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이으려면 이것부터 생각하라

 
 1990년 8월 11일 속리산이 떠들썩해졌다. 어류를 비롯한 13개 분야 50여명의 학자가 참여한 국내 최대규모의 종합학술조사에서 ‘뜻밖의 성과물’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당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종개라는 아주 작은 민물고기로, 이 물고기가 처음으로 속리산 뒤편 낙동강 수계서 발견됨으로써 ‘먼 옛날 한강과 금강, 낙동강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종개는 한강과 금강 이북에 사는 북방계 어류다. 따라서 남방계 수계인 낙동강 최상류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첫 발견 이상’의 의미, 즉 속리산이 생겨나기 전 3개의 물줄기가 이어져 있다가 속리산이 솟아오른 뒤 오늘날의 삼파수(三波水)가 형성됐음을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렇듯 물고기의 서식분포는 한반도 형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하는 등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2001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청주시 의뢰로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박사진들과 함께 무심천 일대에 대한 생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어류분야서 매우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즉, 그 이전까지의 조사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던 파랑볼우럭(일명 블루길)과 민물검정망둑이 발견된 것이다. 해서 어류팀장인 홍영표박사와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찾은 결과 ‘대청호 물의 인위적 방류’가 이들 물고기의 알과 치어를 무심천으로 흘러들게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무심천에 새물을 끌어들이면서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사례는 어느 한 물줄기를 다른 물줄기로 강제유입(방류)시키거나 서로 이을 경우 서식어종 변화와 같은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한다. 서식어종이 인위적으로 변한 하천에서의 어종 분포도는 앞서 말한 본래의 학술적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한국어류학계의 태두이자 ‘물고기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명예교수)가 생전에 말한 국내 어류학계의 현실이다. 당시 최박사는 “국내에는 여러 종의 붕어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아직 명확히 종 분류를 못하고 있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우리 어류학계, 특히 분류학계에서는 아직도 해결 못한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갈겨니가 참갈겨니와 갈겨니로 나눠지고 쉬리가 북방계 쉬리와 남방계 쉬리로 연구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 한 종으로 분류되던 물고기들이 점차 세분화 돼 가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어류분류학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대변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열거한 바 같이 국내 각 수계에 분포하는 물고기 종과 생태계는 각기 나름대로 중요한 학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학계의 현실은 토종 붕어의 계통도 제대로 못밝혀낼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말해 민물고기에 관한 한 “이것이 실체다”라고 할 만큼 명확한 생태지도가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걸핏하면 대운하를 건설하네 마네 떠들어 대고 4대강 물길을 서로 잇네 마네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잊을만 하면 터져나와 온국민을 마냥 헷갈리게 하는 대운하 논란. 그 논란의 저 편엔 우리의 소중한 유전자원, 한반도 고유의 하천 생태계가 그 실체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못한 채 복날 앞둔 개 꼴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명심할 것은 4대강이든 어떤 물길이든 그것을 인위적으로 잇는 행위는 먼옛날 삼파수를 갈라놓은 속리산의 솟구침 보다도 더 엄청난 ‘인위적인 지각변동’이란 사실이다. 

18세기 독일 북부에 프로이센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절대주의 국가를 확립한 군주로 유명한 데 엉뚱하게도 버찌를 좋아했다. 

어느날 그가 정원을 거닐다가 벚나무에 참새가 날아와 버찌를 먹어치우는 걸 목격했다.

화가 난 그는 즉시 포고령을 내려 참새란 참새는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추상같은 명령에 온 나라가 뒤집혀 참새 사냥을 한 결과 2년만에 해충이 들끓어 나무와 곡식이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버찌마저 열리지 않게 됐다.

뒤늦게 참새의 역할을 깨달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성급했던 판단을 후회하며 곧바로 참새 보호에 나섰다.

2백년 뒤 중국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산혁명을 마친 중국정부는 쥐,파리,벼룩,참새를 소위 사해(四害)라 하여 대대적인 추방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 베이징에서만 30만 마리의 참새가 잡혀죽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참새가 줄수록 되레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다.

조사결과 대흉작의 원인이 참새와 해충간의 역학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서둘러 참새박멸을 중단했다.

단편적이나마 이들 사례는 큰 교훈을 던져준다.

하나는 그릇된 자연 환경정책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를 역사적 사실로써 입증해준다.

자연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게 자연 환경인 만큼 인간의 짧은 소견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건 금물임을 일깨워준다.

또 하나는 비록 추진중인 정책일지라도 잘못된 것일 경우엔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뤄봤자 손해다.

우리도 이미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초와 조류(藻類)를 없앤답시고 외국서 초어와 백련어를 들여다 강과 저수지에 풀고 자원증식 시킨다고 육식어종인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들여와 함부로 호소에 푼 것이 민물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않았는가.

또 산림을 녹화하고 화전을 없앤다며 아까시나무와 리기다소나무,낙엽송,은사시나무를 마구 심었다가 훗날 이상한 식생이 나타나자 돌연 조림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지 않았는가.

또 시화호와 새만금 사업의 악몽은 어떻고….

자연은 미래로부터 빌려온 후손들의 재산이다.

그런 만큼 현재 보이는 알량한 이익과 욕심 때문에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더욱이 도를 넘어선 과도한 개발은 미래 후손들의 재산을 선조 임의로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건 엄청난 재물손괴다.
그럼에도 우린 목하 한반도 대운하란 소용돌이에서 2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추진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다. 완전 백지화 선언이 아닌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란 묘한 단서 때문이다.

현재의 반대여론을 두고 한 말인지, 앞으로 국민의사를 묻는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외신들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해석할 뿐이다. 때문에 찬반여론이 다시 들썩이고 관련 건설업계,부동산 시장,주식시장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물길 마다엔 그곳에 적응된 여러 생명체가 독특한 유전형질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같은 종이라도 한강 것과 금강 것이 다르다. 그들의 유전자엔 그들 종이 지닌 생명의 비밀과 한반도의 비밀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토종 물고기라도 함부로 이동시켜선 안되는데 하물며 물길을 송두리째 터 연결하는 건 이만저만 큰 사건이 아니다. 유전 다양성에 대한 반란이다.
참새 한 종 잘못 건드려도 곧바로 화가 되돌아오는 게 자연이다.

그런 자연을 얕잡아 보고, 참새를 단지 버찌나 따 먹고 곡식 낟알이나 훔쳐먹는 생도둑으로 몰았다가 된통 당한 그 옛날 독선자들의 망령을 다신 보지 않았으면 한다.

비단 대운하 뿐만이 아니고 모든 자연 환경정책에서….

이 땅의 조상들은 농사철 비가오면 으레 하는 일이 있었다. 물꼬를 보는 일이었다.
곡식이 영글 무렵엔 더욱 더 그랬다. 행여 그 무렵에 비가 자주 오면 아예 그 옆에서 살았다.

그래서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벼농사가 모든 농사를 대변하던 시절 그야말로 벼 농사의 흥과 망은 민초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햇 과일이 막 나오고 벼가 알곡을 머금기 시작하는 유두날이 되면 충청도, 특히 충북지역에선 물꼬고사까지 지냈다. 부침개에 갓 나온 과일들을 물꼬에 차려놓고 정성껏 풍년을 기원하던 게 물꼬고사다.
법 없이도 살아가던 그 옛날 이웃사촌, 아니 친 사촌끼리도 걸핏하면 말다툼 하게 한 것이 물꼬다.

평소엔 그 쪽 없인 못산다고 할 만큼 마냥 친하다가도 어느 한 쪽이 물꼬를 잘못 막았든지 잘못 튼 경우엔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삿대질에다 멱살잡이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서로 원수가 될 정도로 싸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간에 서운한 감정을 곧잘 내비치게 했던 게 바로 물꼬다.
물꼬싸움은 우리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양(洋)의 저 편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이 바로 그를 입증한다.
라이벌은 강을 뜻하는 '리버(river)'에서 온 말로 본래 '강가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이편 저편 사람들이 강물을 다루는 과정에서 서로 옥신각신하게 됐고 또 그런 일을 자주 벌이다 보니 경쟁상대인 라이벌이 됐다. 모든 일의 합리성을 중시하던 그들이지만, 물의 방향을 이리 틀고 저리 트는 데엔 잦은 시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서양에서도 라이벌을 완전한 적대관계(enemy)가 아닌, 선의의 경쟁관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아 물꼬싸움을 그리 흉한 싸움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한반도엔 온통 비 얘기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내리부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비 얘기다. 농촌 역시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농민 모두가 물꼬 옆에 붙어살아야 할 판이다. 예부터 가을농사는 하늘이 지어준다고 했듯이 요즘 내리는 비는 농사에 도움은 커녕 잘된 농사마저 망쳐버리는 쓸데 없는 비다.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을 너무 통속적으로 폄하하는 인간 이기주의적 표현인지는 몰라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그저 한숨으로 달래고 있는 농민들이 너무 안쓰러워 하는 말이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이고 무한정 내리다가 좀 뜸하다 싶으면 이내 또다시 내리붓는 요즘 비에 모두들 넌더리가 나 있다. 그래서인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데도 물꼬 보러가는 농부를 도통 볼 수가 없다.
농법이 바뀌고 물에 대한 관념도 변하고 물꼬의 기능이 변한 탓일까. 아니면 쌀값도 싼데 그까짓 벼 농사 쯤이야 하는 것일까.
물을 중시하던 시절의 물꼬란 그것을 제때 트고 막는 기술이 곧 농사의 큰 비결이었는데 지금의 농심은 그게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변해 있다.

 

계속되는 비 예보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한쪽에선 '강물 가지고 장난(?) 말라' 야단이다.
다름 아닌 이명박 대선후보의 경부대운하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수중시위가 충북땅 달천강에서 시작된 것이다. 환경련 회원들이 주축이된 시위대는 "경부운하 건설 계획은 그 자체가 백두대간을 두동강내는 반생태적 발상"이라며 "공약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배수의 진을 치고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꼭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지리·지정학상 백두대간과 그를 중심으로 나뉘어진 물길은 온 국토, 온 국민, 온 생태계를 아우르는
생명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특히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으로 서로 갈라져 흐르는 우리나라의 강 수계는 이른바 서한 아지역과 동북한 아지역, 남한 아지역이라는 세 개의 독특한 민물고기 분포구계를 구성하고 있다.
한강의 어류상이 양양 남대천과 다르고 낙동강과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 필요한 물줄기를 이어 운하로 이용한다 하니 한반도 생태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부터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산을 다스리는 치산(治山)과 함께 나라 운영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치수를 경국지대도(經國之大道)라 하여 국가운영의 제일과제로 삼고 각 시대마다 나랏님들이 물 다스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비록 나랏님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소중히 물을 다뤄왔다. 그를 대변하는 게 바로 물꼬다.
민초들은 물꼬를 잘 못 다루면 이웃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한해 농사를 그르쳤기에 신중히 다루었고, 나랏님들은 물을 잘못 다스리면 대재앙이 올 것을 우려해 더욱더 치수에 만전을 기했다.
물꼬는 다름 아닌 '물의 시작이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잘 못 틀어도 시비거리요 잘 틀어도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하늘에선 줄곧 빗물을 퍼붓고 항간에선 강과 관련된 '말'들이 무성한 요즘.

우리 조상들이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물꼬를 틀고 치수 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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