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뜨기 열풍의 부끄러운 경험을 벌써 잊었는가

 

매크로비오틱(Macrobiotic)이 유행하고 있다. 건강을 위한 장수식 식생활법 혹은 식이요법을 말하는데 신토불이와 음양 조화,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을 요체로 한다. 즉 그 지역서 난 자연물을 음양에 맞춰 통째로 먹을 것을 권한다.


1920년대 일본서 주창돼 서양으로 건너가 헐리우드 배우들과 카터, 클린턴 등 유명인들이 실천하면서 유행했다가 2000년대 들어 다시 일본서 열풍이 불자 국내서도 덩달아 붐이 일고 있는 음식문화 운동이다. 어원상으론 생명을 거시적으로 보고 자연에 적응하면서 평안하게 사는 생활법이란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린 이미 오래 전에 터득한 생활법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할아버지적 생활을 돌이키면 된다. 텃밭에서 자란 푸성귀를 뿌리째 뜯어다 이것저것 섞어 차린 할머니 밥상을 툇마루에 앉아 오붓하게 먹는 생활이 곧 그것이다.


그런 것을 국제적 열풍이다 하니까 이제서야 너도나도 따라 하려 하고 동호인 모임까지 생겨나고 있다. 몸에 좋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네 습성이기에 그리 이상할 것도 없고 또 오래 살기 위해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한다는 데 뭐라 말할 생각도 없지만, 그 여파가 엉뚱하게도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으니 문제다.
다름 아닌 최근 불고 있는 민간약초 열풍에다 매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식 열풍까지 합세해 이상한 풍조를 낳고 나아가 과량섭취에 따른 피해까지 속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들레,질경이,돌미나리가 몸에 좋다 하니까 잎과 뿌리, 심지어 꽃과 씨까지 몽땅 채취해다 임의대로 달여 먹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소루쟁이,까마중,인진쑥,조릿대,느릅나무 등도 마찬가지다.
약초와 산나물 뜯던 수준은 옛말이요 아예 싹쓸이판이다. 일물전체식이 유행하기 전엔 그래도 뿌리 정도는 놔두는 게 보통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다.


자연 생태적으로도 문제이고 본초학자들이 봐도 까무러칠 일이다.

제 아무리 약초라 하더라도 종류에 따라 이용 부위가 다르다. 게다가 독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도 있고 채취 시기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해가 안 되면 가까운 한의원에 가 인진쑥을 뿌리부터 꽃대까지 모두 채취해다 진하게 달여먹으면 어떻냐고 물어보라.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인진쑥조차 그런데 소루쟁이처럼 덜 알려진 것들은 어떻겠는가. 소루쟁이는 가축도 먹지 않을 만큼 독성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인터넷글은 "난치병의 명약"이라며 많이 먹어도 무방하다고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는 20여년 전의 부끄러운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서 발표된 쇠뜨기의 강장효능이 잘못 전해져 명약으로 소문나는 바람에 너도나도 부대 들고 쇠뜨기 뜯으러 다닌 게 우리들이다. 결과가 어떠했는가. 쇠뜨기 달여먹은 사람치고 물똥 한 번 안 싼 사람 없을 정도로 혹독한 부작용을 겪고서야 "아, 그게 아니었구나" 했다.


40~50대 이상 사람들은 컴프리를 잘 알고 있다. 고혈압,당뇨는 물론 암까지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문났던 풀이다. 얼마나 선풍적이었나 하면 컴프리를 모르면 문화인이 아니요 다방서 컴프리녹즙 한 잔 안 마셔본 사람은 촌놈 취급 받았다. 그러나 그 뒤 어떻게 됐는가. 컴프리 독성물질이 세포내 유전체구조에 이상을 일으키고 간암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면서 하루 아침에 저주받은 풀이 됐다. 그게 이른바 '컴프리 현상'이다.
뿐만 아니다. 뱀,지렁이,굼벵이,곰쓸개에 이어 호깨나무,산청목,비수리 등 온갖 열풍을 다 겪고도 진시황이 불로초 찾듯 또 다른 영약 열풍에 목말라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비수리, 과연 ’천연 비아그라’일까?

 

 우리나라 콩과 식물 가운데 비수리라는 게 있다.

   싸리처럼 줄기와 가지는 나무 성질을 띠고 가지 끝은 풀의 특성을 지닌 이른바 반관목(半灌木)이다. 쉽게 얘기하면 ‘가는 싸리’쯤으로 보면 된다. 해서 예전엔 부엌이나 앞뜰을 쓰는 작은 비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 길고 잘 휘어지는 줄기는 주로 광주리를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이 식물이 돌연 요즘에 와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니 인터넷 뿐만 아니라 도심지 공원과 노인정, 심지어 시골구석의 마을회관까지 사람만 모이면 비수리 이야기가 나온다.

  가히 열풍이다.
  이유는 이 식물 이상의 정력제가 없다는 소문 때문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비수리는 곧 천연 비아그라’란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소문이 번졌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식물의 거창한 이명(異名)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야관문(夜關門)과 백관문초(白關門草),폐문초(閉門草),대력왕(大力王),천리광(千里光),노우근(老牛筋),음양초(陰陽草)다.
 우선 야관문부터 보자. 한자를 직역해 ‘밤에 빗장문을 열게 하는 약초’란다. 여기서의 문은 여성의 문, 즉 하문(下門)이라니 더 이상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백관문초 또한 기막히다. 백(白)은 낮을 뜻하니 ‘낮 시간 불구하고 빗장문을 열게 하는 약초’란다.
 폐문초는 더 하다. 폐문 즉, ‘문을 닫도록 하는 풀’이니 밤낮 없이 문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하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력왕은 ‘큰힘(大力)도 모자라 뒤에 임금왕(王)까지 붙인 약초’니 일단 잡숴보면 끝이란다. 이밖에도 천리광은 천리 밖에서도 빛이 난다는 뜻이고, 노우근은 늙은 소의 근육까지도 되살리는 약초며 음양초는 남녀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약초란 뜻이란다.


 이렇듯 이명에 대한 해석만 보면 비수리는 실로 엄청난 정력제다. 그러나 문제는 정력제로서의 실제 약효다. 다시 말해 검증이 됐냐는 것이다.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세계적인 본초학자 김재길박사(한국약용식물자원연구소장)는 한 마디로 “No”다. 특별한 처방을 하면 몰라도 소문 대로 비수리 자체가 정력제는 아니라고 한다.
 김박사의 말에 의하면 비수리는 야관문 같은 여러 이명으로 불리는 건 사실이나 정력제로서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예부터 남성이 잠 잘 때 자기도 모르게 정액이 흘러나오는 유정증에 응용해 왔으나 이마저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단다.
 김박사는 또 비수리를 정력제로 소문낸 사람들이 주장하는 소위 비수리의 성분에 대해서도 콩과 식물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성분이라며 “식물체 자체를 천연 비아그라로 확대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일축한다.
 또 하나 현재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글 가운데에는 비수리의 복용법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말이 많은 데 이 역시 많은 이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한쪽에선 “반드시 술을 담가 먹어야 약효가 있다”는 주장인 반면 “또 한쪽에선 ”차처럼 끓여 먹거나 중탕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다.

  그만큼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복용법도 다르니 복용 후의 효과 또한 먹는 사람 나름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수리를 먹었을 때 인체에는 큰 해가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1990년대에도 ‘쇠뜨기에 대한 맹신’을 우려하는 기사를 써 그 열풍을 잠재우는 데 일조한 바 있다.

 그땐 쇠뜨기의 독성이 강조돼 그나마 단 시간에 열풍이 가라앉았는데 비수리는 독성이 그리 없다니 먹으면 손해란 얘기도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수리 자체가 곧 천연 비아그라는 아니란 점이다.

 먹어도 제대로 알고 먹으면 어떨까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