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6년 04월 23일 0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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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날아갔다 사고사 한 한반도 방사 황새 '산황(K0008)'./아시아뉴스통신DB> |
1971년 4월은 잔인했다. 굳이 영국 시인 엘리엇이 그의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명구(名句)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해 4월은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생존해 있던 야생 황새 한쌍 중 수컷이 포수의 총에 맞아 죽은 게 그해 4월이었다. 그것도 4자가 겹치는 4월4일이었다. 해서 더 잔인한 날로 기억된다.
장소는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 무수동으로 당시 그 수컷과 함께 보금자리를 틀었던 암컷 황새는 졸지에 ‘과부 황새’란 별칭을 얻은 채 10여년간 혼자서 무정란을 낳아야 했다. 그러다 그 암컷마저도 농약에 중독돼 사경을 헤매자 1983년 11월 창경궁 동물원으로, 1988년 12월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가 결국 1994년 9월23일 숨지고 말았다.
이들 ‘한 많은 삶’이 사라진 지 44년째(수컷 기준)와 21년째(암컷 기준) 되던 지난해 9월3일 한반도 충남 예산에선 의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반도 황새복원을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8마리의 인공증식된 황새가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는 행사가 열렸다. 1996년 7월 러시아에서 1마리, 독일에서 2마리를 들여와 황새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19년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230여일이 지난 23일 현재 이들 황새는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지난해 자연 방사 당시 ‘대한민국 만세 예산’이란 각 글자에 황자를 붙여 대황, 한황, 민황…산황이라고 이름 붙여진 8마리의 황새(개체번호 K0001, K0002…K0008)들은 과연 어떻게 지낼까.
확인 결과 우여곡절을 겪었거나 목하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중이다.
우선 자연으로 보내진 황새들이 방사 후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냈다. 사람 손에 의해 길러지다 자연으로 보내진 8마리 중 2마리가 정신없는 행보를 보였다. 바로 1년생 수컷들(K0007. K0008)이었다.
이들 어린 수컷 2마리는 풀어놓자마자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산황(K0008)이란 황새는 방사 후 한 달여 동안 전북 고창 곰소만과 전남 해남 금호호, 장흥 장재도, 남원 아영면 등지로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
이동거리가 무려 480㎞에 이르렀고 하루 최대 115㎞나 이동했다. 역시 1년생인 예황(K0007)이도 비슷한 활동력을 보였다.
이유가 있었다. 자연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미로부터 학습 받아 어느 곳에 먹이가 있고 쉴 곳은 어디이며 장거리 이동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자랄 시기인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홀로 자연에 놓아졌기 때문에 그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막내 격인 산황이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한반도 남쪽 해안에서 혼자 날아올라 무려 1077km를 3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한 끝에 일본 오키노에라부 섬에 상륙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더 놀라게 한 것은 그곳 섬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이 끊겼고 끝내 그곳 비행장에서 사고사 당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어지는 ‘불운의 새’가 됐다.
또 이들 중에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 살아온 황새도 있다. 지난해 10월 전북 진안의 용담댐 상류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만황(K0005.수컷)이가 인근 농경지의 차광막 나일론 끈에 다리가 걸려 탈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주민 신고로 구조돼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치료 받고 다시 야생 생활로 되돌아갔다.
또 방사된 개체 중 2013년생인 민황(K0003.암컷)이는 지난 3월 북한 땅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예산황새공원으로 돌아온 최초의 황새로 기록됐다. 민황이는 당시 천수만 간척지에 모여 있던 야생 황새들이 북상할 때 함께 이동했다 되돌아온 것으로 추측된다.
방사한 황새 중에는 지난해 방사 이후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줄곧 충남 태안에 머물고 있는 개체가 있다.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인근에 양어장이란 먹이터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연을 헤매면서 방랑 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한 곳에 머물더라도 인공적인 먹이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2마리의 황새가 있다. 방사 후 첫 봄을 맞으면서 짝을 이룬 커플이다. 이들은 2개의 알까지 낳았다.
바로 북한 땅까지 날아갔다 돌아온 민황(K0003)이와 농경지 나일론 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던 만황(K0005)가 짝을 맺어 번식활동에 들어감으로써 관계자들을 기대감에 부풀게 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자연부화에 성공한다면 국내 인공 방사한 황새의 첫 번째 번식사례로 기록된다. 한반도 황새복원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서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사를 눈앞에 두고도 씁쓰레 하는 이들이 있다. 황새복원사업을 이끌어 오고 있는 한국교원대 박시룡 교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이다.
박 교수는 22일 아시아뉴스통신과의 통화에서 속내를 밝혔다. 민황이와 만황이가 짝을 이뤄 알을 낳았기에 약 한 달 후면 ‘국내 1·2호 자연산 황새’가 태어나게 될 전망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입장이 아니라는 의외의 입장을 털어놨다.
이유는 이렇다. 방사한 황새를 포함해 앞으로 태어날 황새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서식환경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아 복원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민황·만황 커플도 현재 ‘인공적인 서식조건’에 의존해 번식활동을 하고 있을 뿐 자연적인 삶이 아니란다. 특히 가장 중요한 먹이마저 인공으로 제공하고 있다.
인공습지에서 인공둥지에 알을 낳고 인공으로 제공되는 먹이를 먹고 있으니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달가워 할 수만은 없는 입장인 것이다. 자연으로 되돌려 보낸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이전부터 서식지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제 아무리 많은 황새를 인공 증식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낸 들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환경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황새 복원사업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서식 환경은 그대로인데 황새 방사와 자연변식이 이어진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란 항변으로 들린다.
여기에 더해 황새복원사업에 대한 당국의 의지 또한 의문 부호를 갖게 하고 있다. 그동안 인공 증식시켜온 황새들을 연차 계획에 따라 적정 지역에 방사해야 하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남의 일’ 대하듯 하고 있다.
해서 한반도 황새복원사업의 전반적인 틀을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당국이 실질적인 복원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주체로서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새복원사업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황새에게 줄 먹이 때문에 예산걱정이나 하고 단계적 방사장 인근에 조성할 인공습지 예산 확보를 위해 모금운동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 현 상황을 당국은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의 방사 황새들은 사람 근처를 맴돌거나 정신없이 헤매고 있다. 이게 우리나라 황새복원사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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