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똥 이야기(2)

 

똥 이야기는 사실 대놓고 하기엔 좀 그런 부분이 있다.

 

똥 자체가 야생동물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그리 썩 내키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냄새도 그렇거니와 이미지 또한 더러운 것의 대명사로서 뇌리 깊숙이 각인돼 있는 까닭에 "똥" 하면 벌써 얼굴부터 찡그리기 일쑤다.

 

그러나 어쩌랴. 야생동물 얘기를 하자니 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고 그렇다고 똥 대신 다른 말을 쓰자니 딱히 대체할 말도 없으니 그저 똥이라고 할 수밖에.


혹자는 "배설물이란 점잖은 말이 있는데…"라고 할 지 모른다. 하나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배설물이란 생물체가 신진대사를 통해 몸밖으로 배설하는 물질, 즉 똥과 오줌, 땀 따위를 총칭한다.

 

그러니 어찌 똥 이야기를 하는데 오줌과 땀 등을 총칭하는 말을 쓰겠는가.


"그러면 변(便)도 있고 분(糞)도 있는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과 분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야생동물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야생동물의 변? 야생동물의 분? 더 이상하지 않은가.

 

뜻 자체도 변은 똥과 오줌을 의미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 배설물에 가깝다.

 

분 역시 똥을 뜻하긴 하나 본래 의미(米+異 = 쌀의 다른 모양 즉 쌀이 변해서 된 것)로 볼 때 야생동물보단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축분이란 말이 있긴 하나 여기서의 축은 가축이다.

 

또 공룡의 똥화석을 굳이 분(糞)화석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맞는지는 독자 판단에 맡긴다.


어쨋거나 똥은 똥이고 똥처럼 정직한 것도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똥은 먹은 그대로의 표출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어원 풀이가 있다. 한 전문의사가 펴낸 책에 "똥의 어원은 동(銅)이 아닐까"라는 기발한 내용이다.

 

그는 "옛날엔 동(銅)이 거울로 사용됐다. 구리 거울을 닦고 문질러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마찬가지로 똥은 우리 몸 속을 비춘다.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질환 같은 것들을 똥으로 살필 수 있다"며 "몸 속을 비추는 거울 같은 똥을 동(銅)과 비슷한 발음인 똥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아닐까"라고 풀이했다.


똥은 먹은 대로 눈다. 야생동물 또한 그렇다.

 

풀을 먹으면 풀 먹은 똥을, 짐승을 잡아먹으면 짐승 잡아먹은 똥을 눈다.


심마니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천종(天種)이니 지종(地種)이니 하는 말이 있다. 천종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씨앗이 떨어져 난 산삼을 뜻하고 지종은 땅에서 나고 자란 산삼을 말한다.

 

이 천종과 지종이란 말 속엔 야생동물의 역할, 특히 야생동물의 똥이 자연에게 베푸는 심오한 기능이 함축돼 있다.

 

천종 산삼은 야생동물 중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지종 산삼은 네발 가진 들짐승을 통해 씨앗의 발아과정을 거친다.

 

삼 씨앗은 껍질이 워낙 두껍고 단단해 그냥 땅에 떨어지면 여간해 발아하지 않지만, 이를 새와 들짐승이 먹으면 장내 소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껍질이 위액에 어느 정도 녹아 잘 발아할 수 있는 상태가 돼 똥으로 배출된다.

 

똥은 정직하기에 삼딸(열매)을 먹은 새와 동물들은 반드시 어딘가엔 삼씨가 든 똥을 누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그 똥에서 삼씨가 발아해 천종과 지종이 되는 것이다.

 

이때 삼 씨앗이 똥에서 분리되면 어떻게 될까. 발아율에 변화가 온다. 이미 소화과정을 거치면서 껍질이 깎인 상태이기 때문에 씨앗이 똥 속에 들어있건 똥과 분리되건 발아율에 차이가 날까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큰 차이를 보인다. 똥 속에 든 상태에서 발아할 때가 훨씬 더 높다. 그러기에 씨앗과 똥이 분리되기 쉬운 새 똥에서 난 천종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똥이 그냥 똥이 아니란 사실은 여기서도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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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똥 이야기(1)

 

똥은 똥이다. 그러나 똥이 아니다.

 

적어도 야생동물의 똥 만큼은 흔히 말하는 똥이 아니다. 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야생동물의 똥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단순히 먹고 싼 잔재물이 아니다.

 

똥 주인이 어느 동물인지, 초식성인지 육식성인지 잡식성인지, 또 무엇을 주로 먹는지 등등을 포함해 그 동물의 거의 모든 삶을 밝힐 수 있는 단서다.

 

똥처럼 정직한 것도 없다. 먹은 그대로의 표출이다.

 

요즘엔 학문 발달로 똥부스러기만 가지고도 DNA분석을 통해 개체식별 등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똥은 특유의 냄새가 있다. 똥내다.

 

똥이 더럽다는 이미지가 비록 똥내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똥내에도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네발 가진 들짐승 중에는 항문에 특정냄새를 풍기는 분비샘이 있어 똥을 눌 때 분비물도 함께 배출한다. 이 분비물은 주로 성숙한 개체의 짝짓기 철에 배출돼 배우자를 찾는 데 중요 역할을 한다.

 

짝짓기할 준비가 됐으니 알아달라는 구혼 메시지다. 오줌내가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야생동물의 배설물, 즉 똥과 오줌은 영역표시에도 자주 이용된다. 이 때도 냄새가 작용한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이 배설물 냄새에 동종은 물론 종이 다른 동물도 강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런 예가 있다. 얼마 전 삵을 촬영하기 위해 삵이 자주 다니는 괴산의 어느 산길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해 놨는데 엉뚱하게도 너구리가 찍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너구리의 행동이었다. 삵똥 근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만 이내 냄새를 맡고 되돌아와서는 자신의 몸뚱이를 삵똥에 마구 비벼댔다.

 

참으로 이상했다. 너구리와 삵은 딱히 앙숙관계도, 그렇다고 우호적인 사이도 아닌데 너구리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추측하건대 너구리는 삵처럼 자신보다 강한 이미지를 가진 짐승 똥내를 스스로 몸에 묻힘으로써 보다 강하게 보이려는 일종의 의태(擬態) 습성이 있지 않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너구리가 단순히 자신의 냄새를 삵똥에 남기려면 그 위에 직접 똥이나 오줌을 누면 될 것을 굳이 남 똥에 몸을 비벼대겠는가.


야생동물의 똥내는 종에 따라 다르다. 먹이와 장내 박테리아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치류를 잘 잡아먹는 족제비 똥에서는 노린내가 나고 물고기를 주로 먹는 수달 똥에서는 비린내가, 돼지처럼 무엇이나 잘 먹는 멧돼지 똥에서는 구린내가 풍긴다. 똥내 또한 정직하다.


똥이 그냥 똥이 아니란 건 다음 예에서 보다 확실해 진다.

 

멧토끼를 관찰하다 보면 평상시엔 딱딱한 똥을 누다가도 때론 부드럽고 가는 똥을 누는 것을 볼 수 있다. 습관적으로 두 가지 똥을 누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신기한 건 부드럽고 가늘게 눈 똥은 누자마자 다시 먹는다는 점이다.

 

토끼류 외에도 일부 설치류도 자신의 똥을 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식분성이라 한다.

 

이 기이한 습성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일부 학자들은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비타민류를 재섭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똥이 이럴진대 어찌 단순히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라 하겠는가.

 

야생동물의 똥은 그 동물의 생활습성까지도 말해준다.

 

너구리, 산양처럼 별도의 똥자리를 마련해 놓고 매번 그 곳에만 볼일 보는 '화장실 타입'이 있는가 하면 멧돼지처럼 아무데나 누는 '노상방뇨형'이 있다.

 

또한 오소리처럼 굴 입구에다 버젓이 실례하는 동물도 있고 야생 고양이처럼 흙으로 은근슬쩍 덮어놓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눈에 잘 띄고 냄새도 잘 퍼지며 모양새도 오래 남는 곳에 주로 똥을 눈다는 점이다.

 

마치 "내똥 여기 있소"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게 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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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같은 세상, 에라 똥이다

 
 어린아기의 똥은 건강 리트머스다. 해서 엄마들은 흔히 똥의 상태를 통해 아기 건강을 체크한다. 똥이 노란지 푸른지, 아니면 묽은지 된지, 자주보는지 적당한 시간에 보는지, 점액은 없는지 등을 살펴봄으로써 말 못하는 아기의 건강을 가늠한다. 어떤 엄마는 굳이 냄새까지 맡아본다. 구수하면 OK, 구리면 걱정부터 하며 약가방을 찾는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 스스로 제똥을 관찰하는 게 다를 뿐이다. 쾌변이면 기분 좋고 시원찮으면 꺼림칙해 한다. 제 아무리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똥 상태 앞에서는 고개 숙인다. 그만큼 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함에도 누구나 똥 얘길 꺼린다. 아니 무슨 금기사항이나 되는 것처럼 고상 떨기 일쑤다. 대놓고 똥 얘길 하면 천하다거나 거친 사람 취급한다. “내 안엔 똥이 없다”는 식이다.


 똥은 생태학에서도 중요한 대상이다. 생태조사를 할 땐 어느 지역에 어느 종의 동물이 서식하는지 추적케 하는 중요 단서다. 또 그 동물이 언제 지나갔는지, 크기는 어느 정도이고 몇 개체가 서식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주요 잣대다. 짐승똥은 또 그 주인의 습성도 말해준다. 예를들어 오소리와 너구리는 꼭 자신들만 애용하는 이른바 똥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고 매번 볼일을 보지만 그 양상이 다르다. 오소리는 대개 똥굴을 파고 그 앞에 눗거나 한 장소에 널찍이 누는데 반해 너구리는 똥굴을 파지 않고 한 장소에 수북이 쌓이도록 눈다.
 또한 짐승똥은 상냥스럽게도 주인장의 식성까지 알려준다. 검은색에 질고 마디가 없으며 쉽게 썩으면 오소리똥이요 똥자루가 비교적 굵고 비닐 조각 등 이물질이 섞여 있으면 너구리똥인 경우가 많다. 오소리는 딱정벌레나 지렁이 같은 무척추동물을 즐겨 먹고 너구리는 도토리같은 식물 열매서부터 쥐,새,쓰레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먹이를 먹기 때문이다.
 짐승똥은 일종의 신호 역할도 한다. 맹금류인 황조롱이는 쥐가 싼 똥에서 발산되는 자외선을 감지해 쥐가 숨은 장소와 마릿수까지 감지한다. 더욱더 신기한 것은 똥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동물도 있다는 점이다. 일부 곤충의 애벌레들은 천적이 다가오면 냄새가 지독한 똥을 순간적으로 분사해 위기를 모면한다. 똥은 또 영역 표시 역할도 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매일밤 야간순찰을 돌며 자신의 똥자리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말에 똥줄이란 말이 있다. 원뜻은 급하게 내깔기는 똥줄기를 일컫지만 흔히 관용구로 사용된다. 다급한 사태에 부닥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상태에 있을 때 ‘똥줄이 타다’란 말을 쓰고 혼이 나서 매우 급할 때는 ‘똥줄이 빠지다’란 표현을, 몹시 두려워 겁을 낼 때는 ‘똥줄이 당기다’란 표현을 쓴다.
 목하 우리사회에는 똥줄이 타고 빠지고 당기는 사람들이 꽤나 여럿 있어 보인다. 구린돈에 얽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전직 대통령 패밀리와 주변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내 안엔, 적어도 우리 식솔들 안엔 전혀 구린 똥은 없을 것”이라고 임기중 입만 열면 떠들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벌써 뒷간 갔다온 걸 잊은 모양이다.


 똥의 속성은 어쨋든 구린 것이다. 다만 그 주인장의 상태에 따라 구린 정도가 다를 뿐이다. 자신은 구리지 않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구린지 안 구린지, 아니면 헛방구인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속내야 어떻든 국민을 기만한 파렴치에 속이 매스껍다. 누구는 ‘똥줄 빠지게’ 벌어도 평생 못 만져볼 돈을 빚얘기 한 마디에 덥석 주고 받았다니, 똥 같은 세상이다. 에라,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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