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철, 짐승도 떨고 사람도 떨고 있다
며칠전 청원ㆍ괴산 경계의 한 마을에선 별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130kg이나 되는 커다란 멧돼지가 마을옆 봇도랑에 빠져 죽은 것이다. 시멘트 구조물이긴 하지만 너비와 높이가 고작 1m 남짓하고 물도 말라있는 봇도랑이기에 모두들 의아해 했다.
위급상황이 벌어지면 사냥개도 쉽게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민첩하고 괴력을 발휘하는 야생 멧돼지가, 그것도 자기 키의 한 길도 채 안 되는 도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객사하다니. 총에 맞아 창자가 밖으로 나와도 그것을 씹어가면서 덤벼들고 또 덫에 걸리면 발목을 끊고라도 도망치는 악착스러움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멧돼지이기에 의아심은 더욱 컸다.
주민들에 의하면 당시 그 멧돼지는 특별한 외상도 없었고 병들어 쇠약한 상태도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얼마나 발버둥 쳤으면 발굽이 다 까지고 두눈은 부릅뜬 채 앞발을 난간에 걸치고 죽었단다.
또 엊그제엔 이런 일도 겪었다.
멧돼지가 죽은 곳서 아주 가까운 농로를 지나치다 고라니와 마주쳤다. 대낮에 고라니와 마주친 게 이상한 게 아니라 그 고라니의 행동이 이상했다. 맞은 편서 황급히 달려오던 고라니는 차를 보자마자 맹수를 만난 양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똥줄이 빠져라 달아났다. 헌데 뛰는 모습이 영 이상했다. 한쪽 다리를 저는 것이었다. 깨금발을 뛰듯 엉덩이를 실룩거리던 그 고라니는 한참 뒤 다른 장소서 다시 마주쳤을 때도 역시 기겁을 했다.
당시 필자는 겨울철 야생동물을 촬영하느라 좁다란 농로를 매우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던 중이어서 평소 같으면 고라니가 그렇게 까지 놀라 허둥대진 않았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별안간 하천 건너편서 총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게 답이었다. 총소리를 듣는 순간 두 가지 의문점이 풀린 것이다.
멧돼지가 비명횡사하고 고라니가 깨금발로 달아나던 장소는 다름 아닌 청원군 경계와 바로 이웃한 지역이다. 청원군 지역은 올겨울 순환수렵장이 운영되는 곳이다.
해서 이곳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연일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졸지에 사냥밥 신세가 된 야생동물들은 살길 찾아 인근 타지역으로 몸을 피하고 있다. 봇도랑에 빠져 죽은 멧돼지 역시 청원지역서 사냥꾼에 쫓겨 ‘피난’하다 기진맥진해 참변을 당했다.
비록 청원 뿐만 아니라 진천,음성,제천 등 순환수렵장이 운영되고 있는 지역의 야생동물들은 요즘 편안할 날이 없다.
그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는가는 그들의 행동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어찌나 사람을 무서워하는지 달리던 차가 멈춰서는 시늉만 해도 즉각 달아나거나 긴장한다. 총을 쏠까 두려워서다.
지자체마다 돌아가면서 순환수렵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유해조수를 구제하고 건전한 수렵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제도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다.
늘어난 들짐승 때문에 농사철 내내 밤잠 설치는 산간주민들의 애타는 농심도 잘 알고 있고 1년을 학수고대하며 수렵철을 기다려온 엽사들의 기분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몰지각한 엽사들의 그릇된 총질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수난 당하고 농촌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데 있다.
예전의 엽도(獵道)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날짐승이 땅이나 물위에 있을 땐 절대 쏘지 않고 한번 놓친 들짐승은 뒤쫓지 말아야 함에도 기필코 잡겠다는 듯 막무가내다.
인가에선 총소리를 내지 않는 게 도리인데 걸핏하면 지붕과 마당위로 총알이 날아든다.
주민들은 하소연하고 싶어도 총 든 이들이기에 함부로 말도 못한다.
짐승도 떨고 사람도 떠는, 그래서 더 으스스해진 곳이 요즘의 순환수렵장 부근 산간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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