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익 찌익…." 아침부터 요란하다. 새끼가 부화한 지 10여일 지나면서 소리의 톤이 점점 높아진다.

우리집에 동거하는 야생 딱새 얘기다. 어미는 어미대로 먹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동 트는 새벽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먹이를 물어다 주는 중간 중간엔 또 새끼 배설물까지 물어다 버리는 지극정성까지 보인다. 연중 가장 바쁜 어미새들의 몸짓, 작지만 그 무엇보다도 커 보이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펼쳐지고 있다.

 

산자락에 지어진 조립식 주택. 거실과 주방이 따로 없는, 그런 주방 한 쪽의 가스레인지 송풍기 안이 딱새가 둥지 튼 공간이다. 송풍기 구조상 내부를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사실상 한 주방 한 거실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셈이다. 출입만 달리 할 뿐이다. 그들은 벽바깥 쪽 배기구가 유일한 출입구다.
송풍기 안과 밖이란 차이만 있을 뿐 한 지붕 아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로의 움직임이 소리로 전달된다. 야생과 인공의 사이엔 얇은 철판만 존재한다. 새들에 대한 호기심을 늘 품고 살던 어린시절 같았으면 벌써 무슨 꿍꿍이를 써서라도 그들이 몇 마리인지 얼마나 컸는지 직접 확인하고야 말았겠지만, 지금은 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또 소리로써 그들 속사정까지 꿰뚫고 있다.

 

그들과의 동거가 이미 10년째 되는 데다 1년에 2번 가량 새끼 치니 한식구나 다름없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나름대로 체득한 경험까지 있어 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생활사는 '내 손 안에 있소이다'다. 이제 막 짝짓기 할 때의 소리와 알을 낳고 품을 때,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때, 새끼가 다 커 둥지를 떠날 때의 소리가 약간씩 다르다. 위급 상황에선 또 다른 소리를 낸다.
조류학에선 이를 Song과 Call로 구분하는데, Song은 말 그대로 지저귐이요 Call은 상대방을 부르거나 다른 신호를 보내기 위한 소리다. 새끼가 먹이 달라고 보채는 소리와 천적을 알리는 위험신호도 Call에 속한다.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지금의 딱새가족은 어미를 포함해 모두 6~7마리로 추정된다. 또 새끼들은 일주일 뒤면 이소(離巢)할 것으로 보인다. 둥지 떠나는 날이면 늘 그래왔듯이, 아침부터 둥지 안팎이 유난히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어미는 바깥세상을 향해 첫 날개 펴는 새끼들에게 어서 용기내라고 부지런히 Call하고, 새끼들은 두려움반 호기심반으로 계속 소리(CAll) 지르다가 어느 순간 날갯짓하면 이소 과정은 끝난다.

 

야생 딱새와 동거해 오면서 배운 게 있다. 하나는 새끼들의 학습과정이다.

예들 들어 새끼들이 처음엔 작은 인기척에도 놀라 그것이 어미 소리인 양 예민하게 반응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무뎌져 나중엔 큰 소리에도 꿈쩍 않는다는 점이다. 이 번만 해도 그렇다. 처음 부화해선 물 트는 소리, 가스불 켜는 소리, TV 소리도 어미 소리로 착각해 짹~짹~ 반응하더니만 며칠 지나선 같은 벽의 욕실문 여닫는 소리에도 무덤덤해졌다. 단 며칠 만에 어미 소리를 각인한다는 증거다.

 

또 하나는 아무리 작은 딱새라도 어느 정도 사리분별은 한다는 점이다. 낯선 사람과 차량은 경계하면서 나와 내 차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사나운 개도 목줄에 묶여 있으면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냥 새대가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들에게도 믿음이 있다는 점이다. 온갖 소리가 코앞에서 들리는 인공적인 공간을, 그것도 송풍기 팬이 언제 돌아갈 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공간을 계속해서 보금자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믿음 아니겠는가. 이 점이 내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송풍기를 돌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누룩뱀의 꾀꼬리 포식, 그 생생한 장면을 찍다

 
 지난 2일엔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하는 진기한 광경을, 그것도 야외 사진촬영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생태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날 아침 카메라 가방을 챙기면서 오늘은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다 문득 며칠전 꾀꼬리 소리가 들렸던 괴산의 한 밤나무숲이 떠올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니 꾀꼬리 한쌍이 날카롭게 경계음을 냈다. 낯선 방문객이 침범했다는 자기들만의 신호였지만, 새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기에 오히려 “우리 둥지 이 근처에 있소” 라는 고백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위를 살핀 지 3분도 안돼 나뭇가지에 매달린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둥지 한구석으론 불그스레한 새끼 주둥이까지 보였다. 몸집이 어느 정도 자라 있다는 증거다. 직감은 적중했다. 부화한 지 열흘 이상 지난 새끼 4마리였다.


 위장텐트를 치고 곧바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꾀꼬리의 먹이장면은 이미 몇 년 전 촬영한 바 있으나 그 땐 필름카메라였다. 해서 올핸 기필코 디지털카메라로 다시 찍기로 마음먹어 오던 터였다.
 망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길 3시간여. 말이 3시간여지 불과 1㎡도 안 되는 좁은 텐트안에서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꼼짝 않고 갇혀 있기란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무릎에 쥐가 나고 허리가 저려도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했다. 한데 그 놈(?)의 꾀꼬리 어미들은 왜 그리 의심이 많은지. 웬 낯선 사람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물체속에 들어가는 것을 본 어미들은 계속 경계음만 낼 뿐 먹이를 물어다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2개의 배터리 중 하나는 이미 소진한 상태여서 조바심까지 생겼다.


 그래도 오기가 있지, 너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막 다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니터에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둥지안에 있던 새끼 한 마리가 돌연 공중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눈을 의심했지만 우선 셔터부터 눌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날개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새끼가 공중부양하듯 허공으로 떠올라 날개를 푸드득 거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을 확대해 보았다. 아뿔사! 뱀이었다. 1m쯤 되는 커다란 누룩뱀 하나가 나무에 기어올라 새끼를 낚아챈 것이다. 잡힌 새끼는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 쳤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날카로운 이빨에 머리를 물려 입안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였다. 놀란 건 어미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끼가 뱀에게 잡혀먹히는 것을 본 어미들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캬~아 캬~아! 최악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어미들의 다급한 콜음(CAll音)이 일순간 숲속을 뒤덮었다. 평소 낯선 사람이 둥지 근처만 지나가도 잽싸게 공격하는 꾀꼬리지만 그날따라 속수무책이었다.


 손에 땀이 났다. 더위도 잊혀졌다.

   아프리카 밀림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야생의 먹이사슬 현장을 생비디오로 보며 사진촬영하는 행운이 나에게도 오다니,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기회를 놓칠 세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동영상을 합쳐 2백컷을 찍었다.


 덕분에 소중한 경험과 자료를 얻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사흘을 더 그곳을 찾고도 어미가 먹이주는 장면은 찍지 못한 것이다. 첫날의 끔찍함 때문인지 그날 이후 나만 나타나면 처절한 CALL음을 내며 도무지 촬영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를 보면 누룩뱀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결국 연민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우리 생태계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누룩뱀의 포식장면, 그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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