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산야가 떠들썩하다.
봄나물에 이어 산나물을 뜯는 이른바 '산나물 시즌'을 맞아 발길 닿는 곳마다 산나물 채취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낮은 산이건 깊은 산이건 불문하고 떠들썩하다.
이들 가운데엔 가벼운 산행차림으로 바람 쐴 겸 등산 삼아 이 산 저 산 오르며 나물을 뜯는 도회지 부부들도 있고, 소일거리 삼아 경로당 친구들과 어울려 야산 언저리를 돌며 나물을 뜯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있으며 시장에 내다 팔 요량으로 큰 바구니 둘러메고 바삐 산나물을 뜯는 아낙네들도 눈에 띈다.
게중에는 산삼만을 골라 캐려는 '전문꾼'들도 더러 끼어있다.
목적과 동기는 다르지만 모두가 신바람이 난듯 콧노래까지 들려온다.
필자가 사는 속리산 뒷자락도 예외는 아니어서 4월 이후 지금까지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온통 산나물 뜯는 사람들 천지다.
기실 산나물은 물론이거니와 버섯철의 온갖 버섯들도 정작 산아래 사는 지역주민들은 뒤늦게서야 맛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그런 모양이다. 일철 나선 이후 지금껏 눈코 뜰새 없이 바쁘기만 한 농촌사람들에겐 산나물이 눈에 들어올리 만무다.
비가 내려 일을 못하게 되는 날이면 몰라도 바쁜 농사철에 일부러 바구니 들고 산나물 뜯으러 가는 '정신 나간 농민'들은 없다.
허나 필자의 시간적 여유는 그들보단 좀 나은 편이라 지난 휴일엔 모처럼만에 산에 올랐다.
향긋한 취나물 한줌 뜯어다 기름 한 방울에 깨소금 송송 뿌려 무친 다음 큰 그릇에 밥 비벼먹는 재미가 꽤나 괜찮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러 산바람을 쐬게 된 것이다.
무릎 밑까지 올라가는 긴 장화에 나무 지팡이 들고 다낡은 시장바구니 옆구리에 끼니 영락없는 '촌놈 모습'이다. 뒤따라 오는 마나님 모습도 별로 나아보이는 게 없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산이 있으니 몇 발짝 안가 산골짜기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집에서 들이키는 공기와 사뭇 다름을 느낄 즈음 한 뼘 이상 자란 돌미나리와 거렁배 나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텃밭에 난 채소 뜯듯 몇 이파리 뜯어 손에 들고 좀더 들어가니 계곡물 소리가 우릴 반겼다. 손을 모아 계곡수를 떠 목을 축인 후 눈을 돌려보니 갸냘픈 달래가 수줍은 몸짓을 하고 있다. 그 옆자락엔 고사리가 꼬물꼬물 고개를 내밀고 있고.
조심스럽게 뜯은 후 허리를 펴는데 이번엔 나무 그늘사이로 참나물과 참취가 눈에 들어온다.
향긋한 냄새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다 보니 발밑에서 원추리와 산마늘, 잔대싹이 하늘거린다.
이쯤이면 됐다싶어 발길을 되돌리려는데 두릅나무와 엄나무가 서있다.
산을 내려오면서 자연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자연이 있기에 힘 안들이고도 그야말로 맛깔스런 신토불이 식단을 차릴 수 있게 된게 아닌가. 초여름에 들어선 요즘 이 철에 맞는 산나물로, 그것도 이 지역서 나는 산나물로 입맛을 돋울 수 있게 됐으니 이 아니 신토불이 식단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연이란 참으로 고마운 존재요 소중한 존재다.
이러한 고마움과 소중함은 자연에 대한 조그만 배려만 있으면 저절로 우러나오기 마련.
그러나 자연에 대한 티끌만한 배려도 없이 자연으로부터 혜택만 받으려고 하는 인간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더러 있어 마음이 편칠 않다.
사실 우리가 산에 올랐던 날도 그런 편치 않은 마음을 갖고 산을 내려왔다. 우리가 산에 올랐을 때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나물을 채취한 흔적을 봤기 때문이다. 어떤 두릅나무는 허리가 잘린 채 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엄나무는 순이란 순은 모두 떨궈진 채 앙상한 가지에 가시만 달고 있는 등 말 그대로 목불인견이었다.
아마도 그 나무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를 생각하기 보단 자기 욕심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다음 해에도 그곳을 찾을 것이다. 그것도 올해 가졌던 부푼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요 실수다. 올해 잘려져 나간 나무가 내년에 싹 틔울 리 없고 갈퀴로 긁듯 싹쓸이 해간 곳에 산나물이 돋아날 리 없다. 자연은 정직한 대신 냉정하다.
자연은 대해준 만큼 우리에게 혜택을 준다. 그런 혜택이 바로 오늘 누리고 있는 쾌적한 공기와 같은 공익적 가치요 각종 자원이다. 산나물 역시 자연이 베푸는 혜택이요 선물이다.
산림청이 최근 산나물 불법 채취행위를 집중단속하게 된 동기도 자연이 베푸는 혜택과 선물을 그저 받으려고만 하는 얌체족들을 엄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오죽하면 산림청까지 나서 나물 뜯는 것을 단속하려 했겠는가. 나물과 나물뜯기는 먼 옛날 우리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먹을거리요 풍습중의 하나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관습행위를 법의 잣대로 옳다 그르다 판가름해야 하는 판이니 "오호, 통재!"다.
산나물 뜯으러 가는데 관광차를 빌리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회원을 모집해 댄다니 한편으론 잘됐다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참으로 말세란 생각도 든다.
산나물도 산주(山主)와 시.군의 허락을 받아 뜯어야 하고 인근 주민들이 산에 올라도 마음 편히 산나물을 뜯지 못하는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 온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산나물과 산약초를 불법으로 채취하다 적발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단다. 한 마디로 '중죄인' 취급을 한다는 얘기다.
"함부로 산나물 뜯으면 중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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