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얼어 죽 듯 짐승도 사람도 얼어붙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 하나가 있다. 해가 떠도 일어나지 않고 자꾸만 이불속을 파고드는 어린 나를 향해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얘야, 밤새 뒤꼍에 까치가 하얗게 얼어죽었으니 얼른 일어나 주워와라."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게 대여섯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그땐 진짜인 줄 알고 뒤꼍엘 가봤다. 없었다.
죽은 까치는 커녕 산 까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이웃집 애가 먼저 와서 주워갔단다. 그 뒤로도 뒷산,앞산,동구밖 등 장소만 바꿔가며 걸핏하면 하얗게 얼어죽었다는 까치는 전혀 보질 못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우리집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린 아이가 있던 집은 겨울이면 으레 까치가 얼어죽었다.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어머니들의 이같은 농담이 어린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줘 어서 일어나라고 하는 지혜였다는 것과 얼어죽은 까치가 하얗게 내린 서리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뜬금없이 얼어죽은 까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정서가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예전엔 까치소리를 들으면 기쁜 소식이나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 여겼는데 요즘엔 되레 까치가 진짜로 얼어죽는 게 반가운 소식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세태다.
길조를 넘어서 시조(市鳥)니 도조(道鳥)니 국조(國鳥)니 떠들 땐 언제고 이제와 망나니 대접을 하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이다.
언제 그들이 대접받기를 원했는가. 반가운 새니 시,도,나라를 대표하는 새니 했던 것도 다 사람 입에서 나왔지 언제 그들 입에서 나왔는가.
유해조수도 그렇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했다 하여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해조로 몰아세운 것 역시 우리들이다. 그들은 단지 둥지 틀 장소가 모자라 전봇대에 둥지 틀고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과수에 입질 했을 뿐이다. 둥지 틀 장소와 먹거리 부족은 누가 가져왔는가.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도 편견이다. 그 원인 역시 사람이 불러왔다.
더 큰 문제는 종 전체를 싸잡아 망나니 취급하는 일이다.
까치라고 해서 모두 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하는 건 아니다. 일부만 그런다. 엄밀히 따지면 피해를 주는 현행범은 그 일부다.
어느 한 사람이 강도짓 했다고 해서 사람 모두를 강도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수렵철인 요즘 순환수렵장 지역은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냥꾼은 많은데 짐승이 보이질 않는다. 멧토끼,고라니,멧돼지 보다 사냥개 수가 더 많다.
꿩과 멧비둘기는 물론 각 하천에 그 많던 흰뺨검둥오리며 청둥오리,비오리,논병아리 등도 모두 다 꽁지를 감췄다.
수렵장 운영 한 달이 지나면서 전혀 딴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관할 기관에 신고된 포획건수는 극소수다. 신고 건수로만 보면 소위 '엽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껏 '공포탄'만 쐈다는 얘기다. 그럴 리 없다. 잡은 사람이 신고토록 돼 있는 현행규정의 모순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가 근처서 드물게 만나는 까치나 까마귀의 행동도 달라졌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구잡이 총질에 얼마나 놀랐으면 낯선 사람, 아니 동네로 접어드는 낯선 차량만 봐도 똥줄이 빠져라 내뺀다.
사람들도 놀라 있다. 순환수렵장내 사람들 얘기다. 오죽하면 그들은 요즘 가까운 산은 커녕 밭에도 못 간다. 행여 짐승으로 오인돼 졸지에 탄환밥이 되지 않을까 겁 나서다.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써도 날뛰는 사냥개가 무섭단다.
수렵기간은 아직 석달 남았는데 까치도 얼고 들짐승도 얼고 사람들도 얼어 붙었다. 꽁~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