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충북의 산야, 누구 책임인가

(아시아뉴스통신 2016년 4월9일자 보도기사. 원문보기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999310)

 

 

봄은 왔으나 조용하다. 예전 같으면 1년을 기다려 온 봄꽃들이 망울을 터트렸다고 반가운 소식이 제법 날아들었을 시기인데 올핸 꿩 구워먹은 듯 조용하다.

 

도심의 벚꽃과 개나리는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정작 이 산야의 주인공인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진달래, 산벚나무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그들이 그렇게 흐드러지게 핀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꽃소식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카메라 둘러메고 꽃마중 가자고 하는 기별을 기다리는 자체가 욕심인가도 싶다.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던가. 봄은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 아니 봄은 왔는데 봄 같은 봄을 느낄 수가 없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지난 주말까지 내리 4주째 괴산과 보은지역 등으로 봄꽃 답사를 나갔지만 반가운 꽃모습은커녕 매번 실망과 허탈감만 잔뜩 안고 돌아왔으니 춘래불사춘도 지독한 춘래불사춘이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노루귀와 깽깽이풀 등 봄철을 대표하는 야생화들이 자생지에서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름깨나 알려지고 희소가치가 좀 있다는 야생화는 어김없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속도 또한 더욱 빨라졌다.

 

올해 이런 일도 일어났다. 기자가 ‘비밀의 정원’처럼 소중히 아끼던 자생지들이 졸지에 파괴돼 야생화 자생지로서의 가치를 잃고 말았다. 마치 도둑맞은 듯 야생화의 보고(寶庫)에서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지난 2008년 취재 당시 알게 된 이후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을 누가 알세라 비밀 아지트처럼 여기면서 봄이 되면 찾아가 그들의 안녕을 확인해 오던 정든 자생지들이었기에 그 상실감과 실망감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듯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그들 자생지를 가보고 또 가보고 올해 들어 네 번째 찾아갔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지난 주말 그들 자생지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되돌릴 땐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충북 산야가 만신창이 됐다. 전국에서 어디 충북만 이런 상황이겠냐 마는 이 지역 산야는 이미 드러날 것 다 드러낸 알몸 상태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나친 과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4주 동안 기자의 두 눈으로 확인한 바가 그렇다. 그것도 혼자서 답사를 해 얻은 결론이 아니다. 생태사진 전문가와 함께 했다. 그 역시 현장을 둘러보고는 나오는 게 한숨뿐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자생지에서 주인공인 봄철 야생화가 사라지면 그들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생지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생지는 그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과 또 그 식물에 기대어 사는 다른 생명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이루는 그릇이다. 규모가 크건 작건 한 자생지내 생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게 자연이고 법칙이다.

 

식물의 자생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자생지가 속한 지역의 생태학적 특징을 대변해 주는 바로미터다. 식물의 자생지가 건강하면 그 지역 산림 생태계도 건강하기 마련이다.

 

그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생지에서 해마다 반가운 얼굴로 각기 존재감을 드러내던 소중한 친구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심각한 일이다.

 

이번 네 번의 답사를 통해 확인한 비운의 주인공들의 자생지 상황은 이랬다.

 

먼저 깽깽이풀 자생지는 한 마디로 전멸 수준이었다.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됐다 지난 2012년 해제된 전력이 말해주듯 아직도 ‘귀한 몸’ 대접을 받는 이 야생화는 자생지 4곳 모두 완전히 망가졌다. 두 명이 네 번을 찾아가 이 잡듯 뒤졌는데도 단 한 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노루귀 자생지는 4곳 중 단 한 곳에서만 극히 적은 개체가 확인됐다. 역시 두 명이 네 번 답사해서 10개체도 안 되는 노루귀를 찾았으니 자생지로서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다른 야생화들 역시 상황은 같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있어야 할 자리에 그들 야생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두 세 가지로 함축된다. 우선 ‘사람의 손’이다. 무엇이든 귀하고 아름다운 야생화가 있다면 너도나도 달려가 싹쓸이 해오는 전문 채집꾼들이 문제다.

 

여기에 더해 일부 야생화 마니아들의 지나친 욕심이 야생화 절멸을 앞당기고 있다. 한 두 개체쯤이야 캐가도 괜찮겠지 하는 위험한 생각이 화를 자초하고 있다.

 

산림당국의 안이한 행정도 큰 문제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큰 문젯거리로 확인된 게 바로 ‘개념 없는 산림행정’이다.

 

괴산군 관내의 한 깽깽이풀과 노루귀 자생지는 목불인견이었다. 충북도 산림관련 사업소가 이들 깽깽이풀과 노루귀 자생지에 사방댐 공사 등을 하면서 완전 폐허로 만들어왔다. 사방댐 공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아니라 공사를 하더라도 사전 조사를 실시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마련한 후에 하라는 얘기다.

 

또 산림당국의 허가로 이뤄지고 있는 산림의 간벌과 벌목도 문제 중의 문제다. 야생화 자생지와 산림 생태계를 급속도로 파괴하는 원인이 되고 있디 때문이다. 허가 당시 숲의 하부 식생에 대한 사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간벌 대상, 벌목 대상의 나무를 중심으로 행정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바로 야생화의 전멸 내지는 하부 식생대의 파괴 현상이다.

 

청주시 관내의 낭성면 일대 ‘앉은부채’ 자생지가 벌목에 의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또 이번 답사에서도 괴산군 청천면 일대 깽깽이풀 자생지가 벌목에 의해 완전 초토화 됐음을 확인했다.

 

산림 생태계, 숲의 하부 식생을 보호해야 할 산림당국이 오히려 그들을 전멸시키고 파괴하는 당사자가 된 이 현실. 누구 잘못이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고개부터 갸우뚱 해진다.

 

아울러 야생화 마니아라고 하면서 또 야생화 전문농장이라고 하면서 보기만 하면 싹쓸이 해 가는 양심 불량의 사람들을 그 어느 누구에게 단속해 달라고 해야 할지 헷갈릴 뿐이다. 혹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겨놓은 건 아닌지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봄이 와도 봄 정취가 사라진 우리 산야,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어릴때 '금단의 장난'을 한 적 있다. 제비를 올가미로 잡았다 풀어준 것이다.

함부로 대하면 죄받는다는, 그래서 성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던 제비를 산 채로 잡았다 풀어주는 별난 짓을 벌였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체 제비 몸뚱이가 얼마나 가볍기에 가느다란 거미줄에 걸렸을 때 거미줄이 끊어지지도 않고 쉽게 빠져 나오지도 못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에 엉뚱한 짓을 벌였던 것이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두려워서다. 해서 아랫집 친구를 꼬드겼다. 한데 그 친구 왈 "그 까짓것 뭘 겁내냐"며 선뜻 응했다. 더구나 자기네집 제비를 자기가 직접 올가미 쳐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거사(?)는 그렇게 이뤄졌다.
제비는 정말 가벼웠다. 솜뭉치 같았다. 몸에 살점은 없고 털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제비를 만져본 다음 곧바로 풀어줬다. 다행히도 그 제비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친구네집 둥지에 머물면서 새끼를 까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엉뚱했던 당시 그 경험 덕에 제비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이유를 알긴 했지만 가슴속에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한반도에 제비가 언제 찾아오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려는 노력이 수년전 진행된 바 있다. 아마추어탐조동호인연합이 그 주체로 이 모임에서는 지난 2006~7년께 전국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른 봄철 제비를 목격한 장소와 시기를 온라인을 통해 제보 받았다. 이른바 제비 도래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비 도래전선이란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를 각 지역에서 기록해 날짜별로 선으로 연결한 것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탐조동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제비 전선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제비는 이동기의 기온 여하에 따라 매년 도래날짜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일러지는 경향이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실례로 지난 2007년의 경우 3월 이전인 2월 26일에 전남 해남 영암호 간척지에서 1마리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3월 3일엔 전남 홍도에서 3마리, 3월 5일엔 경기 고양 서오릉부근에서 2마리, 3월 6일엔 충남 서산에서 1마리가 목격됐다.
이같은 도래현황은 예년에 비해 열흘에서 보름가량 이른 것으로 특히 홍도의 경우 2006년엔 3월 15일께 첫 도래보고가 있었던 것에 비해 무려 17일 가량 이르게 도래했다. 당시 동호인연합 관계자는 "2007년 겨울 유례없는 이상기온 현상으로 생물들의 생태시계가 혼돈을 일으켜 제비들도 이동시기가 일러진 것 같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의 조사자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점차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또다른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잦아진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귀향길이 황천길로 바뀌는 불운한 제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월동지를 떠날 땐 푹했던 날씨가 도중에 혹은 한반도 도착 즈음에 돌변하면서 제비가 탈진하거나 얼어죽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계절은 어느덧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다.

성급한 제비들은 이미 한반도 남쪽 어느 곳에 고단한 날개를 접었을 법도 한데 아직 발견소식이 없다. 봄은 왔으나 제비가 보이지 않고 있다. 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해야 할까.
봄과 겨울이 마냥 널뛰기하는 동안 이역만리 날아온 제비의 꿈이 산산이 깨지고 있다. 날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날씨를 누가 불러왔는가. 흩어진 제비의 꿈에 혹 우리 미래의 꿈은 없는지. 조용한 봄에 조용히 되새겨 볼 일이다.(2010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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