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망신살’ 또 언론을 탔다

 
 겨울철이면 으레 언론을 타는 동물이 있다. 개구리다.

   관련 법규가 강화된 이후 아무개가 개구리를 잡다 적발됐다느니 모씨는 먹기만 했는데도 벌금을 물게 됐다느니 하는 기사가 곧잘 보도된다.
   겨울철 단골메뉴인 개구리 관련기사 중에는 간혹 쓴웃음을 짓게 하는 경우가 있다. 4년전 충북 모지역서 있었던 사건(?)도 그런 경우다. 당시 한 펜션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재원인이 가관이다. 까닭인 즉슨 당시 모지역 사람들이 그 펜션으로 놀러왔다가 개구리를 잡아먹고는 2차로 노래방엘 간다는 것이 그만 가스불 위에 개구리 잔여분을 올려놓고 가는 바람에 불이 난 것이다.
 조사 결과 시커멓게 그을린 용기속에 역시 시커멓게 탄 채 ‘만세’를 부르는 개구리가 꽤 여러 마리 발견됐으니 당사자들은 꼼짝없이 실화자에다 야생동물 불법 포획자로 몰려 졸지에 개망신 당했다. 개구리 잡아먹다 남의 재산 태워먹고 범법자까지 된 셈이니 개망신 아닌가.
 

   지금은 많이 계도돼 개구리를 몰래 잡아먹는 행위는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깊은 산골에선 배터리까지 동원한 간 큰 포획꾼들이 더러 있다.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개구리와 뱀 등을 불법 포획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불법포획한 걸 먹거나 운반, 보관만 해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그만큼 중범죄 취급한다. 들키면 오랏줄 망신 아니면 재산을 축내야 한다. 혹자는 너무 과한 게 아니냐고 할 지 모르나 그게 다들 자초한 일이다.
 

   개구리가 또 이번에 언론을 탔다. 그냥 언론을 탄 게 아니라 한 지자체를 개망신 주고 있다. 다름 아닌 청원군이 관내 업자에게 중국산 개구리를 산 채로 수입토록 허가했다가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보도 대로라면 관계부서 공무원들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 해당업무에 관한 기초 소양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깟 개구리 좀 수입허가를 내줬다고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이다. 게다가 문제의 북방산개구리(흔히 경칩개구리로 불리는 종의 하나)는 국내산과 종도 같고 생김새도 같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 교란 동물로도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설명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생태학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제 아무리 종이 같고 생김새가 국내산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일단 외국산 동물이 산 채로 유입돼 야생화 됐을 경우엔 유전 생태학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이번처럼 수입목적에 인공증식이 포함된 경우엔 그들 개구리가 야생으로 뛰쳐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만일 우려대로 야생에 노출되면, 담당 공무원의 말처럼 ‘국내산과 꼭같은 종’이기 때문에 국내산과의 교잡은 불보듯 뻔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 고유의 유전자가 훼손되고 흐트러지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면 중국산 붕어를 생각해 보라. 일명 짜장붕어가 유입된 이후 국내 상황이 어떻게 됐는가. 당초 우려대로 교잡종인 ‘짬뽕붕어’가 생겨나 판을 치게 됐지 않은가. 중국산 붕어 역시 분류학상으로는 국내산 붕어와 그리 멀지 않다. 혈통이 가까워서 문제가 덜 되는 게 아니라 혈통이 가깝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더 큰 것이다. 교잡이 쉬운 만큼 우리 고유의 유전자가 쉽사리 훼손된다고 보면 된다.
 

   시쳇말에 ‘개구리 뛰는 방향’이란 게 있다.

   하찮은 개구리라고 얕잡아보다간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모른다. 물가니 주식이니 모든 것이 다 개구리 뛰는 방향처럼 어지러운 세상, 그나마 개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겨울철 개구리마냥 곱게 움츠리고 살 일이다.

   그러다 보면 봄이 오지 않겠는가.

고등어 대풍, 결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남쪽 바다가 온통 고등어판이다. 낚시꾼들은 바늘에 비린내만 묻혔을 뿐인데 연방 올라오는 고등어 행렬에 탄성 지르기 바쁘고 구경꾼들은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이스박스 하나 채우긴 일도 아니다. 여분으로 가져간 비닐봉지 채우고도 남아도니 인심까지 팍팍 쓴다. 회는 이미 실컷 떠먹은 뒤라 ‘고등어회’ 말만 들어도 비린내가 콧구멍을 후빈다.
 바닷속에 고등어가 얼마나 많으면 낚시바늘이 가라앉을 새도 없다. 대여섯살 어린네도 일단 낚싯대만 잡으면 강태공이다. 이럴 때를 두고 물반 고기반이라던가. 


 즐거운 비명은 고기잡이 배도 마찬가지다. 올라오는 게 고등어요 넘쳐나는 게 고등어다. 그 옛날 풍어가 든 마을에선 부지깽이 대신 생선으로 아궁이불을 다독거렸다더니 요즘 부둣가가 꼭 그 판이다. 가는 곳마다 고등어가 산 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사람마다 소 닭 쳐다보듯 한다. 비린내 좋아하는 고양이마저 아예 곁에도 안간다. 13년 만의 고등어 대풍이 모처럼만에 진풍경을 낳고 있다.
 

  어시장은 더하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지난달 22~25일까지 불과 나흘만에 생고등어 1만980톤을 처리해 122억 여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고등어 위판량으론 사상 최고란다. 고등어가 많이 잡히면서 운반선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아니 오히려 제때 하역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해안 쪽 사정이다. 명태와 대구 잡이가 제철을 맞았건만 어획량이 여간 시원찮은 게 아니다. 오죽하면 그 흔턴 명태마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단다. 이 때쯤이면 대관령을 온통 비린내로 진동케 하던 명태덕장들도 한숨소리만 요란하다. 동해가 아닌 다른 바다서 잡아왔거나 수입산 명태를 손질해 말리자니 기분 좋을 리 만무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안가 국산 명태는 도감에서나 찾아볼 판이란다.
 

   왜 이럴까. 왜 우리 바다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이상한 바다로 변했을까. 원인은 바닷물 온도다. 기후 온난화로 한반도 근해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회유어종을 뒤바꿔 놓았다. 그 결과 겨울철인 데도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가 흔해졌고 고등어를 먹이로 하는 다랑어류, 즉 참치가 남해와 제주도 근해서 심심찮게 잡힌다. 참치잡이 트롤낚시 풍경이 먼 나라가 아닌 우리 연안서 자주 목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랑어들은 아열대 어종이다. 아열대 어종은 이 뿐만이 아니라 주걱치,쏠베감펭,노랑가오리,흑새치까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반면 한류성 어종인 명태,대구,청어,도루묵은 갈수록 줄고 있다. 명태는 이제 산지에서조차 ‘금태’라 부르고 원양 명태와 구분하기 위해 ‘진태’란 말까지 생겨났다.


 관련자료에 의하면 지난 40년간 한반도 근해의 평균 수온이 겨울철엔 섭씨 1.35도, 여름철엔 0.9도 올랐다. 수온 1도 변화는 엄청난 변화다. 어류들은 육상동물보다 5~10배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민감한 물고기는 수온 1도 변화에 생과 사를 넘나든다. 수온이 변하면 먹이를 먹다가도 안 먹는다. 산란기땐 더욱 예민해져 멀쩡하던 물고기도 수온 몇도 상승에 금새 알 깔리고 정액 뿜는다.
 지금 우리주변에선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반도의 바다 품을 떠나는 어종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여파가 어느새 우리 식탁에까지 미치고 있다. 반찬은 물론 술 안주와 해장국 거리가 바뀌고 제삿상의 제물까지 바꿔놓고 있다.


 겨울날씨가 푹해졌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또 겨울철에 고등어가 대풍이라고 마냥 좋아할 일만도 아니다. 겨울은 그저 적당히 춰야 제맛이고 겨울바다에선 명태,청어가 잡혀야 제격이다.

  국민 생선 명태가 그립다.

갑갑한 세상 공기라도 맑게 살아야 할 게 아닌가

 

 한반도를 향한 ‘환경 공중폭격’이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지난 2일 충남 서산과 서울,인천 등지를 급습한 중국대륙발 모래먼지를 시작으로 이른바 월경(越境) 공해로 인한 총성없는 전쟁이 또다시 시즌을 맞았다.


   다름 아닌 황사 얘기다. 혹자는 대기중에 모래먼지쯤 끼는 거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떤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다.
 우선 먼지량부터 보자. 황사 한 번에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대략 100만톤이다. 야산 하나가 먼지로 날아든다. 이 중 한반도에 쌓이는 양은 15톤 덤프트럭 4천~5천대 분량인 4만6천톤에서 8만6천톤으로 추정된다. 깔볼 양이 아니다.
 그 다음은 가시적인 피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2005년도 자료에 의하면 황사로 인해 국내서는 일년중 많게는 181만7천여 명이 병원치료를 받고 165명이 사망하고 있으며 모든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한해에 많게는 7조3천억여원이 먼지속에 파묻힌다. 우리나라 사람 35.4%가 연평균 두 차례꼴로 황사로 인한 질환을 앓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사실이 이러니 공중폭격 혹은 전쟁이란 말을 안 쓸 수 없다. 피해지역 입장에선 더욱더 그렇다. 특히 환경 공중폭격이란 용어는 억지로 지어낸 말도 아니다. 일본 언론들이 실제로 자주 써 이미 환경용어화 된 신조어다. 의도성과 적대성만 없을 뿐 실제의 공중폭격이나 전쟁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황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자연현상이다. 지질시대부터 일었다는 학설도 있다. 영어로 흔히 아시안 더스트(Asian dust)라 부르는 것도 이 지역의 오랜 고질적 현상임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첫 기록은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 때다. 당시엔 황사 대신 ‘흙이 비처럼 쏟아진다’하여 우토(雨土)라 불렀다. 우토란 말은 고려,조선시대까지 사용됐다. 일본에선 서기 807년 황우(黃雨)가 내렸다는 게 첫 기록이다.
 중국서도 처음엔 황사 대신 우토로 불렀다. 기원전 1150년부터다. 중국서 황사란 용어가 사용된 건 서기 550년 이후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와서야 비로소 황사란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문제는 이같은 유구한 역사가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유해성분이 짙어지고 발생횟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생시기 또한 점차 일러져 연중화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과거엔 단순히 미세한 모래입자 내지 흙입자가 주였다면 요즘엔 중금속 성분인 납,카드뮴까지 담겨 있다. 중국의 빠른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때문이다.
 성분이 독해진 만큼 피해도 심각해졌다. 산성흙비(눈)의 원인은 물론 항공,운수,정밀산업 등 각 분야에 피해를 입히고 폐호흡기 질환자와 조기 사망자수도 증가시키고 있다.
 가뜩이나 기후 온난화로 대륙내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데다 산림벌채,초지의 농지화,가축의 과방목이 늘어나면서 사막화를 더욱 부채질해 황사의 연간 발생횟수와 먼지량을 늘게하고 있다. 과거엔 주로 봄철에 일어났는데 최근엔 11월,12월에도 발생하는 등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피해면적도 넓어져 우리나라와 일본,몽골은 물론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향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처는 아직 미흡하다. 중국이 황사관련자료를 아직도 국가기밀로 취급하는 등 소극적이니 큰 진전이 있을 리 만무다.
 

  우리는 이 시점서 명심할 게 있다. 황사의 가장 큰 피해국은 바로 우리나라란 점이다. 아쉬운 사람이 샘 판다고 우리가 적극 나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끌려가지 말고 목소리를 한껏 키우란 얘기다. 언제까지 모래먼지를 뒤집어쓰고 살 것인가.
 갑갑한 세상에 공기라도 맑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길을 이으려면 이것부터 생각하라

 
 1990년 8월 11일 속리산이 떠들썩해졌다. 어류를 비롯한 13개 분야 50여명의 학자가 참여한 국내 최대규모의 종합학술조사에서 ‘뜻밖의 성과물’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당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종개라는 아주 작은 민물고기로, 이 물고기가 처음으로 속리산 뒤편 낙동강 수계서 발견됨으로써 ‘먼 옛날 한강과 금강, 낙동강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종개는 한강과 금강 이북에 사는 북방계 어류다. 따라서 남방계 수계인 낙동강 최상류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첫 발견 이상’의 의미, 즉 속리산이 생겨나기 전 3개의 물줄기가 이어져 있다가 속리산이 솟아오른 뒤 오늘날의 삼파수(三波水)가 형성됐음을 뒷받침해 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렇듯 물고기의 서식분포는 한반도 형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도 하는 등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2001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청주시 의뢰로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박사진들과 함께 무심천 일대에 대한 생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어류분야서 매우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즉, 그 이전까지의 조사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던 파랑볼우럭(일명 블루길)과 민물검정망둑이 발견된 것이다. 해서 어류팀장인 홍영표박사와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찾은 결과 ‘대청호 물의 인위적 방류’가 이들 물고기의 알과 치어를 무심천으로 흘러들게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무심천에 새물을 끌어들이면서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사례는 어느 한 물줄기를 다른 물줄기로 강제유입(방류)시키거나 서로 이을 경우 서식어종 변화와 같은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한다. 서식어종이 인위적으로 변한 하천에서의 어종 분포도는 앞서 말한 본래의 학술적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한국어류학계의 태두이자 ‘물고기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명예교수)가 생전에 말한 국내 어류학계의 현실이다. 당시 최박사는 “국내에는 여러 종의 붕어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아직 명확히 종 분류를 못하고 있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우리 어류학계, 특히 분류학계에서는 아직도 해결 못한 수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갈겨니가 참갈겨니와 갈겨니로 나눠지고 쉬리가 북방계 쉬리와 남방계 쉬리로 연구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 한 종으로 분류되던 물고기들이 점차 세분화 돼 가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어류분류학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대변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열거한 바 같이 국내 각 수계에 분포하는 물고기 종과 생태계는 각기 나름대로 중요한 학술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학계의 현실은 토종 붕어의 계통도 제대로 못밝혀낼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말해 민물고기에 관한 한 “이것이 실체다”라고 할 만큼 명확한 생태지도가 그려지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우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걸핏하면 대운하를 건설하네 마네 떠들어 대고 4대강 물길을 서로 잇네 마네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잊을만 하면 터져나와 온국민을 마냥 헷갈리게 하는 대운하 논란. 그 논란의 저 편엔 우리의 소중한 유전자원, 한반도 고유의 하천 생태계가 그 실체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못한 채 복날 앞둔 개 꼴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명심할 것은 4대강이든 어떤 물길이든 그것을 인위적으로 잇는 행위는 먼옛날 삼파수를 갈라놓은 속리산의 솟구침 보다도 더 엄청난 ‘인위적인 지각변동’이란 사실이다. 

앉아서 ‘폭설’이 오기만 기다릴 것인가

 
 구름은 참 묘하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성질도 그러려니와 계절에 따라 비와 눈,우박까지 내린다.
   그래서 궁금하다.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조화가 일어나기에 형체도 천태만상이요 색깔도 그리 오묘하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이치로 하늘이 무너질 듯 잔뜩 구름만 꼈다가도 비 한 방울 뿌리지 않는 경우가 생기며, 그와 반대로 구름은 변변찮은데 갑자기 폭우와 폭설, 우박까지 내린단 말인가.
 답은 의외다. 해답의 열쇠가 구름입자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름입자가 매우 작은 까닭에 그같은 신기한 기상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구름은 대기중의 수증기가 변한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로 이뤄져 있다. 이들 입자는 매우 작아 반지름이 고작 10마이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낙하 속도 또한 1초에 1cm 정도로 극히 느리다. 그러니 내려오는 도중에 또다시 증발하거나 기류에 실려 상승 혹은 이동하면서 신출귀몰한 형체와 색깔을 띠는 것이다. 구름이 꼈다고 반드시 비가 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비나 눈으로 내려오기 위해선 입자가 훨씬 커져야만 한다. 학자들은 구름입자가 지상으로 떨어지려면 최소한 반지름이 1000마이크로미터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반지름이 구름입자보다 100배는 더 커져야 비로소 빗방울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평면적인 계산일 뿐 구름입자와 빗방울이 둥글다는 가정 아래 부피로 계산하면 비 입자는 구름 입자보다 무려 100만배나 크다. 이는 곧 구름입자 100만개가 합쳐져야 겨우 하나의 빗방울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것도 빗방울의 일반적인 크기인 직경 1mm의 비가 내릴 때의 일이고, 그보다 훨씬 큰 빗방울이 내릴 땐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서 관측된 가장 큰 빗방울은 직경 8mm짜리다. 일반비보다 직경이 8배나 크니 부피로 치면 가히 상상도 못할 엄청난 구름입자가 모여야 그런 빗방울 하나가 생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가 무심코 맞는 비이지만 빗방울 하나가 최소 100만개 이상의 구름입자가 모인 기적의 결정체란 것을 생각하면 그 자체가 경이롭다.
 눈은 구름속의 얼음 알갱이가 점차 커져 녹지않고 내린 결정체다. 우박 또한 비슷한 원리로 내리지만 흔히 먹구름으로 불리는 적란운이 낄 때 쏟아진다.
 

   새삼 뜬구름 잡듯 구름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작디작은 구름입자의 조화에 의해 우리 인간사의 희비가 너무나도 엇갈리고 있슴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금 우린 거의 잊고 있지만 ‘오랜 가뭄’이란 기상이변을 맞고 있다. 지난 봄부터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으로 대지와 하천, 지하수마저 메말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마철에도, 태풍철에도 매번 비답지 않은 비만 내려 장마 걱정, 물난리 걱정 대신 되레 용수난 해결하느라 가슴 졸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늦가을 이후 비소식, 눈소식이 잦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감질나는 새끼비와 여우눈 뿐이다.
 농촌에선 지금 당장도 걱정이지만 내년 봄을 더 걱정하고 있다. 하천마다 저수지마다 바닥을 드러낸 채 갈수기인 겨울철을 맞았으니 그 어찌 내년 봄 농사가 걱정되지 않겠는가. 땅을 파 봐도 1m 이상이 먼지가 날 정도로 메말라 있다.
 

   또다시 불어닥친 경제한파로 가뜩이나 죽을 판인데 하늘마저 무심하니 절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숯검댕이 농심’이 미세한 구름입자들의 짖궂은 조화로 아예 뭉그러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겠다.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고 ‘큰물’이 쏟아지기만 기다릴 것인가. 그래봤자 ‘폭설’을 기다리는 격이다.

   이래저래 걱정이다.

낙엽철에 드러나는 실수의 흔적들

 
  요즘처럼 애매한 계절도 없을 성 싶다.

    달력은 분명 입동을 지나 소설절기를 향하고 있는데 산자락엔 아직도 늦가을의 여운이 미련처럼 걸려 있다.
 일기예보도 가을과 겨울의 동거를 알린다. 서리와 얼음, 비와 눈이 공존한다.
  사람마다 체감 계절도 다르다. 시간의 추가 아직은 가을 쪽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겨울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주변의 자연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랜 시간 촬영한 동영상 테이프를 단 몇초에 재생시키는 것처럼 자고 나면 하룻 밤새 풍경이 전혀 딴판이다. 기온변화로 단풍잎을 낙엽으로 밀쳐내는 떨켜의 작용이 훨씬 더 활발해졌기 때문이리라.
 

   이 시기의 낙엽은 단순히 나뭇잎을 떨궈내기만 하지 않는다. 그동안 감춰온 한과 생채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듯 싶다. 그래서 이 시기가 오기 전 그렇게도 눈물겹도록 울그락 불그락 몸서리치다가 이내 떨어져 나뒹구는 게 바로 낙엽이 아닌가 생각된다.
  혼자만의 엉뚱함인지는 몰라도, 이 계절이 던지는 함축된 언어는 흔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두드러지는 게 우리 인간의 ‘실수의 흔적’이다.
  대표적인 게 실패한 인공 조림(造林)이다. 우리나라의 인공 조림을 경제적 가치나 자연경관적 가치로 평가할 때 나름대로 성공한 것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또한 많다. 귀중한 생명체인 나무와 숲을 경제적 혹은 자연경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들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한 가지 예를 보자. 산 중턱 이상의 고지대서 마치 부끄러운 마마 자국처럼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은수원사시 나무숲을 보라. 주변 경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어찌보면 생뚱맞은 낙서처럼 보이는 그 나무숲은 유독 이 시기가 되면 더욱더 뚜렷이 드러나는 실수의 흔적이다.
 1960년대 미국산 은백양과 한국산 수원사시나무를 교배시켜 만든 은수원사시, 개량자의 성을 따 현사시로도 불리는 그 나무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척박한 산기슭서 잘 자란다 하여 무턱대고 심은 게 실수라면 실수다. 주변 경관과 식생, 경제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화전답을 없앤다는 명목 아래 가난한 자들이 피땀으로 일군 밭뙈기에 강제로 심겨진 이후 매년 이 무렵이면 흉터같은 모습을 드러내 당시의 한(恨)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본인이다.
 

   가로수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것도 많지만 어색한 가로수도 많다. 지역의 정책결정자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그 지역 가로수가 모습을 바꾸거나 아예 수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공공 장소인 학교 운동장의 정원수 또한 학교장 인사철만 되면 모든 나무가 떤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쉽게 모습을 바꾼다.
 숲과 가로수, 공공장소의 정원수는 넓게는 한 나라, 좁게는 한 지역 한 공공건물의 환경·정서적 특징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랜드마크다. 전혀 한국적이지 않거나, 그 지역 고유의 환경·정서적 특징과 조화되지 않는 경우엔 오히려 한국에 대한 인상, 그 지역에 대한 인상을 왜곡시키는 주범이 된다. 우리가 외국 혹은 외지를 여행하고 왔을 때 머릿속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것은 그 나라 그 지역의 숲과 나무가 주는 첫 인상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도 이제 산림녹화의 성급함에서 벗어나 경제림·경관림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점이지만, 아직도 곳곳에 실수의 흔적들이 눈에 거슬리고 외국풍의 가로수·정원수가 마치 그 지역 그 건물의 얼굴인 양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올해의 단풍도 가슴속에서 또 그렇게 지고 있다.

비수리, 과연 ’천연 비아그라’일까?

 

 우리나라 콩과 식물 가운데 비수리라는 게 있다.

   싸리처럼 줄기와 가지는 나무 성질을 띠고 가지 끝은 풀의 특성을 지닌 이른바 반관목(半灌木)이다. 쉽게 얘기하면 ‘가는 싸리’쯤으로 보면 된다. 해서 예전엔 부엌이나 앞뜰을 쓰는 작은 비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 길고 잘 휘어지는 줄기는 주로 광주리를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이 식물이 돌연 요즘에 와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니 인터넷 뿐만 아니라 도심지 공원과 노인정, 심지어 시골구석의 마을회관까지 사람만 모이면 비수리 이야기가 나온다.

  가히 열풍이다.
  이유는 이 식물 이상의 정력제가 없다는 소문 때문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비수리는 곧 천연 비아그라’란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소문이 번졌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식물의 거창한 이명(異名)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야관문(夜關門)과 백관문초(白關門草),폐문초(閉門草),대력왕(大力王),천리광(千里光),노우근(老牛筋),음양초(陰陽草)다.
 우선 야관문부터 보자. 한자를 직역해 ‘밤에 빗장문을 열게 하는 약초’란다. 여기서의 문은 여성의 문, 즉 하문(下門)이라니 더 이상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백관문초 또한 기막히다. 백(白)은 낮을 뜻하니 ‘낮 시간 불구하고 빗장문을 열게 하는 약초’란다.
 폐문초는 더 하다. 폐문 즉, ‘문을 닫도록 하는 풀’이니 밤낮 없이 문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하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력왕은 ‘큰힘(大力)도 모자라 뒤에 임금왕(王)까지 붙인 약초’니 일단 잡숴보면 끝이란다. 이밖에도 천리광은 천리 밖에서도 빛이 난다는 뜻이고, 노우근은 늙은 소의 근육까지도 되살리는 약초며 음양초는 남녀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약초란 뜻이란다.


 이렇듯 이명에 대한 해석만 보면 비수리는 실로 엄청난 정력제다. 그러나 문제는 정력제로서의 실제 약효다. 다시 말해 검증이 됐냐는 것이다.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세계적인 본초학자 김재길박사(한국약용식물자원연구소장)는 한 마디로 “No”다. 특별한 처방을 하면 몰라도 소문 대로 비수리 자체가 정력제는 아니라고 한다.
 김박사의 말에 의하면 비수리는 야관문 같은 여러 이명으로 불리는 건 사실이나 정력제로서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예부터 남성이 잠 잘 때 자기도 모르게 정액이 흘러나오는 유정증에 응용해 왔으나 이마저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단다.
 김박사는 또 비수리를 정력제로 소문낸 사람들이 주장하는 소위 비수리의 성분에 대해서도 콩과 식물이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성분이라며 “식물체 자체를 천연 비아그라로 확대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일축한다.
 또 하나 현재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글 가운데에는 비수리의 복용법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말이 많은 데 이 역시 많은 이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한쪽에선 “반드시 술을 담가 먹어야 약효가 있다”는 주장인 반면 “또 한쪽에선 ”차처럼 끓여 먹거나 중탕해도 상관없다“는 주장이다.

  그만큼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복용법도 다르니 복용 후의 효과 또한 먹는 사람 나름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수리를 먹었을 때 인체에는 큰 해가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1990년대에도 ‘쇠뜨기에 대한 맹신’을 우려하는 기사를 써 그 열풍을 잠재우는 데 일조한 바 있다.

 그땐 쇠뜨기의 독성이 강조돼 그나마 단 시간에 열풍이 가라앉았는데 비수리는 독성이 그리 없다니 먹으면 손해란 얘기도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수리 자체가 곧 천연 비아그라는 아니란 점이다.

 먹어도 제대로 알고 먹으면 어떨까 한다.

무 꽁지가 길면 무척 춥다고 하는데…

 
 얼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널뛰기 실험을 하는 걸 본 적 있다. 두 여성 전문가가 출현한 그날 실험은 사람이 널을 뛰어 얼마나 높게 울라갈 수 있는 가를 확인하는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출연자는 5m를 훨씬 넘게 뛴 것으로 생각된다. 가히 놀라운 높이다.
두 출연자는 그런 실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될 줄 알았더니 해보니까 된다”며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웬 뜬금없는 널뛰기 실험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당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두 출연자의 널뛰는 모습이 마치 올해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땅을 박차고 올라갔다 이내 내려오는가 싶으면 또다시 올라가는 모습에서 거의 일년내내 극과 극을 오가며 이상기온을 보인 올해 날씨가 연상됐던 것이다.


 기실 올해처럼 날씨가 널뛰듯 한 적도 드물 것 같다. 겨울 끝자락에 봄이 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여름 날씨가 이어졌고 또 그런가 싶더니 수은주가 곤두박질쳐 한동안 겨울·봄·여름날씨가 공존하는, 참으로 이상한 날씨가 연출됐다.
 어디 그 뿐인가. 예년 같으면 서늘해질 시기인 처서·백로·추분 절기에 낮기온이 연일 30도를 웃돌더니만 어느날 갑자기 수은주가 떨어져 하루 아침에 반팔차림에서 두터운 겨울옷으로 갈아입게 했고 최근엔 또 다시 이상기온이 이어져 온 나라안을 ‘이상한 패션쇼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람만 어리둥절했던 게 아니다. 보통 5월 중순께 꽃망울을 터트리던 철쭉꽃과 팥배나무가 4월 중하순께 흐드러지게 폈고 6~7월에나 피던 매발톱꽃도 5월초에 꽃을 피웠다.
 극과 극을 오르내리는 수은주와 그에 따른 극심한 일교차, 수시로 내린 된서리 등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생태계에 이상징후까지 나타나 모기와 병해충이 조기 출현하고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지 못하고 일년내내 방황했다.


 농축산물 피해는 또 어떠했나. 벼 수확철인 요즘에 와서야 누런 들판만 보고 대풍이니 떠들고 있지만 지난 일년간 이상기후로 애간장 태운 농축산가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급격한 기온변화로 꿀벌이 떼죽음 당해 가슴 쓸어내렸던 양봉업자들, 산란율이 크게 떨어져 하소연하던 양계농가들, 애써 심은 고추묘가 얼어죽어 두세번 심어야 했던 농부들, 어린 열매가 동해 입어 일년농사 다 망쳤다고 울먹이던 과수농가들…. 이 모두가 ‘기상 쓰나미’로 인한 아픈 가슴들이었다.


 극심한 가뭄은 또 어떠했는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으로 온 산야가 타들어가 산에서는 버섯 산출량이 크게 줄고 밭에서는 채소 등 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 올겨울 기온이 무척 추울 것이라는 달갑지 않은 전망이 촌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내용인 즉슨 가뭄이 들어 무의 꽁지가 길게 자라는 해는 영락없이 추운 겨울이 온다는 데 올해 무 꽁지가 무척 길게 자란다는 것이다.
 취재 현장서 만나는 노인들마다 그런 전망을 하니, 한편으론 걱정도 되고 또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해 실제 무를 뽑아보니 과연 꽁지가 길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자연현상을 보고 일기를 점쳐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본래는 관천망기(觀天望氣)라 하나 필자는 하늘 대신 자연현상을 들어 관연망기(觀然望氣)라 부름)라 생각하니 그 전망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치솟은 물가와 공공요금으로 서민경제는 갈수록 벼랑으로 내몰리는 데 머지않아 ‘황소바람’같은 추운 겨울이 온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나라안이 하도 시끄럽고 어수선해 날씨마저 자꾸만 심통(?) 부리는 것같아 마음이 영 편칠 않다. 언제나 우리 사회에 화롯불 같은 훈훈한 바람이 불어올는지 괜히 하늘만 쳐다봐 진다.
 

청개구리가 몰고온 희우(喜雨) 타는 농심 달랬다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말 가운데 관천망기(觀天望氣)란 게 있다. 하늘을 보고 날씨를 내다보는 것을 일컫는다.

아침 하늘에 무지개나 노을이 생기면 비가 오고 햇무리와 달무리, 새털구름이 생기거나 마파람이 불어도 머지않아 비가 올 징조로 내다봤다. 반면 저녁 하늘에 무지개 또는 노을이 생기거나 하늬바람이 불면 곧 날씨가 좋아질 것으로 여겼다.
하늘만 바라본 게 아니다.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해 날씨를 점치고 그에 대비하는 지혜가 있었다.

대표적인 동물이 청개구리다. 즉, 주변에 청개구리가 나타나 울어제키면 영락없이 비가 온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막연히 비가 온다고 믿은 게 아니라 ‘하루 한나절 안으로 비가 온다’고 믿었으니 꽤나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다.

청개구리가 아닌 여느 개구리가 처마밑으로 기어들고 길바닥의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거나 제비와 잠자리가 낮게 날아다녀도, 또 물고기가 물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뻐끔거려도 비가 올 징조로 보고 서둘러 비설거지를 했다.

자연을 바라보고 날씨를 예측한 것이니 ‘관연망기(觀然望氣)’인 셈이다.
이 관연망기가 때론 놀라울 만큼의 정확도를 보일 경우가 있다. 그만큼 잘 맞는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금요일인 19일 아침 일찍 약속이 있어 괴산군 칠성면의 한 어부 집에 들러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마당 한 편의 감나무에서 갑자기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손을 내밀며 인사를 막 하려던 참이어서 우선 짧게 인사말을 주고 받고는 습관처럼 “비가 오려나 봅니다”고 했더니 그 어부 역시 같은 말을 건넨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이 나오자 서로 신기한 듯 눈길이 마주쳤는데 그 어부 한 술 더 떠서 “청개구리가 우는 걸 보니 30시간 안에 비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예측은 그 이튿날 확인됐다. 영락없이 비가 내린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그 어부의 관연망기 대로 30시간 안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옛 어른들이 말하던 ‘하루 한나절’을 구체적인 시간개념으로 바꿔 ‘30시간 안에’ 비가 올 것 같다고 예측한 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그날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20일 오전 8시 발표 괴산 등 충북지역 일기예보는 “강수확률이 오전 20% 오후 60%로 밤부터 비가 올 것”으로 내다봤는데 엉뚱하게도 이른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 그러니 예보를 믿고 주말 나들이에 나섰던 사람들만 비범벅이 됐다.

어쨋거나 이번 비는 누가 뭐래도 타들어가던 들녘과 산야에는 꿀같은 단비였다. 비록 완전한 해갈은 안됐지만 연일 땡볕에 나가 채소밭에 물 주던 농부들에겐 한없이 고마운 희우(喜雨)요 택우(澤雨)였다.
이번 비를 더없이 반가워한 사람들은 보은,괴산,단양,제천 등 송이 산출지역 농민들이다. 한낮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 늦더위에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송이철인 데도 송이가 나지 않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그들이었는데 늦게나마 낮기온도 누그러뜨리고 땅까지 적셔줄 비가 내렸으니 이 보다 더한 감우(甘雨)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시기 적절한 적우(適雨)는 아니었지만 모처럼만에 내린 비를 약비(藥雨)요 복비(福雨)라며 연신 고마워하는 그들이다.

그렇기에 아무쪼록 이번 비로 모든 작물이 풍작되고 버섯 생산량도 늘어나서 더욱 더 얼굴이 펴지길 기대한다.

한가지 더 바란다면 주말께부터 더위가 수그러들어 예년 기온을 되찾겠다는 기상청 전망이 이번엔 정말 맞아떨어지길 기대한다.
거미가 줄을 치지 않으면 비가 온다는데 또 비가 오려나?

함평군의 마인드와 괴산군, 그리고 어메니티

 
 ‘나비’ 하나로 수천억 원을 벌어들이는 지자체가 있다. 바로 전남 함평군이다.
비단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함평 하면 나비축제, 나비축제 하면 생태 도시 함평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지역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꾸고 지역 경쟁력까지 업그레이드 시킴으로써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창출해낸 곳이다. 한 마디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대표적 사례다.
 함평이 어떤 지역이었던가. 이렇다 할 자원이 있나 변변한 산업체가 있나,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뭘 먹고 사나”를 연발해야 했던 한적한 농촌지역이 아니었던가.
 농특산물이라고 해봐야 고구마가 전부였던, 그래서 1970년대 후반기엔 순전히 ‘굶어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외친 것이 그 유명한 ‘함평 고구마 사건’의 고장으로 농민 운동사에 올라있는 가난한 시골지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10년전만 해도 연간 관광객 숫자가 20만 명도 채 안되던 것이 지금은 축제기간만 200만명이 다녀가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동네’가 됐다. 경제·사회학에서 말하는 소위 엄청난 ‘나비효과’가 실제의 나비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함평에서 나비의 첫 날갯짓을 시도한 이는 누구인가. 익히 알려진 바 대로 1999년 제1회 함평 나비축제를 개최한 이석형 군수(50)다.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연소 단체장에 오른 그는 처음엔 나비축제를 열겠다고 말했다가 자나 깨나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10년 앞선 그의 마인드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0년 전 그에게 미쳤다고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되레 나비에 미쳐 행사를 이끈단다. 대단한 반전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나비 하나로 지역을 살리겠다고 과감히 나섬으로써 어메니티(Amenity) 자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이 군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현대는 어메니티 시대다. 그것이 자연·환경·생태가 됐든 아니면 역사·문화·경관·시설물이 됐든 지역주민 혹은 국민들의 생활을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이 그 지역, 그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헌데 어메니티에 관한 한 충청지역 지자체들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아니 소극적이라기 보다는 아예 마인드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변화된 게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있는 자원도 제대로 활용치 않는다. 지자체마다 역사의 고장이니 청정지역이니 하는 번드르한 구호만 외쳐댈 뿐 그것을 어메니티 자원으로 승화시키질 못한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가기 일쑤다. 지역 언론이 나서 친절하게(?) 계기를 만들어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괴산군이다. 말로는 청정 괴산, 친환경 괴산을 외치지만 현재 추진 중인 일부 정책의 속내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얼마 전 충청타임즈가 연속 보도한 ‘생태보고 괴산호, 훼손위기 직면’ 기사와 관련된 ‘산막이 옛길 정비사업 및 산악자전거 전용도로 개설계획’도 그렇다. 무려 30종에 가까운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이 출현하는 등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르쇠’다. 한 마디로 “너, 짖어라”다.
 자연 생태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괴산호가 지금의 자연 생태를 갖는 데 무려 51년이 걸렸다. 그 51년의 세월이 만든 생태보고의 가치 보다 산책로 및 산악 자전거도로가 더 중요하고 시급한 지 묻고 싶다.
 어떤 게 진정 지역을 위하는 일인 지, 어메니티의 시대에 걸맞는 현명한 판단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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