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이 하나의 강(고황하)으로 연결돼 있던 먼옛날 생겨난 민물고기가 있다. 붕어,잉어,피라미,미꾸리 같은 이른바 3국 공통어종이라 불리는 것들로 이들의 분포도는 지질시대에 3국이 하나의 대륙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단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붕어로서 특히 이 물고기는 3국서 불리는 명칭까지 어원이 같은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중국에서의 명칭 변화를 보면 고대에는 후유,근대에는 지유,현재는 지로 바뀌었는데 그 중 후유,지유란 말이 한반도에 유입돼 조선 초·중기까지 부어(鮒魚)와 즉어(魚+卽 魚)란 한자어가 병용됐다. 그러던 것이 허준의 동의보감에 이르러 한글로 붕어라 표기됐으니 이로 보아 그 무렵(1600년대초) 이전에 붕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붕어란 말은 물론 부어에서 유래됐다. 일본에서는 붕어를 후나라 하는데 역시 중국어의 후유(부어)에서 유래됐다. 즉, 후나의 '후'가 한자어 '부'의 일본식 발음이다.
한,중,일 3국의 붕어는 본래 고향이 고황하란 점에서 처음엔 유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고황하가 사라지고 한,중,일 수계가 단절되면서 각기 종 분화가 이뤄져 오늘날처럼 유전 및 형태학적으로 약간씩 다른 종 구성을 이루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토종붕어를 하나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5개의 아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름은 각기 킨부나,긴부나,나가부나,니고로부나,겡고로부나로 불린다. 물고기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고 최기철박사가 생전에 "국내 붕어의 분류학적 체계를 못 세운 것이 한이 된다"고 밝힌 바 있듯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종의 세분화 작업과 함께 각 아종의 서식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면 외래종의 유입과 품종개량 등으로 토종붕어의 유전자가 크게 교란돼 가는 데다 각 서식지를 대상으로 한 치어 방류사업이 지자체별,단체별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한강쪽 붕어가 금강으로 유입되고 금강쪽 붕어가 한강으로 유입되는 등 토종본래의 지역적 특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입돼 토종 붕어의 유전적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외래종 붕어는 일본산 떡붕어와 중국산 자장붕어,쨔지붕어,잉붕어,향붕어,무창위붕어 등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중 특히 일본서 들여온 떡붕어는 일본내에서 자연산 겡고로부나를 개량한 가와치부나가 원종으로서 일명 헤라부나(납작붕어)라고도 하는데 종 특성상 토종과 잡종 형성이 잘 이뤄지고 타 어종의 알까지 마구 먹어치우는 등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애물단지같은 떡붕어가 급기야 마지막 토종붕어의 천국으로 남아있던 충북 괴산호까지 점령하는 씻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졸지에 외래어종 천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토종붕어가 지천하던 괴산호가 낚시만 던지면 떡붕어 잡종(일명 희나리)이 잡혀올라올 정도로 어종이 급변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역민들은 몇해 전부터 실시한 붕어 치어방류를 원흉으로 꼽는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몰지각한 낚시꾼들에 의해 몰래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속의 폭군 큰입배스에 이어 이젠 망나니까지 들어와 휘젓고 있으니 괴산호 생태계는 말 그대로 안방 내주고 몸 주고 거기다 씨까지 빼앗긴 신세가 됐다. 조선 후기 이규경선생이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비린내도 안 나고 맛도 가장 좋다"고 치켜세웠던 '충북의 붕어 체면'을 그나마 최근까지 지켜온 곳이 괴산호였는데 허사가 됐다. 이를 어찌 할꼬.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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