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옷날의 외침 하늘이시여!”(2015.6.20일자 아시아뉴스통신 보도)

 

온 나라가 지쳐가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20일로 꼭 한 달째 이어지면서 온 국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외식·유통·숙박·관광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경기가 침체되고 각 분야 종사자들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지역경제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지역이든 아니든 사람으로 붐볐던 거리는 죄다 썰렁하고 식당가, 극장가, 병원가 할 것 없이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당장 가게세며 직원 월급부터 해결해야 하는 소상공인들의 속 타는 하소연이 뙤약볕보다 더 뜨겁다.

 

여기에 더해 봄부터 이어진 최악의 가뭄으로 들녘과 산야도 타들어 가고 있다. 댐과 저수지, 하천 수위가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면서 농심도, 땅도 쩍쩍 갈라져만 간다. 거북등처럼 드러난 농경지에선 절망의 한숨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공사장에 있어야 할 중장비가 한 가닥 물줄기를 찾느라 하천바닥을 연일 파들어 가고 있고 레미콘을 싣고 공사장을 오가야 할 레미콘 차량이 물 한 방울 없어 모가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논바닥에 생명수를 쏟아내느라 바쁘다.

 

또 화재 발생에 대비하고 있어야 할 소방차가 가뭄 해갈부터 도와야겠다며 메마른 농경지에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화재도 화재지만 농부들 가슴에 붙은 가뭄 불부터 끄고 봐야겠다는 다급한 배려에서다.

 

검붉게 타 버린 콩, 고구마 등 작물과 이제 막 심었건만 노랗게 변해버린 모, 그나마 댈 물이 없어 아직까지 모내기를 못한 논바닥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농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기 위해 중장비, 레미콘차, 소방차가 하천과 농경지를 오가는 진풍경을 낳고 있다.

 

이번 가뭄은 비단 농부들뿐만 아니라 하천 변에서 식당업, 펜션업, 캠핑장업 등을 하는 이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가뜩이나 메르스 여파로 예약 손님이 뚝 끊긴 판에 하천수까지 바닥을 보여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름 성수기가 코앞이건만 하천수위는 점점 빠르게 내려가고 메르스 상황은 갈수록 악화일로이니 눈앞이 깜깜하다. 희망이 절벽이라며 볼멘소리들이 높다.

 

우선 당장의 해갈이 시급한데 큰비 소식은 감감하다. 비 소식은 있지만 신통치 않다.

 

워낙 가뭄의 골이 깊은 데다 예상 강수량은 찔끔 수준이니 되레 가뭄만 더 탄다며 걱정만 키우는 상황이다. 다음 주부터 장맛비 소식이 있으나 가 봐야 한다며 별 기대를 않는 눈치들이다.

 

마른장마를 점치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와 불안감을 키운다. 완전 해갈이 되려면 100mm 이상 큰비가 지역에 따라 한 번 내지 두 번은 와야 한다는데 마른장마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보다 못한 지역민들이 곳곳에 모여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이시여!’를 외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농협, 각 군청, 농민단체, 지역의회 등이 나서서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이 측은할 정도다.

 

엎드려 두 손 모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다음 주 북상 소식이 있는 장마 전선을 더욱 끌어 올려 중부 이북지역의 가뭄 해갈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비가 오면 높은 습도 때문에 메르스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 결과처럼 이번 장맛비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펀치까지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인 단옷날에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하늘이시여!”를 외쳐본다. 비록 마음 속의 외침이지만 가뭄도 메르스도 모두 씻겨갈 비를 기대하며.

변덕스런 날씨에 동물도 사람도 넋 나갔다

 
 한밤중 농가에 느닷없이 고라니가 뛰어들고 한쪽에선 너구리가 처마밑에 기어들어 젖은 몸을 말린다.

   낮에는 올망졸망한 꺼병이들이 어미 까투리와 함께 농가 마당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고 마루밑으로는 어린 아이 팔뚝만한 살모사가 기어들어 또아리 튼 채 주인행세를 한다.
   뿐만 아니다. 물가에선 줄풀에 둥지 틀고 알 품던 쇠물닭들이 밤낮 없이 쾃~쾃 울어대며 둥지주위만 맴돌고 빈 까치집에 새끼 깐 파랑새 부부는 먹이 물어올 생각은 않고 연신 땍~땍 거리며 먼하늘만 바라본다.
 

   만화 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희귀한 일들이 요즘 농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생태계 주인공들이 연일 정신없다. 그들의 행동으로만 보면 마치 대지진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이 땅은 요즘 그런 엄청난 일에 직면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이 뽀개진 듯 아예 하늘둑이 송두리째 터진 듯 들입다 쏟아붓는 장마폭탄 행렬에 야생동물마저 모두가 넋이 빠졌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얼마나 똥줄 탔으면 사람 냄새만 나도 칠색팔색하는 야생동물들이 사람 사는 인가로 뛰어들고, 비 오는 날 잠시라도 둥지를 비우면 알이 곯아 새끼농사 망치는 어미새들까지 둥지밖으로 뛰쳐나와 졸지에 ‘청개구리 신세’가 되겠는가. 아무리 자연이 자연에게 내리는 기상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 이 계절의 생태 주인공들에겐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허구한 날 여우가 시집가는 양 변덕 일변도의 날씨는 사람들의 혼줄까지도 홀딱 빼앗아갔다. 터질듯 말듯한 물풍선을 머리 꼭대기에 이고 사는 격이다. 언제 터질 지 어느 곳이 터질 지 종이라도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죽을 맛이다.

 몸까지 피곤하다. 반짝 빛이 들 땐 돌연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진을 빼고, 그러다가도 구름이 몰려올라치면 언제 그랬냐며 돈내기하듯 쏟아붓는 ‘물벼락’에 갑자기 한기를 느끼게 되니 생체리듬인들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세상 온갖 게 다 떠내려간다해도 아무 걱정없는 사람들이야 관심 없겠지만, 요즘 뉴스 듣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절개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산간계곡에 사는 사람들, 물가에 농경지가 많은 사람들, 저지대 상습침수 지역에 사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엔 TV나 라디오를 켰다하면 듣게 되는 “언제까지 몇 백mm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멘트가 마치 “때린 데 또 때릴 것이니 알아서 커버하라”는, 공갈 아닌 공갈로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때린 데만 용케 또 때리는 게 요즘 장마이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변덕스런 날씨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기상청 사람들이다.

여의봉이 요술부리듯 쥐락펴락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신출귀몰하게 변덕 부리는 요즘 날씨 탓에 수시로 기상특보 발령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얼마전엔 한 일기도에 5개의 기상특보가, 그것도 각기 다른 색깔로 컬러풀하게 그려져 예보된 적 있다. 땅덩어리는 한 개의 기압골보다 좁은 나라서 어떤 곳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포비로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발령된 반면 어떤 곳엔 34도의 찜통더위로 뜬금없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어떤 곳엔 초속 20m 바람으로 강풍주의보가, 또 어떤 곳엔 큰 파도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장마철 대기불안정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에 심각한 변화가 온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심각한 변화, 그 변화로 인해 이 땅의 동물과 사람들은 걸핏하면 홍역을 치르게 됐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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