나면서 전혀 딴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관할 기관에 신고된 포획건수는 극소수다. 신고 건수로만 보면 소위 '엽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껏 '공포탄'만 쐈다는 얘기다. 그럴 리 없다. 잡은 사람이 신고토록 돼 있는 현행규정의 모순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가 근처서 드물게 만나는 까치나 까마귀의 행동도 달라졌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구잡이 총질에 얼마나 놀랐으면 낯선 사람, 아니 동네로 접어드는 낯선 차량만 봐도 똥줄이 빠져라 내뺀다.


사람들도 놀라 있다. 순환수렵장내 사람들 얘기다. 오죽하면 그들은 요즘 가까운 산은 커녕 밭에도 못 간다. 행여 짐승으로 오인돼 졸지에 탄환밥이 되지 않을까 겁 나서다.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써도 날뛰는 사냥개가 무섭단다.
수렵기간은 아직 석달 남았는데 까치도 얼고 들짐승도 얼고 사람들도 얼어 붙었다. 꽁~꽁.

새해엔 ‘로드킬’ 없는 세상을 꿈꾸자

 
 두 달 전 일이다. 괴산호 생태 탐사를 위해 산막이란 마을에 들어가 있는데 괴산 청천의 한 후배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화양동 계곡으로 통하는 도로변에 엄청 큰 새가 죽어있다며 숨 넘어가는 소릴 한다.

   예감이 좋질 않아 곧바로 달려갔더니 역시나 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였다. 덩치와 발톱,부리로 보아 1년도 채 안된 유조였다. 특별한 외상은 없는데 몸속 뼈가 다 으스러졌다.

   로드킬(Road kill)이다. 자기 혼자 먹이잡이 나왔다가 지나가는 차량에 부딪혀 횡사한 것이다. 위에 내용물이 있나 보니 비어 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파 기진맥진했으면 지나가는 차량도 못보고 피하지 못했을까.

   설령 어린 개체라 하더라도 시력과 청력하면 그 어떤 야생동물보다도 뛰어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가 아니던가.
 

   지난 주엔 달래강의 겨울철새를 촬영키 위해 충주 인근 수주 팔봉쪽으로 향하는데 바로 앞차가 느닷없이 급정거 하면서 휘청거렸다. 아차 싶어 차밑을 보니 금새 피가 흥건했다. 너구리였다. 야행성이라 주로 밤에 활동하지만 그 역시 굶주린 배를 참지 못하고 한낮에 먹을거리 구하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또 3일 전엔 청원군 미원면 달래강변 도로서 고라니 한 마리가, 그 이튿날엔 비슷한 장소서 족제비 한 마리가 처절한 죽음을 맞았다. 생활권이 괴산 청천인 데다 야생동물이 많이 사는 달래강변을 자주 찾다 보니 요즘 들어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 사체들을 부쩍 많이 보게 된다.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무관심이다.

   지나는 운전자들은 대부분 목격 순간만 잠시 얼굴을 찡그릴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 집 강아지가 그렇게 됐다면 아마 그렇게 황급히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들짐승을 직면했다면 얼마나 당황하고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란 생각도 별로 않는다.
 당국의 노력도 너무나 미흡하다. 최근 들어 환경부가 인터넷 웹진을 통해 로드킬의 심각성을 알리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까마득하다. 고속도로 혹은 신설도로에 전시품처럼 만들어 놓은 생태도로란 것도 실로 가관이다. 어린아이에게 밧줄위를 걸어 강물을 건너라는 격이다. 야생동물들은 서커스단의 조련된 동물이 아니다.

      
 로드킬 당한 사체들을 신속히 제거 처리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오죽하면 도로마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사체가 오고 가는 차량에 의해 짓밟히고 또 짓밟혀 아예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는 곳이 즐비하겠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처분(?)은 늘 까치와 까마귀 몫이 된다. 이동통로가 졸지에 사선(死線)으로 변한 것도 억울할 판인 데 짓밟히고 짓찟기고 형체도 없이 ‘노상분해’되는 팔자가 곧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이다.
 기왕 나온 김에 까치와 까마귀 얘기 좀 더 해야겠다. 요즘의 까치와 까마귀를 자세히 보라. 그들이 왜 도로변을 맴돌고 있는가. 바로 로드킬 때문이다. 그들은 항시 도로변을 맴돌고 있다가 로드킬 사체가 발견되면 곧장 몰려든다.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견인차 같다. 질주하는 차량도 겁내지 않는다. 우리의 무관심은 결국 까치와 까마귀들의 행동까지 변화시켰다.


 이젠 로드킬 방지를 위한 특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전시행정에 그치지 말고, 국내 전 도로를 그야말로 안전한 도로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드킬 없는 도로, 그것은 곧 사람도 안전한 도로다.
 우리의 무관심이 까치와 까마귀들의 행동까지 뒤바꾸어 놨으니, 이번엔 우리의 관심으로 그들을 더 이상 로드킬 사체나 탐내는 ‘걸조(乞鳥)의 굴레’에서 벗어나게끔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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