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무려 한 달 동안을 작정하고 산행 한 적 있다.
산행이라고 해봐야 집 근처의 속리산 자락을 등산로가 가리키는 대로 그저 오르내린 일이었기에 산사나이들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30일을, 그것도 하루평균 7시간 이상씩 강행했으니 나름대로 ‘산타기’를 했다고 떠들어댈 법 하다.
더구나 매일 동이 틀 무렵 산자락을 밟기 시작해 어떨 때는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하산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보통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리 한 달 동안을 산에 오른 뒤끝이 한여름에 고뿔 들린 머리통처럼 영 말이 아니다.
피로가 겹쳐서도 아닌데 왠지 안 볼 걸 본 것처럼 기분이 마냥 찝찝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나고, 10일이 지나고, 30일이 지나고….
작정한 대로 한 달이 지나면서 마음속엔 온통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만 늘어갔기 때문이리라.
가는 곳마다 쓰레기요, 발 닿는 곳마다 ‘버려진 양심’뿐이니 괜한 내 자신이 민망스러워 혀가 연신 차지고 얼굴까지 후끈거렸다.
쓰레기의 종류도 다양해 각종 음료수병은 물론이거니와 맥주캔과 소주병, 우유팩, 일회용 컵, 일회용 도시락, 비닐봉지, 담배갑, 비옷(우의) 등등….
아니 심지어는 요즘 아주 보기 드물어진, 일명 됫병이라 불리는 한 되들이 소주병까지 버젓이 ‘인간의 흔적’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어떤 애주가(?)길래 한 되들이 깡소주를 산으로 들고 올라와 들이키고는 저렇게 비양심적으로 자신의 주량을 흔적으로 남겨 놨단 말인가.
쓰레기마다 버려져 있는 상태도 갖가지였다.
그냥 되나가나 버려진 것, 돌로 지그시 눌러 놓은 것, 바위틈바구니에 억지로 쑤셔 넣은 것, 나뭇가지에 보란 듯이 꽂아 놓은 것….
그들을 보는 순간 순간 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언젠가 TV 드라마 속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가끔 생뚱맞게 내던지는 “아유, 쪽팔려!”란 말.
진짜로 쪽팔렸다.
그리고 산에 대해 정말로 민망했다.
누가 버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산사나이들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러고 싶어도 그러질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까.
산나물 캐는 사람들? 아니면 상춘객? 그것도 아니면 그냥 놀러온 사람들?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산이 알고, 또 그들 자신도 잘 알 것이다.
진짜로 자연에 대해 미안해하고 쪽팔려야 할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고 있다.
IMF인지 국가부도인지 하는 엄청난 사태가 온 나라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난 그 이후,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주5일제가 시행된 뒤부터 자연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연을 훼손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이 덩달아 많아졌다.
행락철만 되면 계곡과 하천, 바닷가가 넘쳐나는 쓰레기와 오물로 중병을 앓는다.
저수지와 호수 등 낚시터도 예외가 아니다.
쓰레기 수거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는 곳이야 억지로라도 치우기 때문에 후유증이 비교적 덜 한 편이지만 대부분은 그 후유증이 몇 년이고 이어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연을 훼손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행위를 되레 당연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의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가 바로 코앞에서 행해지는 데도 누구 하나 관심 갖고 제지하려 들지 않는다.
너는 너 대로 “나 하나쯤이야” 하고, 나는 나대로 “그까지 것쯤이야” 한다.
환경파괴 무감각증이 이 사회에 만연한 지 오래요, 자연을 소중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기주의가 팽배한 지 오래다.
우리도 한 때 버리고 싶어도 버릴 게 없었고, 설령 버린다 한들 쉽사리 분해되는, 지극히 자연친화적인 물건들을 ‘숙명처럼’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풍을 간들, 천렵을 간들 되돌아올 땐 빈 도시락과 솥단지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한 후에도 나무도시락 등 자연분해가 쉽게 되고 태워도 별 문제 되지 않는 간단한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다.
움직일 땐 으레 자동차가 필수가 됐고 ‘움직인 후의 부산물’은 거의 모두가 자연환경에 해가 되는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한 번 버려지면 자연분해 되는데 수십 수백 년이 걸리고 불로 태우면 인체에도 해로운 성분이 배출된다.
제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한다 한들 인간생활에 있어 자연은 가장 소중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자연환경이 건강한 상태로 유지돼야 인간의 삶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사랑이 꼭 거창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부터 쓰레기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조그만 실천이 바로 자연사랑의 시작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가짐도 나로 인해 소중한 자연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자연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기주의가 결국 자연과 인간을 함께 말살시킨다는 생각을 가슴속 깊이 새겼으면 한다.
지금 당장 나 자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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