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똥 이야기(1)

 

똥은 똥이다. 그러나 똥이 아니다.

 

적어도 야생동물의 똥 만큼은 흔히 말하는 똥이 아니다. 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야생동물의 똥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단순히 먹고 싼 잔재물이 아니다.

 

똥 주인이 어느 동물인지, 초식성인지 육식성인지 잡식성인지, 또 무엇을 주로 먹는지 등등을 포함해 그 동물의 거의 모든 삶을 밝힐 수 있는 단서다.

 

똥처럼 정직한 것도 없다. 먹은 그대로의 표출이다.

 

요즘엔 학문 발달로 똥부스러기만 가지고도 DNA분석을 통해 개체식별 등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똥은 특유의 냄새가 있다. 똥내다.

 

똥이 더럽다는 이미지가 비록 똥내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똥내에도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네발 가진 들짐승 중에는 항문에 특정냄새를 풍기는 분비샘이 있어 똥을 눌 때 분비물도 함께 배출한다. 이 분비물은 주로 성숙한 개체의 짝짓기 철에 배출돼 배우자를 찾는 데 중요 역할을 한다.

 

짝짓기할 준비가 됐으니 알아달라는 구혼 메시지다. 오줌내가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야생동물의 배설물, 즉 똥과 오줌은 영역표시에도 자주 이용된다. 이 때도 냄새가 작용한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이 배설물 냄새에 동종은 물론 종이 다른 동물도 강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런 예가 있다. 얼마 전 삵을 촬영하기 위해 삵이 자주 다니는 괴산의 어느 산길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해 놨는데 엉뚱하게도 너구리가 찍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너구리의 행동이었다. 삵똥 근처를 지나치는가 싶더니만 이내 냄새를 맡고 되돌아와서는 자신의 몸뚱이를 삵똥에 마구 비벼댔다.

 

참으로 이상했다. 너구리와 삵은 딱히 앙숙관계도, 그렇다고 우호적인 사이도 아닌데 너구리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추측하건대 너구리는 삵처럼 자신보다 강한 이미지를 가진 짐승 똥내를 스스로 몸에 묻힘으로써 보다 강하게 보이려는 일종의 의태(擬態) 습성이 있지 않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너구리가 단순히 자신의 냄새를 삵똥에 남기려면 그 위에 직접 똥이나 오줌을 누면 될 것을 굳이 남 똥에 몸을 비벼대겠는가.


야생동물의 똥내는 종에 따라 다르다. 먹이와 장내 박테리아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치류를 잘 잡아먹는 족제비 똥에서는 노린내가 나고 물고기를 주로 먹는 수달 똥에서는 비린내가, 돼지처럼 무엇이나 잘 먹는 멧돼지 똥에서는 구린내가 풍긴다. 똥내 또한 정직하다.


똥이 그냥 똥이 아니란 건 다음 예에서 보다 확실해 진다.

 

멧토끼를 관찰하다 보면 평상시엔 딱딱한 똥을 누다가도 때론 부드럽고 가는 똥을 누는 것을 볼 수 있다. 습관적으로 두 가지 똥을 누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신기한 건 부드럽고 가늘게 눈 똥은 누자마자 다시 먹는다는 점이다.

 

토끼류 외에도 일부 설치류도 자신의 똥을 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식분성이라 한다.

 

이 기이한 습성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일부 학자들은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비타민류를 재섭취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똥이 이럴진대 어찌 단순히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라 하겠는가.

 

야생동물의 똥은 그 동물의 생활습성까지도 말해준다.

 

너구리, 산양처럼 별도의 똥자리를 마련해 놓고 매번 그 곳에만 볼일 보는 '화장실 타입'이 있는가 하면 멧돼지처럼 아무데나 누는 '노상방뇨형'이 있다.

 

또한 오소리처럼 굴 입구에다 버젓이 실례하는 동물도 있고 야생 고양이처럼 흙으로 은근슬쩍 덮어놓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눈에 잘 띄고 냄새도 잘 퍼지며 모양새도 오래 남는 곳에 주로 똥을 눈다는 점이다.

 

마치 "내똥 여기 있소"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게 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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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로드킬’ 없는 세상을 꿈꾸자

 
 두 달 전 일이다. 괴산호 생태 탐사를 위해 산막이란 마을에 들어가 있는데 괴산 청천의 한 후배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화양동 계곡으로 통하는 도로변에 엄청 큰 새가 죽어있다며 숨 넘어가는 소릴 한다.

   예감이 좋질 않아 곧바로 달려갔더니 역시나 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였다. 덩치와 발톱,부리로 보아 1년도 채 안된 유조였다. 특별한 외상은 없는데 몸속 뼈가 다 으스러졌다.

   로드킬(Road kill)이다. 자기 혼자 먹이잡이 나왔다가 지나가는 차량에 부딪혀 횡사한 것이다. 위에 내용물이 있나 보니 비어 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파 기진맥진했으면 지나가는 차량도 못보고 피하지 못했을까.

   설령 어린 개체라 하더라도 시력과 청력하면 그 어떤 야생동물보다도 뛰어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가 아니던가.
 

   지난 주엔 달래강의 겨울철새를 촬영키 위해 충주 인근 수주 팔봉쪽으로 향하는데 바로 앞차가 느닷없이 급정거 하면서 휘청거렸다. 아차 싶어 차밑을 보니 금새 피가 흥건했다. 너구리였다. 야행성이라 주로 밤에 활동하지만 그 역시 굶주린 배를 참지 못하고 한낮에 먹을거리 구하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또 3일 전엔 청원군 미원면 달래강변 도로서 고라니 한 마리가, 그 이튿날엔 비슷한 장소서 족제비 한 마리가 처절한 죽음을 맞았다. 생활권이 괴산 청천인 데다 야생동물이 많이 사는 달래강변을 자주 찾다 보니 요즘 들어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 사체들을 부쩍 많이 보게 된다.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무관심이다.

   지나는 운전자들은 대부분 목격 순간만 잠시 얼굴을 찡그릴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 집 강아지가 그렇게 됐다면 아마 그렇게 황급히 지나치진 않을 것이다. 또 자신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들짐승을 직면했다면 얼마나 당황하고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란 생각도 별로 않는다.
 당국의 노력도 너무나 미흡하다. 최근 들어 환경부가 인터넷 웹진을 통해 로드킬의 심각성을 알리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까마득하다. 고속도로 혹은 신설도로에 전시품처럼 만들어 놓은 생태도로란 것도 실로 가관이다. 어린아이에게 밧줄위를 걸어 강물을 건너라는 격이다. 야생동물들은 서커스단의 조련된 동물이 아니다.

      
 로드킬 당한 사체들을 신속히 제거 처리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오죽하면 도로마다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사체가 오고 가는 차량에 의해 짓밟히고 또 짓밟혀 아예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는 곳이 즐비하겠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처분(?)은 늘 까치와 까마귀 몫이 된다. 이동통로가 졸지에 사선(死線)으로 변한 것도 억울할 판인 데 짓밟히고 짓찟기고 형체도 없이 ‘노상분해’되는 팔자가 곧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이다.
 기왕 나온 김에 까치와 까마귀 얘기 좀 더 해야겠다. 요즘의 까치와 까마귀를 자세히 보라. 그들이 왜 도로변을 맴돌고 있는가. 바로 로드킬 때문이다. 그들은 항시 도로변을 맴돌고 있다가 로드킬 사체가 발견되면 곧장 몰려든다.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견인차 같다. 질주하는 차량도 겁내지 않는다. 우리의 무관심은 결국 까치와 까마귀들의 행동까지 변화시켰다.


 이젠 로드킬 방지를 위한 특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전시행정에 그치지 말고, 국내 전 도로를 그야말로 안전한 도로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드킬 없는 도로, 그것은 곧 사람도 안전한 도로다.
 우리의 무관심이 까치와 까마귀들의 행동까지 뒤바꾸어 놨으니, 이번엔 우리의 관심으로 그들을 더 이상 로드킬 사체나 탐내는 ‘걸조(乞鳥)의 굴레’에서 벗어나게끔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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