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입춘 없는 무춘년(無春年)'이라더니…

 

범띠 해인 올핸 입춘이 없는 무춘년(無春年)이라더니 그 말이 기막히게 들어맞았다. 봄은 왔었는데 겨울 품을 벗어나지 못한, 봄 아닌 봄이었기 때문이다.
화창한 날씨를 보이다가도 걸핏하면 추위가 찾아와 103년만의 4월 한파란 새기록을 세우더니만 급기야 며칠전엔 속리산에 눈까지 내렸다. 4월 하순에 눈이라니, 이변도 보통 이변이 아니다. 속리산 자락에 핀 산벚꽃을 개칠하듯 하얗게 내린 눈을 바라본 사람들은 뜬금없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이 어느 땐가. 내일(5일)이면 입하다. 여름문턱에 들어서는 날이니 절기상으론 엄연히 초여름이다. 더구나 보름뒤엔 더위가 시작돼 여름기분이 든다는 소만이다. 그때면 식물들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니 본격적인 여름이다.
그런데 작금의 날씨는 어떤가. 5월 들어 예년기온을 되찾았다는 날씨가 마치 어린애가 온·냉탕을 오가며 뛰놀듯 기고만장이다. 낮이면 햇볕이 쨍하다가도 저녁과 아침이면 수은주가 마냥 내려간다.


농민들은 올해들어 줄곧 죽을상이다. 유례없던 겨울추위 끝에 봄을 맞았으나 우수에서 곡우까지 봄절기 다가도록 봄 같지 않은 봄날씨가 천방지축 이어져 큰피해를 입는 바람에 절망을 옆에 끼고 산다. 이미 얼어죽은 과수목과 담배묘,고추묘,감자싹 등은 이제 신물이 나 쳐다보기도 싫단다.
우리주변의 초목·곤충들은 또 어떤가. 만개해야 할 꽃들은 피는 도중 얼어붙어 시커멓게 변하기 일쑤고 나뭇가지에선 새이파리들이 흡사 사람머리에 기계충 걸린 것처럼 듬성듬성 돋고 있다. 제초제를 뿌린들 그런 흉한 모습을 할까. 매년 이맘때면 지천으로 날아들던 벌과 나비는 정신없는 기온변화에 혼이 빠진듯 제몸 추스르기 바쁘다. 어쩌다 보이는 벌과 나비는 힘겨운 날갯짓으로 측은지심을 부른다.
봄이 실종된 게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겨울에서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날씨로 치달은 게 어디 한두 해 있었던 일인가. 다만 올해의 경우엔 겨울날씨에서 곧바로 여름날씨로 건너뛰질 않고 이상저온 현상이 장기간 그리고 더욱 잦게 이어지면서 생태리듬의 도미노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이 다르다. 입하가 코앞인데 벚꽃과 목련꽃이 벌어지고 개나리가 이제서야 피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절기가 이른 것도 있지만 날씨영향이 더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춘년의 위력을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없다. 더군다나 무춘년엔 불길하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세상사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함께 적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의 무춘년은 지난해(음력 2009년 소띠 해)에 입춘을 빌려준(?) 결과다. 지난해엔 음력으로 1년 사이에 입춘이 2개였다. 이른바 양두춘(兩頭春)의 해였다.
속설에서는 양두춘엔 길하고 무춘년엔 불길하다고 전한다. 속설을 꼭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뜩이나 경험칙으로 보면 속설이 길사엔 잘 맞지 않고 흉사엔 비교적 잘 맞는 까닭에 앞으로 남은 2010년이 더욱 걱정된다.

지금까지 얼마나 시끄럽고 다사다난했는가. 불과 3분의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마음은 연말에 와있는 느낌이다. 하나가 잠잠해지면 또 다른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다. 사회적 긴장의 연속이다. 천안함 참사로 놀랐던 가슴 간신히 추스르고 나니 이번엔 또 구제역이 전국을 불안지대로 만들고 있다.
달력(음력)에도 입춘이 없고 기후상으로도 봄날씨가 실종된 유별난 해라서 그런지 세상사까지도 유별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부디 계절에 맞는 날씨, 절기에 맞는 생태리듬이 하루빨리 회복되고 더이상 가슴 덜컹 내려앉는 일이 생기지 않는 남은 한해가 되길 기대한다. 마지막 봄날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꽃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찔레꽃 노래다. 원곡은 일제 말기인 1942년 가수 백난아가 처음 불렀는데 훗날 이미자가 가사일부를 바꿔 불러 더욱 유명해진 국민가요다. 뜬금없이 찔레꽃 타령을 하는 이유는 요즘이 바로 찔레꽃 피는 철이기 때문이다. 아까시꽃이 막 지고나면 덤불위로 앙증맞은 얼굴을 내미는 찔레꽃. 그 찔레꽃이 필 때면 한 손엔 찔레순을 또 한손엔 삘기를 뽑아들고 산과 들로 내달리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이 무렵이면 버릇처럼 의문이 가는게 있다. 바로 찔레꽃의 색깔이다. 노랫가사엔 분명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는데 우리 주변에 피는 것은 거의 모두 희거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이다. 그러니 의문이 갈 수 밖에.

우리나라에는 털찔레, 좀찔레, 제주찔레 그리고 도감에도 잘 안나오는 요강찔레 등이 있는데 대부분 흰색 계통의 꽃을 피우며 유독 빨간 꽃을 피우는 종은 국경찔레 뿐이다. 하지만 국경찔레는 보기가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하필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했을까.

찔레꽃 피면 우리의 산과 들은 더욱 요란해 진다. 찔레꽃 가사(3절)에도 있듯 아름다운 찔레꽃 피어나면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는 이리저리 춤춘다. 당시 작사가는 생태달력을 꽤나 알았던 모양이다. 찔레꽃 색깔은 좀 그렇지만.

찔레꽃 필 무렵의 생태달력은 일년 중 가장 부산하다. 우선 찔레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쏘가리 잡는 어부들부터 발에 땀이 난다. 강가의 어부들은 쏘가리의 산란기와 찔레꽃의 개화시기가 같은 것을 알기에 찔레꽃이 폈다 싶으면 알 밴 쏘가리가 이동하는 여울로 내달린다. 일년을 별러온 호기 아닌가. 찔레꽃이 어부들에겐 참으로 기막힌 '알람'인 셈이다.

찔레꽃 피는 시기는 또 뻐꾸기가 날아와 알낳는 시기이기도 하다. 뻐꾸기가 목청돋워 울어재치면 영락없이 찔레꽃이 피는데 이 무렵 뻐꾸기의 행동을 보면 매우 독특하다. 꾀꼬리나 밀화부리 같은 여름철새는 고향인 우리나라로 날아오면 우선 고단한 날개 추스린 뒤 곧바로 둥지 트느라 여념 없는데 뻐꾸기는 되레 노래만 불러제키며 '남의 집' 넘보기에 정신 없다. 이유인 즉슨 뻐꾸기는 둥지를 직접 틀지 않고 다른 새둥지 찾아 알을 낳기 때문이다. 이를 탁란이라 하는데 본능치고는 고약한 심보다.

찔레꽃 필 무렵이면 농촌 들녘도 무척 바빠진다. 절기로는 소만과 망종 사이다. 바지가랭이 내리고 뭐 볼 시간도 없는게 바로 이 즈음이다. 밭둑에 찔레꽃 피고 앞논 참개구리 정신없이 울어제킬 때면 모내기에다 밭일에다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니 흙묻은 손으로 볼일인들 편히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이다. 굽어진 허리 펼 새 없이 방바닥이고 뭐고 등에 대이기만 하면 이내 코고는게 이무렵 농부들이다. 오죽하면 불때던 부지깽이도 거드는 시기라고 했을까.

올핸 봄가뭄이 극심해 농부들이 무진 애를 먹고 있다. 모내기도 서둘러야 하고 보리도 베야 한다. 고구마에다 참깨, 들깨도 심어야 하고 자식들 줄 참외와 수박묘도 이식해야 한다.

풀도 뽑아야 한다. 일거리가 끝이 없다. 그래서 망종(芒種)을 亡終이라고도 한다. 끝을 잊는다는 얘기다.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여 농촌에 뿌리를 둔 도시인들이여 생태달력이 찔레꽃을 피우면 농사달력은 으레 바쁜 농사철이니 대뜸 고향으로 달려가 논배미로 밭뙈기로 뛰어드는 건 어떨는지. 가는길에 시원한 막걸리 받아다 아버지 한잔 삼촌 한잔 따라드리며 FTA다 AI다해 상심한 가슴 달래도 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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