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와 붕어

 

지구상 우리나라에만 사는 민물고기 쉬리. 이 물고기가 학계에 처음 알려진 해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으로, 당시 한반도에 건너와 조선땅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신종 물고기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눈이 벌겄던 모리 타메조라는 일인 학자에 의해서였다. 모리는 남한강 수계에서 '처음 보는 특별한 조선 물고기' 쉬리를 채집해 'Coreoleuciscus splendidus Mori'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했다.
모리가 찾아낸 물고기는 체형이 날씬하고 몸색깔과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기생피리, 여울각시, 연애각시 등으로 불러온 그야말로 조선토종 물고기였다. 모리가 처음 잡았을 때 얼마나 감탄했으면 종소명을 'splendidus'라 했겠는가. splendidus의 splendid는 매우 인상적이거나 아름다울 때 쓰는 말이다.
그로부터 72년 뒤인 2007년 모리가 살아 있더라면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 국내 젊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다름 아닌 '쉬리가 1종이 아니라 2종'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순천향대 방인철교수팀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충청타임즈 2007년 6월 25일자 최초 보도> "국내에 서식하는 쉬리를 형태 분석과 함께 유전다양성 및 분자계통학적 분석을 병행한 결과 한강과 금강에 사는 쉬리(일명 북방계)가 낙동강과 섬진강에 사는 쉬리(일명 남방계)와 뚜렷이 구분됐다. 특히 남방계 쉬리는 모리가 신종으로 발표했던 기존의 쉬리(북방계)와는 다른 신종으로서 앞으로 보강 연구를 더 실시해 정식으로 신종 발표할 계획이다."
신종 발표가 이뤄질 경우 한국산 쉬리는 1종에서 2종으로 늘어나게 된다. 방교수가 밝힌 북방계 쉬리와 남방계 쉬리는 외형상 체색과 지느러미 반점, 뺨부위 암점 등 여러 면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분자 계통학적으로도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변이에서 온 것이건 분포지리학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건 분명한 것은 쉬리가 보다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20여년 전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은 바 있다. 대청호에서 발견한 '한국 최초의 민물해파리'를 들고 찾아간 필자에게 대뜸 "우리나라에 토종 붕어가 몇 종류 사는지 아느냐"고 묻기에 "글쎄요, 저수지에 사는 일반 토종 붕어와 강에 사는 점박이 붕어(일명 돌붕어), 그리고 …"하면서 머뭇거렸더니 "적어도 대여섯 종류, 많게 보면 8종류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학문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물고기 분류가 주로 형태형질 분석에 의존하던 때여서 최박사도 그것을 기준으로 잠정 분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 분자계통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한 원로학자의 학문적 고백이 아닌가 싶다.
어느 물고기 한 종이 형태적으로 다양한 형질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적으로도 다양한 인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전 다양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전 다양성은 그 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유전 다양성이 풍부하면 그만큼 자연계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은 반면 유전 다양성이 낮으면 환경 변화에 민감해지고 적응력이 떨어져 종 자체가 사라지기 쉽다.
오늘날 미호종개나 어름치 같은 고유종들이 백척간두에 서있게 된 것은 다음 아닌 유전 다양성이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같은 물줄기에 살든 다른 물줄기에 살든 모두가 '한 혈통 같은 핏줄'이니 조그만 환경변화에도 순식간에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유전 다양성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서유구의 한과 실학정신

조선 최대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 중 전어지에 '돗고기'가 소개돼 있다. "머리는 작고 배가 부르며 꼬리는 뾰족하고 끝이 둘로 갈라진다. 주둥이는 가늘고 뾰족하며 등은 검고 눈은 작다. 몸의 생김새가 돼지 새끼와 비슷해 돗고기로 불린다. 지렁이를 미끼로 써서 낚는다."
200년 전의 기록치고는 매우 상세하다. 놀랍다.
임원경제지를 지은 이는 실학자 서유구다. 19세기 초에 이미 농업개혁론을 부르짖은 선지자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1801~1818년)하던 비슷한 시기(1806~1824년), 비슷한 기간(약 18년) 동안 은둔생활하면서 쓴 책이 임원경제지다. 총 113권 52책에 글잣수만 250만자에 이른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인 1872년 국제학술지에 'Pungtungia herzi'란 신종 물고기가 발표됐다. 발표자(명명자)는 헤르첸슈타인이란 외국 학자로, 그는 조선의 풍중이란 곳에서 채집한 물고기 1종을 지역명과 자신 이름을 따 신종으로 기재했다. 헤르첸슈타인은 당시 이 물고기에 대해 형태적으로만 간략히 소개했다.
주목할 것은 헤르첸슈타인이 발표한 이 물고기가 한반도 물고기로는 처음으로 학술지에 공식 기재됐다는 점이다. 학술지에 처음으로 기재됐다함은 국내 물고기가 비로소 학계에 알려졌다는 얘기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돌고기다. 서유구가 돗고기로 소개한 돈어(豚魚)와 헤르첸슈타인이 신종 발표한 물고기는 종이 같은 돌고기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서유구의 한이라 할까, 당시 미개국이었던 조선 사회의 학문적 한계라고 할까. 시기적으로 헤르첸슈타인보다 최소 40여년 앞선 시기에 돌고기에 관한 내용을 책으로 처음 기록했으면서 학계로부터 첫 기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되새겨 보자는 말이다.
어떤 생물종을 발견해 신종 발표하기 위해선 국제명명규약에 따라 학명을 짓고 정확한 분류와 기재를 한 다음 출판하고 학계에 보고해야 한다. 린네(1707~1778년)가 이명법을 창안한 이래 생긴 국제관례다.
이러한 사실만 서유구가 알았더라도 당시 전어지에 소개한 물고기를 어엿한 신종 물고기로 발표했거나 최소한 조선의 어류목록으로 기록하는 또 다른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정은 그렇질 못했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쓰면서 인용한 서적이 약 900종에 이르고 참고한 서적만도 수천 종에 이르지만 서양의 선진학문인 생물분류학적 지식은 접하질 못했다.
돌고기의 한은 또 한 차례 이어졌다. 1935년 일본인 모리가 또 다시 감돌고기(Pseudopungtungia nigra Mori)를 신종 발표한 것이다. 채집지는 영동(황간)과 진안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까지의 암흑기가 지나면서 국내 어류학계에도 서광이 찾아들어 1975년 드디어 김익수박사가 국내 학자로선 처음으로 참종개를 신종 발표한 것을 비롯해 지난 30여년간 총 20종의 물고기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기재됐다. 그 중에는 돌고기의 1종인 가는돌고기(1980년 전상린박사 발표)도 포함돼 있다. 3종의 한국산 돌고기 중 1종이나마 국내 학자가 찾아낸 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헤르첸슈타인 이후 100여년간 맺혀온 한이 다소나마 풀린 셈이다.
돌고기의 한을 되짚어보면서 당대 석학 서유구가 가졌던 신념을 떠올려봤다.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 즉 일상의 경제생활에 필요한 실용의 학문을 집대성하겠다"는 확고한 신념 말이다. 그는 그런 의지로 임원경제지를 썼다. 전어지에 물고기 잡는 법과 어구를 자세히 설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게 헤르첸슈타인과 달랐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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