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날씨, 심각한 이상징후다

 

올해 날씨가 예사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기고만장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듯 실로 위세가 대단하다.
언젠가도 얘기했듯 올핸 음력상 입춘이 없다. 지난해 음력에 입춘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해서 지난해엔 입춘이 두 개인 쌍춘년(혹은 양두춘)이었던 반면 올핸 무춘년이다.
속설에 쌍춘년은 길하고 무춘년엔 불길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일부에선 올해 날씨를 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새해벽두부터 유례없는 추위와 폭설이 몰아치더니만 봄이 돼서는 잦은 비와 한파, 이상난동이 뒤죽박죽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4월 하순엔 눈까지 내리면서 103년만의 4월 한파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다. 정작 비가 많은 장마철엔 되레 마른 장마가 이어졌고 그런 가운데 중부지방은 '속 타는 주말 비'가 6주 연속(7월 마지막주 건너뛰고는 7주 연속) 계속됐다. 장마철에 비가 너무 많이 와도 탈이지만 너무 안 와도 탈이다. 충북의 대표적인 하천인 달천엔 올 들어 단 한 번도 '큰물'이 흐르지 않았다.
더위는 또 어떤가. 목하 불볕 더위가 한반도를 달달 볶아대고 있다. 7월 한 달만 해도 26일이나 평년기온을 웃돈 데 이어 8월 들어서도 줄창 폭염이다. 말 그대로 전례없는 된더위다. 한번 올라간 수은주는 낮이나 밤이나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가마솥 더위니 찜통 더위니 하는 표현만으로는 실제 체감온도의 반도 못 표현할 정도다.
더워 죽겠다는 말처럼 정말로 더위로 인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날씨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소,돼지,닭 등 가축들은 말하면 뭣하겠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든다. 바깥 기온이 연일 30도를 훨씬 넘으니 축사 안은 불가마다. 몸이 단 축산업자들은 밤낮없이 초비상이다. 대형 송풍기를 있는 대로 틀고 지하수를 수시로 뿌려대지만 역부족이다.
얼마나 초비상 상황인지 말도 못 붙일 정도다. 엊그제엔 모 지역의 축사 두 곳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가 호된 면박만 당했다.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느냐고 왕짜증을 냈다. 인터뷰 도중에 가축이 죽으면 책임 질거냐는 말까지 들었다. 오죽하면 그럴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날씨 탓에 복장 터지는 사람들이 또 있다. 농민들이다. 지난 겨울과 봄에 입은 냉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속 좋을 리 만무다. 폭서에 웬 냉해 얘기냐고 할지 모르나 현지 상황은 심각하다.
옥수수 농가의 경우 이식기에 찾아든 한파로 묘가 얼어죽어 2~3차례 더 파종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정작 수확기를 맞아 옥수수를 따 보니 수확량마저 예년에 비해 훨씬 적게 나타나는 등 2차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옥수수자루가 껍질을 벗겨보면 알맹이가 형편없이 차 있거나 아예 옥수수자루 끝이 3~5 갈래로 갈라진 기형을 하고 있으니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과수원도 예외가 아니다. 비싼 인건비 들여 열매솎기 작업에 봉지씌우기 작업까지 마친 과수들이 수확철을 눈앞에 두고 돌연 나무 전체가 고사하거나 낙과, 기형과가 생겨나면서 과수농가들의 속을 시커멓게 타들어가게 하고 있다.

 

연초부터 꼬이기 시작한 날씨, 단지 그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심각해진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피해를 말 그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작금의 기후는 마치 산(山) 날씨 같아졌다. 극과 극을 내달린다. 한 해에 수십 년 만의 추위와 수십 년 만의 더위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런 기후 불확실성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이다. 그게 이 시대의 최대 화두다.

처서로 가는 문턱이 이렇게도 높은가

 
 사람마다 날씨가 미쳤다고들 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단다. 말복이 지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전국을 달궈대니 그럴만도 하다.

   어떤 지역은 수은주를 40도 가까이 끌어 올려 사람들을 맥 못추게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까라질 판이다. 어디 사람뿐이랴. 축산농가의 소,돼지도 기진맥진이다. 대형선풍기를 틀고 물까지 뿌려 주며 차광막으로 햇볕을 가려줘도 소용없다. 알 낳는 산란계들은 알 낳길 포기했다. 오리들은 아예 수도꼭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입추가 지난 지는 열흘 됐고 닷새 후면 처서다. 처서가 무엇인가. 더위가 물러가 선선한 가을로 접어든다는 절기다. 이 때가 되면 모기들도 입이 비뚤어질 만큼 기온변화가 확연하다.

한데 올핸 아니다. 늦더위가 되레 극성이다. 게다가 이번 늦더위는 반짝성이 아니라 여러날 이어지고 있다.


 하기야 올해 날씨가 어디 한 두번 미쳤는가. 좀 과한 표현이지만 미친 개 널뛰듯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긴 가뭄끝에 봄이 왔으나 돌연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정작 농삿철이 돼서는 기온이 뚝 떨어져 농작물에 냉해를 입혔으며 여름 들어서는 하늘둑이 무너진 양 하루가 멀다하고 물폭탄을 퍼붰다. 어디 그 뿐인가. 장마가 끝난 후엔 곧바로 태풍 2개가 올라오면서 또다시 물폭탄을 들이부어 애먼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런 뒤에 찾아온 게 다름 아닌 요즘의 ‘불꽃 폭탄’ 폭염이다.


 목하 이상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피서행렬까지 되돌려 놓고 있다. 말복 뒤에 이어진 폭염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또다시 피서지로 향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말복과 함께 휴가철이 끝나가면서 한산해지던 피서지가 돌연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은 물론 산간계곡의 물가마다 늦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지난 주말의 경우 속리산 뒤편 화양·사담계곡과 달래강 물가에는 한여름 피서객보다도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이 때문에 주변 도로는 연 이틀째 차량정체가 극심해 운전자들이 생고생했다.


 이렇다 보니 때아닌 호황을 맞은 곳들도 있다. 피서지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다. 지역명품 대학찰옥수수 장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사실 이들은 말복을 정점으로 여름장사를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졸지에 밀려든 피서객들이 일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을 맞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돌려보냈던 알바생까지 다시 부를 정도다. 대학찰옥수수는 산지에서조차 동이 났다.        

 
 폭염을 반기는 사람들이 또 있다. 농부들이다. 벼와 과일이 잘 여물려면 햇빛이 잘 내리쬐야 하는데 지난 여름내내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해 속 깨나 썩었던 그들로서는 요즘 폭염이 보약보다 낫다고 반색이다. 이들에겐 이번의 ‘미친 날씨’가 되레 다행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폭염을 ‘쥐약’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버섯꾼들이다. 장마 이후 선선한 날씨가 이어져야만 송이 등 각종 버섯이 많이 나는데 요즘처럼 날씨가 따갑고 햇볕이 강하면 포자번식이 잘 안되기 때문에 걱정이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금년 버섯 산출량이 많을 것이라며 좋아하던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그들은 지금 지난해 같은 가을가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럴 경우 연3년째 버섯농사가 꽝이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날씨는 이제 우리 삶과 직결돼 있다. 그런 만큼 절기에 맞게 적당한 날씨가 뒤따라 준다면야 더없이 좋으련만 이 땅의 날씨는 갈수록 삐딱해지는 양상이다. 입추에서 처서로 넘어가는 계절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삼복에 집중됐던 피서철도 옮겨야할 판이다.

변덕스런 날씨에 동물도 사람도 넋 나갔다

 
 한밤중 농가에 느닷없이 고라니가 뛰어들고 한쪽에선 너구리가 처마밑에 기어들어 젖은 몸을 말린다.

   낮에는 올망졸망한 꺼병이들이 어미 까투리와 함께 농가 마당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고 마루밑으로는 어린 아이 팔뚝만한 살모사가 기어들어 또아리 튼 채 주인행세를 한다.
   뿐만 아니다. 물가에선 줄풀에 둥지 틀고 알 품던 쇠물닭들이 밤낮 없이 쾃~쾃 울어대며 둥지주위만 맴돌고 빈 까치집에 새끼 깐 파랑새 부부는 먹이 물어올 생각은 않고 연신 땍~땍 거리며 먼하늘만 바라본다.
 

   만화 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희귀한 일들이 요즘 농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생태계 주인공들이 연일 정신없다. 그들의 행동으로만 보면 마치 대지진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이 땅은 요즘 그런 엄청난 일에 직면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이 뽀개진 듯 아예 하늘둑이 송두리째 터진 듯 들입다 쏟아붓는 장마폭탄 행렬에 야생동물마저 모두가 넋이 빠졌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얼마나 똥줄 탔으면 사람 냄새만 나도 칠색팔색하는 야생동물들이 사람 사는 인가로 뛰어들고, 비 오는 날 잠시라도 둥지를 비우면 알이 곯아 새끼농사 망치는 어미새들까지 둥지밖으로 뛰쳐나와 졸지에 ‘청개구리 신세’가 되겠는가. 아무리 자연이 자연에게 내리는 기상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 이 계절의 생태 주인공들에겐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허구한 날 여우가 시집가는 양 변덕 일변도의 날씨는 사람들의 혼줄까지도 홀딱 빼앗아갔다. 터질듯 말듯한 물풍선을 머리 꼭대기에 이고 사는 격이다. 언제 터질 지 어느 곳이 터질 지 종이라도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죽을 맛이다.

 몸까지 피곤하다. 반짝 빛이 들 땐 돌연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진을 빼고, 그러다가도 구름이 몰려올라치면 언제 그랬냐며 돈내기하듯 쏟아붓는 ‘물벼락’에 갑자기 한기를 느끼게 되니 생체리듬인들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세상 온갖 게 다 떠내려간다해도 아무 걱정없는 사람들이야 관심 없겠지만, 요즘 뉴스 듣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절개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산간계곡에 사는 사람들, 물가에 농경지가 많은 사람들, 저지대 상습침수 지역에 사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엔 TV나 라디오를 켰다하면 듣게 되는 “언제까지 몇 백mm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멘트가 마치 “때린 데 또 때릴 것이니 알아서 커버하라”는, 공갈 아닌 공갈로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때린 데만 용케 또 때리는 게 요즘 장마이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변덕스런 날씨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기상청 사람들이다.

여의봉이 요술부리듯 쥐락펴락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신출귀몰하게 변덕 부리는 요즘 날씨 탓에 수시로 기상특보 발령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얼마전엔 한 일기도에 5개의 기상특보가, 그것도 각기 다른 색깔로 컬러풀하게 그려져 예보된 적 있다. 땅덩어리는 한 개의 기압골보다 좁은 나라서 어떤 곳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포비로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발령된 반면 어떤 곳엔 34도의 찜통더위로 뜬금없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어떤 곳엔 초속 20m 바람으로 강풍주의보가, 또 어떤 곳엔 큰 파도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장마철 대기불안정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에 심각한 변화가 온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심각한 변화, 그 변화로 인해 이 땅의 동물과 사람들은 걸핏하면 홍역을 치르게 됐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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