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농촌은 (芒種)이다


 옛말에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말이 있다.

또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도 있고 '별 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

모두 망종(芒種) 절기 때 나온 말이다.

망종 때 오죽 바빴으면 부엌에서 불 때던 부지깽이까지 나서서 사람 일손을 돕고, 일 하다가 바지춤을 내리기도 전에 발등에 오줌을 쌌을까.

가뜩이나 짧은 밤 제대로 잠 한숨 못 자고 별 떠 있을 때 일터에 나가 또 다시 별이 떠야 집으로 돌아오는 심정은 또 어떻고….

 

망종은 가시래기 망(芒) 자와 씨 종(種) 자가 합해서 이뤄진 말이니, 말 그대로 가시래기(까끄라기)가 있는 종자를 거둬들이는 철, 즉  보리 수확철을 일컫는다.

예전 경운기는 물론 트랙터도 없이 모든 일을 소나 사람 손으로 해야 했을 땐 보리 수확기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보리의 특성상 제 때 베지 않으면 대공이 쓰러져 손실이 많고 수확하기도 쉽지 않다. 또 보리를 얼른 베어내야 이모작으로 모내기도 하고 콩과 같은 다른 작물들도 심게 된다.

농사란 게 시기를 놓치면 모두가 폐농하게 되니 잠시도 헛눈을 팔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베어낸 보리는 일일이 손으로 타작을 해야만 했으니 일이 끝이 없었다.

볼 일 보고 뭐 볼 시간도 없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이다.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고, 내 일 하다보면 남의 일 해야 하는 품앗이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끊임없이 이어져 일손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芒種을 다른 말로 亡終이라고도 했다.

끝을 잊었다는 얘기다.

 <사진설명>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산골다랑이 논에 늦모내기를 하고 있는 장면. 6월 3일 전북 무주 내도리 입구에서>

 

작가 이문구의 동시 「오뉴월」은 망종 때의 바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집이야 어찌 됐든 일부터 해야하니까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제 일을 하다가 저녁 늦게서야 만나는 농촌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이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늦잠 자고 일어나면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차려진 초라한 밥상을 혼자서 대해야 했던 그 시절.

집에서만 놀기가 따분해 엄마 아빠가 있는 일터를 찾아가면 바쁜데 왜 찾아와 귀찮게 하느냐고 면박 아닌 면박을 받았던 기억과 함께….

바쁠 땐 있는 집 애들이나 없는 집 애들이나 다 같이 찬밥 신세였으니 끼리끼리 모여 해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게 하루 일과였다.

소꿉놀이에 풀장난 흙장난 하다보면 옷은 옷대로 얼굴은 얼굴대로 온통 시커멓게 돼 까마귀 새끼나 진배없었다.

 

예전의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망종 절기가 돌아왔다.

현충일인 6일이 망종이니 이 날부터 하지(22일) 전까지가 이른바 망종 절기다.

망종 절기를 맞은 농촌은 지금 무척 바쁘다.

예전처럼 보리 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 데다 농사일도 트랙터나 이앙기 같은 농기계가 대신 하니 발등에 오줌 쌀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바쁜 철임엔 틀림없다.

모내기를 아직 못한 곳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모를 낸 곳도 제초제 뿌리랴 비료 주랴 밭작물 손보랴 하루해가 짧다.

담배나 고추 농사 짓는 농가는 더없이 바쁘다.

담배의 경우 제 때에 잎을 따야 빛깔이 잘 나고 고추는 장마철 오기 전에 말목 박아 탄탄히 해놔야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이 참에 한번쯤 고향에 들러 일에 지친 꼬부랑 노인네들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 도리인 듯 싶다.

명절 때만 찾아갈 것이 아니라 부지깽이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요즘 고향을 찾아 함께 농약 치고 고추 말목 하나라도 박는 게 더 큰 보람이 있으리라.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농촌에 들러 '망종'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그 유래와 의미도 일러줘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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