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주요 분수계 역할
동북으로는 백두대간이 낙동강과 경계 지어
서북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이 금강과 물길 나눠


산과 물을 말할 때 요즘은 흔히 분수령과 마루금,재,분수계,수계란 말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뒤에 설명하는 '산경표'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우선 분수령이란 산에 관한 개념으로서, 글자 그대로 물을 나누는 마루, 즉 산의 양쪽 사면이 만나는 곳 혹은 산의 양쪽 사면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능선과 같은 말이다. 마루금은 이 분수령(능선)을 서로 연결한 금(선)을 뜻하고 말티재,질마재,모래재 등의 '재'는 능선 중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 반대가 봉우리다.


또 분수계는 하나의 강 유역을 완전히 에두른 분수령의 집합으로 다른 강 유역과 구분되는 영역을, 수계는 분수계로 둘러싸인 안쪽의 전 영역을 일컬을 때 쓰인다. 다만 분수계는 산과 관련된 개념인 반면 수계는 물에 관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달래강(달천) 유역의 분수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대체적으로 달래강이 흐르는 방향인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강과 경계를 이루고 왼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금강과 경계를 이룬다.

 

■백두대간과 달래강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동·서로 구분짓게 하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속리산 천왕봉을 기점으로 북쪽을 향해 조령산 인근의 마력봉까지 줄달음을 하면서 동으로는 낙동강 물줄기를 일으키고 서로는 달래강 물줄기를 일으킨다.


속리산 천왕봉서 시작해 마력봉까지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가자면, 우선 속리산 연봉인 비로봉,신선대,문장대 등을 차례로 지나 경북 용화와 화북을 연결하는 밤티에 이어 늘재를 만난 뒤 청화산,조항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시루봉,이만봉,백화산,황학산으로 이어졌다가 이내 이화령과 조령산,조령3관문을 지나 마지막으로 마력봉을 만난다.


이렇게 이어진 마루금은 대부분 충북과 경북 도계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둘로 나누는 분수령 역할 뿐만 아니라 양 지역의 문화를 각기 달리 형성시킨 문화적 산파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마력봉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다시 방향을 바꾼 마루금은 월악산쪽 지릅재를 거쳐 대미산과 남산,마지막재,계명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동달천,내사천,충주호 등과 경계를 이룬다.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마력봉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충주 관내 계명산까지 이어진 마루금은 달래강의 오른쪽 유역, 즉 동북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백두대간의 '늘재'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구분짓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백두대간의 여러 분수령 가운데 하나인 늘재로, 오른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경북 상주시 쪽에서 바라본 늘재 △분수령 안내판 △충북 괴산 송면 쪽에서 바라본 전경 △고갯마루의 백두대간비.

 

백두대간의 '밤티'
속리산 문장대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경북 상주시의 밤티. 원내는 경북 용화에서 화북 방향으로 바라본  밤티 모습.

 

■한남금북정맥과 달래강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이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 달래강과 낙동강 유역을 나누는 것과는 달리 한남금북정맥은 왼쪽 방향으로 북쪽을 향해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다.


속리산 천왕봉서 처음엔 남서쪽으로 뻗기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은 이어 속리산 관문인 말티고개(현재 속리터널이 인근에 뚫렸지만 여전히 버스노선으로 이용되는 등 관문역할을 하고 있슴)를 지나면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구봉,탁주봉,시루산,구봉산,국사봉,머구미재를 지나 청주 인근의 선두산,선도산,상당산으로 접어든다.

 

이어 충북 청원의 미원과 내수읍(초정 약수터)을 잇는 이티재를 지나 구녀산과 좌구산을 넘으면 괴산군의 청천 쪽에서 청안을 넘나드는 질마재가 나오고 이내 칠보산을 거쳐 괴산읍과 증평읍을 잇는 모래재를 지나 보광산,보천고개,행티재를 넘어 음성 관내의 소속리산에 이르게 된다. 소속리산에 다다른 한남금북정맥은 계속해서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을 거쳐 강화도를 향해 달리지만 달래강과의 인연은 소속리산 자락에서 끝을 맺는다.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다시 방향을 튼 마루금은 음성 감우재를 지나 부용산과 수레의산,덕고개,자주봉산,솔고개,평풍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청미천과 앙성천,한포천 등과 경계를 이룬다.


이곳까지의 마루금은 달래강의 서남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한남금북정맥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한남금북정맥은 북쪽을 향해 왼쪽 방향으로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보은 삼년산성에서 바라본 한남금북정맥의 전경으로 오른쪽으로부터 천왕봉과 말티고개가 보인다.

 

■산경표


산경표는 우리 나라의 산이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흐르며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한 지리서다.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동국문헌비고(영조46년, 1770년)에 수록된 신경준의 여지고와 산수고를 바탕으로 편찬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산맥 분류 체계와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서 간(幹)은 줄기를, 맥(脈)은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를 지칭한다.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은 이 책의 분류에 따른 것으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커다란 기둥줄기를 일컫고 이 기둥줄기로부터 뻗어나간 2차적인 갈래를 정간과 정맥이라 하는데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줄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도 산경표에서 나온 말로 '산 스스로 물을 나누는 경계, 즉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산경도는 산경표를 지도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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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속리산의 마루금 문장대서 천왕봉 직전까지 이어지는 속리산 연봉들은 모두 낙동강 수계와 남한강 수계를 나누는 '이파수(二波水)' 마루금(분수계)이다. 사진에서 보아 천왕봉 직전까지의 각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 뒷편(동쪽 사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낙동강 줄기가 되고 앞쪽 사면(법주사 방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남한강 줄기가 된다. 비로봉 전망대서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한 사진이기 때문에 각 봉우리의 높이는 실제와 다르게 보인다.

남한강·낙동강·금강 나누는 국내 물뿌리의 '으뜸'

속리산을 삼타수(三陀水) 혹은 삼파수(三波水)라 한다. 조선 중종 20년(1525년)에 간행된 용재총화에는 삼타수, 5년 뒤인 중종 25년(1530년)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삼파수로 기록돼 있다.

이들 문헌의 삼타수 혹은 삼파수가 정확히 어떤 물을 일컫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돼 있지 않아 알 길이 없으나 현대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갈래로 흘러내리는 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 갈래로 흘러내리는 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왕봉의 삼파수비 천왕봉 정상에 서있는 비석에는 삼타수 대신 삼파수로 적혀있다

이는 곧 물줄기가 세 갈래로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바로 남한강과 낙동강, 금강이 이곳서 갈려져 나간다는 것을 뜻하리라.

물줄기를 나눈다는 것은 한편으론 물줄기가 시작된다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속리산은 산 정상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남한강과 낙동강, 금강 등 세 갈래의 물줄기로 나누는 동시에 이들 세 강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그러면 삼파수(혹은 삼타수, 이하 편의상 삼파수로 칭함)의 정확한 지점은 어디일까. 옛 문헌은 문장대(해발 1054m)를 꼽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 문장대의 물은 세 갈래로 나뉘어 반공(半空)으로 떨어지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며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달천이 됐다가 금천, 즉 남한강으로 들어간다'고 적혀 있다. 다른 문헌들도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해 삼파수 지역은 천왕봉(해발 1057.7m) 산자락이다. 문장대 산자락은 단지 한강과 낙동강 등 두 갈래의 물줄기만 나눌 뿐이다.

따라서 문장대 산자락은 엄격히 말해 이파수(二波水)다. 문장대 외에도 청법대,신선대,입석대,비로봉 등 문장대서 천왕봉 직전까지 이어지는 속리산 연봉들은 모두 낙동강과 남한강만을 나누는 이파수의 분수계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문장대 산자락의 이파수 기능마저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나라 땅 이름에 밝은 이형석씨는 한국의 산하란 책에서 '문장대 물은 동서남북 모두 법주사로 흘러 달래강(남한강)이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허나 이 주장은 문장대 자체, 정확히 말하면 현재 큰 바위로 이뤄진 문장대 정상만을 놓고 본 견해로서, 실제 취재팀이 답사한 바로는 문장대가 솟아있는 산 능선 자체는 분명 낙동강과 남한강을 나누고 있다.

다시 강조 하건대 속리산의 삼파수 지역은 유일하게 천왕봉이다. 즉,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서쪽으로는 남한강을, 남쪽으로는 금강을 발원한다.

학자들은 본래 낙동강과 남한강, 금강은 하나의 물줄기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던 것이 천왕봉을 비롯한 속리산 연봉들이 지각변동으로 새롭게 생겨나면서 서로 분리돼 다른 물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약 20년전에 밝혀진 '종개의 분포'다.

과거에는 종개라는 물고기가 한강과 금강 이북에서만 발견되는 '북방계 어종'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지난 1990년도에 있었던 속리산종합학술조사에서 돌연 남방계 수계인 속리산 동쪽 낙동강 최상류에서도 이 물고기가 채집됨으로써 지각변동 이전에는 이들 세 물줄기가 서로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 물줄기를 나누는 분수령(分水嶺) 혹은 분수계(分水界)는 많지만 삼파수로 불리는 곳은 오로지 속리산(천왕봉) 뿐이다.

이는 바로 이 지역이 우리 민족에게 생명의 젖줄을 제공하는 가장 '으뜸의 물뿌리'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천왕봉의 이름을 얼마전까지 부르던 천황봉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천황'이란 의미를 굳이 일제의 잔재로만 볼 게 아니라 삼파수의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물의 뿌리, 즉 강의 발원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물줄기가 시작되는 물의 시원(始源)이자 물이 흐름을 일으키는 머리(물머리)란 점에서 여느 지역 이상의 숭고한 의미를 지닌다.

강의 시작은 인류 역사의 시작이자 문화의 시작이란 말이 있다. 역사는 강의 흐름과 더불어 이어져 왔고 문화의 태동과 발전도 강과 함께 해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 강줄기의 뿌리인 속리산 삼파수는 한반도 중부권 역사를 태동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모태라 할 수 있다.

생명의 젖줄이자 역사의 터전인 강, 또 그 강의 뿌리를 세 개씩이나 보듬고 있는 속리산 천왕봉. 그 삼파수 지역을 잘 지켜나가고 그가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일도 우리 역사, 우리의 뿌리를 올바로 알고 지켜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방편일 것이다.

   

 

천왕봉서 바라본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면 삼파수의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 정 중앙으로 길게 뻗은 마루금(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왼쪽(장각계곡)으로는 낙동강 수계를, 오른쪽(대목골, 만수계곡)으로는 금강 수계를 이룬다. 맨 오른쪽 저수지가 보은 삼가저수지다.

   
도도한 물흐름 달래강
  달래강 3백리 물길은 유독 계곡이 많아선지 더욱더 도도히 흐른다. 그 도도한 물흐름은 이 고장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탄생시킨 '역사의 터전'이자 주민들의 삶과 생을 이어준 '생명의 요람'이다. 125km 물굽이에 대한 심층 탐사를 통해 달래강의 어제와 오늘을 재조명하고 참다운 가치를 발굴해냄으로써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사진은 옥화5경인 금봉서 바라본 달래강 전경)  
 
숱한 설화와 사연 안고 도도한 물흐름

심층탐사 통해 참 가치 발굴 비전 제시

역사·생태·문화·개발·보전방안 재조명



◇ 삶의 젖줄, 역사의 터전

   
 
   
 
예부터 물맛이 달다하여 단내(달래,甘川) 혹은 수달이 많이 산다해서 수달내(달천,獺川), 덕을 입은 강이라하여 덕천(德川)으로 불리던 달래강. 속리산 천왕봉에서 물머리를 시작해 충주 탄금대 부근서 남한강과 하나 되기까지 총연장 125km를 남에서 북으로 굽이치며 흐르는 커다란 물줄기다.

조선초 성현의 <용재총화>에 '조선 제일의 물맛'으로 기록될 만큼 물맛 좋기로 유명했던 달래강은 지금도 주민들의 중요한 생명수이자 젖줄로서 숱한 설화와 사연을 안고 도도한 물흐름을 하고 있다.

3백리 물길로 이어지는 본류와 지류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빚어 청풍명월의 멋을 한껏 더해놓고, 각 고을 마다엔 삶의 숨결을 불어넣어 이 고장 특유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탄생시켜 놓았다. 이른바 중원문화의 한 뿌리이다.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을 분수계로 하여 동으로는 낙동강, 남·서로는 금강과 물굽이를 달리하는 달래강 유역은 속리산을 중심으로 화양계곡과 쌍곡계곡, 옥화9경, 수주팔봉, 수옥정폭포, 용추폭포 등 수많은 계곡과 명소를 아우르고 있다. 또 그 품안에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서 소중한 자연자원인 수달과 하늘다람쥐, 까막딱따구리, 미선나무, 망개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물줄기 주변엔 '국민 소나무' 정이품송을 비롯해 그 부인격인 정부인송, 용이 틀임하는 듯한 기괴한 모습의 용송(왕소나무) 등 이름난 소나무들이 천년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서제일의 가람 법주사, 우암 송시열의 화양서원과 만동묘, 벽초 홍명희의 삶과 혼이 깃든 괴강변,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충민사, 우륵의 가야금 선율과 신립장군의 호국얼이 배 있는 탄금대 등이 지역민의 자긍심을 키우는 역사와 문화의 산실로 남아 있다.

또한 물 맑고 공기 좋아 곳곳이 청정지역인 달래강 유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특산물이 산출되고 있다. 봄·여름이면 산과 들에 온갖 나물들이 지천하고, 가을이면 송이,능이,싸리버섯 등 각종 버섯이 쏟아져 나온다. 인근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충북의 대표적인 농산물로서 한국 인삼농업의 역사를 다시 쓰는 주역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고 사과, 복숭아, 고추, 절임배추, 논콩 역시 전국에 충북 농업을 알리는데 앞장서 온 효자 농산품이다.

달래강 물길은 곧 이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을 이어준 요람이자 터전이요, 애환과 기쁨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자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달래강에도 변화를 재촉하는 시대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다름 아닌 온천개발과 댐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십수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데다 최근엔 대운하 통과 예상지역으로 부각되면서 주민들을 또다시 찬반논란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지역의 위기냐, 발전의 계기냐를 놓고 주민들은 심한 갈등까지 빚고 있다.

이에 지역 환경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심혈을 기울여온 충청타임즈가 달래강 3백리 물길에 대한 심층취재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재조명하고 참 가치를 발굴해냄으로써 내일을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달래강의 설경
  달래강에 눈이 내렸다. 계곡과 바위, 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았다. 설경에 묻힌 달래강이 금새라도 숱한 전설을 통해낼 것 같다.  
 


◇ 달래강의 참모습 재조명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달래강의 현황(발원지 및 지리현황)을 비롯해 △역사(유래, 속리산 삼파수와의 관계) △문화(명승유적, 설화, 민속) △달래강 사람들 △특산물 △생태(식물상, 어류상, 조류상, 포유류상, 곤충류상, 양서파충류상 및 주요 동식물) △보전과 개발(관리·개발 실태와 보전방안)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취재팀은 달래강의 사계(四季)를 담기 위해 이미 지난 1월부터 사전 취재에 들어가 문헌·자료 조사와 함께 주요 지역에 대한 예비 답사, 겨울철새 및 발원지 탐사 등을 실시한 바 있으며, 이어 오는 10월까지 달래강 물길 전 수역에 대한 현지 답사 및 탐사를 통해 달래강의 참모습을 심층 취재 보도한 후 11∼12월 중에는 보전방안 등 결론 도출을 위한 지상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특히 역사 문화와 생태 분야는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동행 취재 및 탐사를 실시하고, 희귀종으로서 우리나라 주요 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와 수달, 까막딱따구리 등에 대해서는 현장 잠복 취재및 촬영을 통해 상세한 서식현황과 생태를 밝힐 계획이다

이 땅의 조상들은 농사철 비가오면 으레 하는 일이 있었다. 물꼬를 보는 일이었다.
곡식이 영글 무렵엔 더욱 더 그랬다. 행여 그 무렵에 비가 자주 오면 아예 그 옆에서 살았다.

그래서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벼농사가 모든 농사를 대변하던 시절 그야말로 벼 농사의 흥과 망은 민초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햇 과일이 막 나오고 벼가 알곡을 머금기 시작하는 유두날이 되면 충청도, 특히 충북지역에선 물꼬고사까지 지냈다. 부침개에 갓 나온 과일들을 물꼬에 차려놓고 정성껏 풍년을 기원하던 게 물꼬고사다.
법 없이도 살아가던 그 옛날 이웃사촌, 아니 친 사촌끼리도 걸핏하면 말다툼 하게 한 것이 물꼬다.

평소엔 그 쪽 없인 못산다고 할 만큼 마냥 친하다가도 어느 한 쪽이 물꼬를 잘못 막았든지 잘못 튼 경우엔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삿대질에다 멱살잡이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서로 원수가 될 정도로 싸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간에 서운한 감정을 곧잘 내비치게 했던 게 바로 물꼬다.
물꼬싸움은 우리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양(洋)의 저 편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이 바로 그를 입증한다.
라이벌은 강을 뜻하는 '리버(river)'에서 온 말로 본래 '강가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이편 저편 사람들이 강물을 다루는 과정에서 서로 옥신각신하게 됐고 또 그런 일을 자주 벌이다 보니 경쟁상대인 라이벌이 됐다. 모든 일의 합리성을 중시하던 그들이지만, 물의 방향을 이리 틀고 저리 트는 데엔 잦은 시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서양에서도 라이벌을 완전한 적대관계(enemy)가 아닌, 선의의 경쟁관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아 물꼬싸움을 그리 흉한 싸움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한반도엔 온통 비 얘기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리부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비 얘기다. 농촌 역시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농민 모두가 물꼬 옆에 붙어살아야 할 판이다. 예부터 가을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했듯이 요즘 내리는 비는 농사에 도움은 커녕 잘된 농사마저 망쳐버리는 쓸데 없는 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무 통속적으로 폄하하는 인간 이기주의적 표현인지는 몰라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그저 한숨으로 달래고 있는 농민들이 너무 안쓰러워 하는 말이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이고 무한정 내리다가 좀 뜸하다 싶으면 이내 또다시 내리붓는 요즘 비에 모두들 넌더리가 나 있다. 그래서인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데도 물꼬 보러가는 농부를 도통 볼 수가 없다.
농법이 바뀌고 물에 대한 관념도 변하고 물꼬의 기능이 변한 탓일까. 아니면 쌀값도 싼데 그까짓 벼 농사 쯤이야 하는 것일까.
물을 중시하던 시절의 물꼬란 그것을 제때 트고 막는 기술이 곧 농사의 큰 비결이었는데 지금의 농심은 그게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변해 있다.

 

계속되는 비 예보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한쪽에선 '강물 가지고 장난(?) 말라' 야단이다.
다름 아닌 이명박 대선후보의 경부대운하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수중시위가 충북땅 달천강에서 시작된 것이다. 환경련 회원들이 주축이된 시위대는 "경부운하 건설 계획은 그 자체가 백두대간을 두동강내는 반생태적 발상"이라며 "공약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배수의 진을 치고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꼭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지리·지정학상 백두대간과 그를 중심으로 나뉘어진 물길은 온 국토, 온 국민, 온 생태계를 아우르는
생명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특히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으로 서로 갈라져 흐르는 우리나라의 강 수계는 이른바 서한 아지역과 동북한 아지역, 남한 아지역이라는 세 개의 독특한 민물고기 분포구계를 구성하고 있다.
한강의 어류상이 양양 남대천과 다르고 낙동강과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 필요한 물줄기를 이어 운하로 이용한다 하니 한반도 생태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산을 다스리는 치산(治山)과 함께 나라 운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치수를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라 하여 국가운영의 제일과제로 삼고 각 시대마다 나랏님들이 물 다스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비록 나랏님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소중히 물을 다뤄왔다. 그를 대변하는 게 바로 물꼬다.
민초들은 물꼬를 잘 못 다루면 이웃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한해 농사를 그르쳤기에 신중히 다루었고, 나랏님들은 물을 잘못 다스리면 대재앙이 올 것을 우려해 더욱더 치수에 만전을 기했다.
물꼬는 다름 아닌 '물의 시작이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잘 못 틀어도 시비거리요 잘 틀어도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하늘에선 줄곧 빗물을 퍼붓고 항간에선 강과 관련된 '말'들이 무성한 요즘.

우리 조상들이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물꼬를 틀고 치수 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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