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야 산다'

 

육상선수가 머리맡에 붙여놓은 좌우명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소매치기배들이 매일아침 직장(?)에 나가면서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행동수칙도 아니다.

 

이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모든 생물들에게 떨어진 지상 최대의 과제요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나무이건 풀이건 동물이건 간에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빠르게 움직이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이러한 절체절명의 운명 속으로 몰아 넣었을까.

 

그것은 바로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지구가 더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 원인이야 많지만 빙하시대가 끝난 지난 1만년 동안 지구온도는 5도 가량 높아졌고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돼 불과 1백년 사이에 그같은 기온상승이 일어난다.

 

그 결과 해수면이 높아져 많은 지역이 바다에 잠기고 한 때 농사를 지어먹던 땅들이 사막으로 변해버려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

 

그러나 사람 이외의 생물, 특히 이동성이 적은 동물이나 식물들은 이러한 기온변화에 쉽게 적응 또는 이동하지 못하고 도태돼야 하는 절박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더욱이 과거에는 기후변화가 더디게 이루어져 전체 생태계가 적응 또는 이동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져 보다 빠른 적응과 이동을 요구하고 있다.

 

식물들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들보다 이동성이 적은 까닭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 접해 있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물들은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위도상으로는 북쪽으로 약 64km 이동해야 하고 고도상으로는 약 55m 이동해야 전과 같은 서식조건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기온이 1도 올라갔을 때 북쪽으로 약 64km 이동하거나 고도상으로 약 55m를 이동하지 않으면 호된 시련을 겪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우리 나라에서 남방계 식물로 알려졌던 보춘화(춘란)와 사철란 등이 자꾸만 북쪽으로 분포지를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수 작물의 주 재배지가 바뀌고 있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식물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생물이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들이다.

 

민물고기들은 비록 식물보다 자체이동성은 크지만 이 강에서 저 강으로 옮겨갈 수 있는 도강(渡江)능력은 없다.

 

더구나 식물들은 자체 이동력이 없는 대신 씨앗이나 홀씨를 날려 서식지를 옮겨 갈 수 있지만 물고기들에겐 그러한 능력도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민물고기들의 개체수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수온변화에 민감한 종들은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것들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의 냉수성 어종인 산천어와 금강모치가 갈수록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자연생태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비단 남획과 남벌, 환경파괴와 같은 인간의 직접적인 간섭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행위, 즉 이산화탄소와 프레온가스, 메탄가스, 아연화질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도 이젠 그에 못지않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인간이기주의는 갈수록 극에 달하고 있고 그로 인해 지구온도는 점차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어지러운 세상. 그 혼란의 세상에서 생물들은 갈팡질팡해 가며 '살아남기 위한 바쁜 몸놀림'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한없이 내달려야 하는 사막의 작은 동물들처럼...

 

아니, 붙잡히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잽싸게 내 튀는 어느 TV광고 속의 사내처럼...

 

추억 속 랜드마크 '금강'은 이제 슬프다

 

 

금강은 특별하다. 전북서 발원해 1천리를 굽이치고도 다시 전북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큰 강 치고 발원지와 종착지가 한 도(道)에 있는 건 금강 뿐이다. 그러면서 물줄기는 전라 경상 충청을 아우른다. 그래서 삼기(三岐)의 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강을 금강답게 특징 지웠던 것은 금빛 백사장을 끼고 수놓 듯 흐르던 푸른 물결이었다. 오죽했으면 비단강(錦江)이라 했겠는가.
푸른 물빛과 함께 곳곳에 펼쳐졌던 황금빛 모래사장은 가히 금강의 대명사였다. 대전 인근의 신탄진과 청원 부용의 금호리 일대는 해수욕장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이미 강수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은 지류 곳곳에도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미호천이다. 지금도 청주시민의 추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팔결다리 백사장과 까치내 백사장은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서 손꼽히던 명소였다.

 


금강은 또 여러 생명체를 껴안은 생명의 강이었다. 서식 환경이 다양하니 그곳에 깃든 동식물도 다양할 수밖에. 물고기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에 오로지 금강수계에만 사는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Ⅰ급)를 비롯해 어름치(〃 238·259호), 감돌고기(멸종위기Ⅰ급), 흰수마자(〃), 퉁사리(〃), 꾸구리(〃Ⅱ급), 돌상어(〃), 둑중개(〃), 금강모치, 종어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소중한 물고기들이 지천했다.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i-미호종개의 학명)'의 주인공 전북대 김익수교수가 '미호천엔 색다른 물고기가 살 것'이란 학술적 상상을 가짐으로써 결국 미호종개를 발견해 냈던 모티브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봐왔던 미호천 모래사장이었다. 금강은 또 '물고기 할아버지' 고 최기철박사의 학문적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금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류이긴 하지만 금강 언저리서 태어나 그 물에 멱 감으며 자랐고, 언론사에 몸 담은 뒤론 줄곧 '주요 출입처'로서 늘 관심을 가져왔다. 금강 토박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요 당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금강은 슬프다.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렜던 본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적어도 비단강 시절의 금강은 이젠 없다. 속살이 훤히 비치던 푸른 물결도, 금가루가 금세 묻어 나올 것만 같던 모래사장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생명의 숨소리도 야위어 있다. 부여의 진상품이던 종어는 오래 전에 절종됐고 어름치는 수십년째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인공복원됐다. 뿐만 아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랫바닥을 훑기만 해도 한 줌씩 잡혀나왔던 재첩은 물론 갈퀴질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튀어나왔던 모래무지,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떼지어다닌다 하여 멍석이라 불렀던 잉어떼들…. 모두가 옛날 얘기다.

 


강은 자체가 생명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수십,수백 억 년을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에 따라 모습을 갖춰온 복합생명체다. 그러나 그같은 복합생명체도 '인위'에는 약하다. 강의 최대 천적은 인간이다.
어느날 졸지에 물흐름이 바뀌고 곳곳이 단절된 채 상하류가 뒤죽박죽 된 것도 사람에 의해서요, 한반도 형성기부터 뿌리 내려온 물고기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져간 것도 사람에 의해서다.

 


금강은 이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뜩이나 벼랑끝 신세이던 금강이 목하 4대강 사업의 손안에서 '조각(彫刻)'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숱한 세월을 이어온 자연의 라이프사이클에 감히 마구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금강의 라이프사이클, 그 와중에 우리들 추억속 랜드마크까지 갈가리 '조각'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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