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뛰는 멧돼지, 설설 기는 대책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더니, 정작 호랑이가 사라지고 나니까 엉뚱하게도 멧돼지가 판을 치고 있다. 남한에서의 마지막 호랑이 기록이 1922년 경북 대덕산 호랑이이니, 실로 90년 만에 속담을 바꿀 만한 기막힌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호랑이 뿐만 아니라 표범, 늑대, 여우까지 이른바 먹이사슬의 최강자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이 땅의 무주공산. 그래서 더욱 기고만장해졌는지 멧돼지로 인한 희한한 일들이 연일 그치지 않고 있다.
벌건 대낮에 도심지로 내려와 애먼 사람을 물어뜯는가 하면, 수많은 자동차가 총알처럼 내달리는 도로 위로 뛰어들어 운전자들을 혼비백산케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달리는 열차에 몸을 내던져 투신자살(?)하는 소동까지 벌이고 있다. 산골마을 농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멧돼지들의 텃밭으로 변해 주인 농부들이 허구한 날 멧돼지 눈치를 살펴가며 농사 짓고 심지어는 전문 퇴치꾼인 한국수렵협회 회원이 멧돼지를 잡다가 물려 죽는 일도 생겨났다.
영화 '차우'에서의 성난 멧돼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인간세계를 향한 대자연의 분풀이 같기도 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얼마나 똥줄이 탔으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간 영역에 쫓기듯 들어와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겠는가 하는 측은지심도 든다.
멧돼지는 말이 돼지지 사실 맹수나 다름없다. 성질이 급하고 사나우며 날렵하다. 한창 내달릴 때는 시속 40km가 넘는다. 게다가 뾰족한 엄니는 가히 치명적이다. 흥분한 멧돼지는 호랑이도 쉽게 대들지 못할 정도로 위험스럽다.
오래 전 한 사냥꾼으로부터 이런 얘길 들은 적 있다. 한 번은 사냥개들을 데리고 멧돼지 잡이에 나섰는데 가장 아끼는 개 한 마리가 그만 실수해 멧돼지 엄니에 들이받쳤다고 한다. 한달음에 달려가 살펴보니 목 부위가 마치 해부칼로 그은 것처럼 잘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멧돼지 엄니가 그렇게 날카롭고 무서운 줄은 미처 몰랐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한 번은 엽총 사냥을 나갔는데 갑자기 멧돼지와 맞닥뜨려 급한 김에 눈앞에서 총을 쐈다고 한다. 연거푸 두 발을 맞은 멧돼지가 쓰러지는가 싶더니만 이내 일어나 쏜살같이 달려들더란 것이다. 복부가 맞아 배 밖으로 삐져나온 내장이 나무 둥치에 걸리는 바람에 가까스로 화를 면하긴 했지만, 그 때처럼 간이 오므라든 적이 없었다며 손사레쳤다.
오죽하면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이런 말이 전해질까. "한나라를 멸하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은 흉노족을 무척 두려워 했다. 왕망은 고심 끝에 죄수와 노예들을 이용하기로 하고 흉노를 쳐부수면 형 면제와 신분 상승을 약속하고는 전장터로 내보냈다. 그러면서 그들을 부른 이름이 '저돌지용(猪突之勇: 본래는 저돌희용)'이다."
얼마나 막무가내였으면 '멧돼지처럼 앞만 보고 돌진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저돌'은 '앞뒤 가리지 않고 함부로 날뜀'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저(猪)가 바로 멧돼지를 일컫는다.
환경부는 최근 멧돼지 포획틀을 설치해 도심에 출현하는 멧돼지 피해를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길길이 날뛰는 멧돼지를 더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의지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낯선 환경에 당황할 대로 당황한 멧돼지가 생각처럼 얌전하게 포획틀에 갇히면 좋겠는데, 결과는 글쎄올시다다. 얼마 전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포획틀에 갇혀 되돌아온 반달가슴곰이 있긴 하나 야생 멧돼지는 그와는 전혀 다른 상대다.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본 장난 같은 발상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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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소동,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5인조 추격대와 식인 멧돼지의 한판 승부를 그린 영화 '차우'. 최근 빈발하고 있는 멧돼지 소동을 모티브로 한 괴수 어드벤처다. 공교롭게도 국내에서는 이 영화 상영 이후 멧돼지 소동이 더욱 빈발함에 따라 목하 신드롬까지 일고 있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하지만 최근의 멧돼지 소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선 멧돼지만 나타나면 총부터 들이대 사살하고 보는 현 세태가 아쉽다. 멧돼지가 그렇게도 위험한 동물인가.


물론 멧돼지는 위험하다. 화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저돌(猪突)이란 말까지 생겼을까. 이 말뜻엔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는 멧돼지 모습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화난 멧돼지를 전제로 한다. 멧돼지는 보통 새끼를 거느리고 있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 저돌적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러질 않는다.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예는 더욱 드물다.


그런데도 나타나기만 하면 무조건 사살한다. 과잉반응이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 아무리 위험성 있는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도심지 또는 주택가, 도로변에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도 공개된 장소서 총으로 쏴 죽인다는 것은 자칫 '무엇이든 위험하면 죽여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얼마 전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에 걸린 가축들을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살처분했다가 뒤늦게 너무한 처사란 반발이 일자 인도적(?) 살처분이란 지침을 마련했던 기억을 벌써 잊었는가.


해서 제의하건대 대처방안을 좀 바꿨으면 한다. 그들도 엄연한 생명체요 우리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란 점을 고려해 무조건 죽이고 보는 행위는 자제했으면 한다. 인명 피해와 같은 위험 소지가 높아 굳이 급처방이 필요하다면 일단 마취시켜 생포한 다음 살처분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풀어줄 것인지를 결정하되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사살하는 행위는 하지 말길 바란다. 이는 교육상으로도 필요한 일이다.


또 하나. 도심지 등에 나타나는 멧돼지는 대부분 먹잇감이 궁해서 혹은 길을 잃어 방황하다가 본의 아니게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따라서 덮어놓고 맹수취급하는 것 역시 피해망상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왜 갈수록 더 자주 출몰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할 일이다. 야생동물에게 있어 사람은 결코 달갑잖은 존재다. 그러니 사람곁을 찾아오고 싶어 찾아오겠는가. 개체수는 늘어난 반면 서식공간은 한정돼 있기에 사람들과의 활동영역이 겹치면서 맞닥뜨릴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 것 뿐임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멧돼지를 만났을 때의 행동요령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먼저 위협하든가 공격하지 않는 한 덤벼들지 않는 동물이란 점을 주지시키고 당황하거나 소리쳐 예민해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도 상기시켜야 한다. 두렵다고 허겁지겁 달아나는 것도 멧돼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얼마전 한 고속도로에 멧돼지가 뛰어들어 자칫 대형사고를 빚을 뻔한 것처럼 앞으로 그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로드킬 문제'를 보다 심각한 당면과제로 받아들여 대책마련을 서둘렀으면 한다.


앞으로 닷새 뒤면 전국 각지서 순환수렵장이 운영된다. 명목이야 멧돼지를 포함한 유해조수의 구제와 개체수 조절, 건전한 수렵문화 정착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살생을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일에 어느 지자체에서는 신청자 접수시작 3분 만에 무려 1,000명이 몰려들어 곧바로 마감됐다고 한다. 해당 지자체야 신이 났겠지만 그 역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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