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과 청원군의 너무나 이상한 허가


 괴산·청원 관내의 달래강 중상류에선 요즘 이해 안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강줄기는 같은데 내용은 너무나도 판이한 다슬기 채취허가가 남으로써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냉가슴을 앓고 있고 자연생태계는 자연생태계대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한쪽에선 앞뒤가 맞지 않는 허가로 인해 허가받은 주민들이 되레 마음놓고 다슬기를 잡지 못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씨를 지우든 말든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는 식의 싹쓸이 허가를 내줘 가뜩이나 사라져가는 유전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괴산군은 지난해 6월 청천·칠성·괴산·감물 등 4개 지역 작목반에게 1년간의 다슬기 채취허가를 내줬다. 그런데 말로는 다슬기 채취허가이지 속으로는 다슬기를 잡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리송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1개 작목반당 허가한 그물 갯수부터가 작목반원들을 우롱하고 있다. 지역당 1개씩인 작목반에 하루 2채씩의 그물만 사용토록 허가함으로써 반원수가 50명인 청천면은 25일을, 46명인 칠성면은 23일을, 11명인 괴산읍은 5.5일을, 13명인 감물면은 6.5일을 기다려야 개인적으로 그물을 사용할 수 있다. 요즘 이뤄지는 다슬기 채취가 대부분 그물끌기에 의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원들은 자기 차례 기다리다가 굶어죽기 십상이다. 반원들은 거의 다 다슬기잡이가 직업이자 밥벌이 수단이다. 돌아가면서 하루 몇 시간씩 할당제로 운영한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순번 기다리다 날새울 건 뻔하다.


 다음은 그물 규격이다. 다슬기 잡으라고 허가한 그물코의 한쪽 길이가 5cm를 넘어야 한단다. 작목반원들의 표현을 빌면 이는 갈퀴로 다슬기를 잡으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피라미 잡는데 잉어그물 쓰는 격이다. 그물코가 5cm이상이면 다슬기가 주먹만 해야 한다. 반원들은 또 잡을 수 있는 다슬기의 크기를 1.5cm 이상으로 못박은 것도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고 지적한다. 달래강서 잡히는 다슬기는 주로 1.5cm 이하인데 그 이상의 것만 잡으라면 말이 되냐는 것이다.
 괴산군청 담당자는 수산자원보호령 등 관련법규대로 허가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하나 해당 작목반원들의 심기는 편치 않다. 심지어는 “다슬기 채취허가가 되레 다슬기를 잡지 못하게 하는 족쇄”라고 입을 모은다.


 청원군은 어떤가. 청원군은 올해 처음으로 지난 2월 미원면 옥화9경어업계(계원수 19명)에 다슬기 채취허가를 내줬다. 한데 산란기 포획금지,자원보호,환경오염방지 등 기본조건만 제시했을 뿐 괴산군이 규제한 허가 그물수라든가 그물규격, 채취 가능한 다슬기 크기 제한 등은 규제하지 않았다. 허가기간도 5년이나 된다. 한 마디로 5년간은 알아서 잡으라는 것이다. 괴산군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판이하다. 허가내용만 보면 전혀 딴 나라 같다. 물줄기는 같은데 지자체가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판이한 허가가 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허가된 지 불과 2~3개월 만에 다슬기가 ‘귀한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꾼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두 지자체를 무조건 나무라는 건 아니다.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는 속사정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도가 문제다. 제 아무리 관련법규가 있다하더라도 상식과 현실을 무시한 행정이라면 정도가 지나치다. 반대로 주민들이 요구한다고 해서 관련법규마저 완전히 무시한다면 그 또한 도를 넘어선 행정권 남용이다.

 

   달래강 특산물인 다슬기가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도록 지자체와 주민 모두가 다시금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

달래강과 선비정신, 그리고 오늘의 세태


 충북엔 유난히 정자와 구곡(九曲)이 많다. 선비의 고장임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다.
정자의 경우 모두 50여 개소인데 이중 19개소가 괴산군에 있다. 도내서 가장 많은 숫자다. 더욱이 특별한 건 이들 정자 대부분이 달래강 유역에 있다는 점이다.
 구곡 역시 괴산지역, 특히 달천강 유역에 집중돼 있다. 화양·선유·쌍곡구곡을 비롯해 최근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존재가 밝혀진 연하(칠성)·갈은(〃)·풍계구곡(연풍)에 이르기까지 모두 6곳이다.
 게다가 유사 개념의 구경(九景)이란 이름이 붙여진 고산구경(괴산읍)까지 합하면 7곳이요, 명칭만 남아있는 거차비(청천)·운하구곡(〃)까지 더하면 무려 9곳이다. 관내는 다르지만 청원 미원의 옥화구경 역시 달래강변에 있다.
 강줄기 하나에 이처럼 많은 정자와 구곡이 존재하는 곳은 아마 달래강뿐이리라. 그만큼 풍취가 남다른 천혜의 강이다. 풍취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시가 전하고 그 속에 선비정신까지 배어있으니 멋과 풍류 또한 으뜸이다.
 우리나라 정자는 백제 의자왕 15년(655년)에 지어진 망해정이 최초다. 달래강 유역의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건 괴산 제월리 강변의 고산정으로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지어졌다. 
 구곡의 기원은 본래 중국 무이산의 무이구곡서 비롯됐다. 무이산은 중국 푸젠성(福建省)의 명산으로 이곳에 있는 9개의 절경에 남송때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朱子)가 들어가 각 곡의 이름을 붙이고 무이구곡가를 지은 게 효시다.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자학(성리학)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보편화됐는데 이를 계기로 성리학자들, 이른바 선비들 사이에서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시를 짓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각 절경마다 설정된 구곡과 구곡시다.
 지금은 괴산댐으로 인해 물속에 잠겼지만 조선시대 노성도란 선비가 설정한 연하구곡에도 각 곡마다 남겨진 한시가 있으니 제9곡(병풍바위)에 관한 시를 통해 당시 선비들이 가졌던 사상의 일면을 살펴보자.
 ‘병풍바위 산마루엔 초속적 흥취가 넉넉한데/ 혼연하게 진실한 본성을 연마하게 해주네/ 마을어귀엔 이끼 낀 돌 깊이 박혀 있는데/ 나 자신은 산수자연에 묻혀 도가(棹歌)를 부르네’
 구곡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정자에도 많은 시가 전하는데 그 중 괴산의 애한정과 관련된 백곡 김득신선생의 시를 보자.
 ‘높고 푸른 산벽에 저녁노을 밝더니/ 깊은 숲속엔 어둔 빛이 점점 생기는구나/ 산그림자와 저녁연기가 서로 얽히니/ 그림으로도 글로도 그려내기 어렵구나(애한정 팔경의 ’창벽낙조(蒼壁落照)‘
 자고로 자연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던가. 조선시대 선비들은 산수가 빼어난 이들 구곡과 정자를 찾아 자연을 노래하면서 실물을 통한 정신수양에 해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들 구곡과 정자를 찾아가 보면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절로 시흥이 돋고 마음까지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 마음이 다 같은 건 아닌가 보다. 선조들이 남긴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으니 선비의 고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구곡은 구곡대로 각종 낙서와 각자(刻字)로 훼손돼 있고 정자는 정자대로 편액과 현판이 사라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면서도 자신들의 꿋꿋한 정신세계를 일궈나감으로써 세계사에 유례없는 선비정신을 낳았던 우리 선조들. 그 선조들의 멋과 슬기가 한낱 흑심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왔다 가노라‘ 어느 구곡 바위에 새겨진 글자 같지 않은 글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