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원앙들이 이상해지고 있다

 
 옛날 중국에는 원(鴛)이란 새와 앙(鴦)이란 새가 있었다. 원은 수컷 원앙을, 앙은 암컷 원앙을 일컫지만 당시 사람들은 두 새가 별개의 종인 줄 알았다. 깃털 모습이 워낙 달라서다. 한데 훗날 알고 보니 같은 종이었다. 해서 둘을 합쳐 부르게 된 것이 ‘원앙’이다. 


   중국 진나라 때 최표가 지은 고금주엔 ‘원앙은 자웅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물새로 그 중 한 마리를 잡으면 나머지 한 마리는 몹시 애태우다 죽고 만다’고 설명돼 있다. 송나라 때 한빙부부(韓憑夫婦) 고사에서 유래된 원앙지계(鴛鴦之契)는 원앙처럼 언제나 함께 다니고 떨어지지 않는 부부의 정을 뜻한다.
 

   우리 선조들도 원앙을 금실의 상징으로 여겼다. 혼례때 원앙을 선물하거나 원앙이 그려진 이불(원앙금)과 베개(원앙침)를 혼수감으로 마련해 주고 또 행여나 부부가 토라지면 원앙 고기를 먹게 함으로써 금실을 되찾길 바랐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인식에 쐐기를 박는 주장이 최근 일부 학자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그 주장인 즉, 원앙들은 해마다 월동지서 자기짝을 골라 ‘한 해 부부’가 되는데, 그것도 암컷이 여러 마리 수컷 중 하나를 골라 짝을 삼는 changing partner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일년단위의 바람둥이란 뜻이다. 옛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얘기다. 더군다나 신혼부부에게 원앙처럼 잘 살라고 덕담한 사람들은 되레 험한 악담을 한 셈이니 개망신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다. 보은군에서 30년 가까이 원앙의 생태를 연구하며 직접 수천 마리를 길러온 김중구씨에 의하면 원앙은 일편단심 한 마리만 사랑하는 지독한 사랑새란다. 몸소 길러보지 않고 관찰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란다. 다만 집단 사육시 간혹 수컷이 죽어 홀로 남게 된 과부원앙은 다른 수컷들 극성에 얼마 안가 죽고 만단다. 한 마디로 가만 놔두질 않는다고 한다. 균형이 깨진 사랑의 비극이다.


 원앙은 때론 이해 안가는 행태를 보인다. 베일이 많다는 얘기다. 그 중 하나가 동종간 알을 맡기는 탁란(托卵) 여부다. 필자는 이를 강력히 주장한다. 증거가 있다. 원앙은 한 배에 9~12개의 알을 낳는다. 하지만 실제로 야생의 원앙 둥지를 보면 그 보다 훨씬 많은 알이 들어있다. 보통 30개가 넘는다. 많을 땐 40개 이상 발견된 둥지도 있다.


 왜 그럴까. 한 배에 9~12개씩 낳는다는 새가 왜 그렇게 많은 알을 갖고 있을까. 답은 엉뚱한데 있다. 알 주인이 여럿이란 얘기다. 알 크기가 서로 다른 것은 그를 입증한다. 둥지 주인은 한 쌍인데 알 주인이 여럿이라면 뻔하다. 누군가가 둥지 주인 몰래 알을 낳은 것이다. 다시 말해 동종간 탁란을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탁란을 할까. 알 낳을 장소가 부족해서다. 인간의 엉뚱한 발상 때문에, 나무구멍이란 구멍은 외과수술이란 핑계로 죄다 막아놨으니 급한 김에 남 둥지 찾아 실례를 하게 된 것이다. 또 자연상태의 과부 암컷도 탁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화되지 않는 무정란이 물증이다. 


 올핸 의문점이 하나 더 생겼다. 때이른 여름날씨가 찾아와 부화 시기가 빨라질 법도 한데 오히려 늦어지고 있다. 그것도 보름 이상 말이다. 원앙은 보통 모내기철을 전후해 알을 까는데 올핸 모내기철이 한참 지났어도 아직 알 품는 둥지가 태반이다. 변덕스런 날씨 탓에 생태시계가 고장 난 듯하다. 사육장에선 부화율과 산란율도 떨어졌다. 보은의 김씨는 “산란기때 30도를 넘는 이상기온이 찾아온 게 원인”이라 말한다.


 이래저래 이 땅의 원앙들이 시련의 시대를 맞고 있다. “케~켓.”  원앙 소리가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생태시계가 망가진 올봄의 이상징후

 
 야생동물의 생태를 관찰하다보면 그들의 정확한 시간개념에 혀가 내둘러질 때가 많다. 얼마나 정확한 지 마치 몸속에 초시계라도 지닌 양 시간흐름을 용케 알아챈다.
야행성인 수달이 먹이활동을 위해 굴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정확히 일몰시간대다.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곳보다 이르게 해가 지는 곳에서도 바깥 출입을 시작하는 시간은 매한가지다. 밖에 나와 해가 넘어가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컴컴한 굴안에서 잠을 자다 해만 지면 영락없이 모습을 드러내니 기막힐 일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날씨까지도 정확히 알아챈다. 구름이 끼거나 눈·비가 오는 걸 요즘 기상청 보다 더 잘 안다. 해서 행여 날이 궂을라치면 다른 날에 비해 좀더 일찍 나타나 부산 떤다. 또한 겨울철 기온이 급강하해 날씨가 추워지면 출현시간이 더뎌지거나 아예 드러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수달의 이같은 행동은 다분히 학습에 의한 본능으로 앞의 시간개념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즉, 날이 궂으면 더한 악천후를 대비해 더 많은 먹이를 먹으려고 부산 떠는 것이며, 갑자기 추워질 경우엔 먹잇감인 물고기들도 활동이 적어져 먹이찾기가 쉽질 않기 때문에 가능한 한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괜한 게으름이 아니요 그들 나름대로 터득한 자연의 지혜다.


 하늘다람쥐 역시 시간흐름을 정확히 인지한다. 이들 또한 나무구멍 속에 들어앉아 낮동안 잠을 자다가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맞춰 활동을 시작한다. 봄에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사계절의 해넘이 시간을 족집게처럼 알아챈다. 아마 사람들이 이들처럼 시간흐름을 잘 알아채면 시계란 이기(利器)도 별로 필요치 않았으리라. 하늘다람쥐는 특히 자신이 둥지서 나오는 시간 뿐만 아니라 매일 거쳐가는 텃세권을 마치 노선버스 다니듯 정확한 시간대에 맞춰 거쳐가는 습성이 있다. 참으로 영특한 동물이다.
 다만 하늘다람쥐도 겨울철 몹시 추운 날엔 바깥 활동이 뜸해지는데 이는 체형이 작은 포유동물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아무래도 체내의 피흐름이 원활치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야생동물들이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 몸속에 시간을 감지하는 생태시스팀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생명체에 내재된 일종의 생태시계를 통해 그들의 생체리듬과 본능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생태달력은 다름 아닌 이들 생명체의 생태시계와 그를 통해 나타나는 각각의 생체리듬이 모인 총화이다. 식물들 또한 새싹 돋울 시기와 꽃 필 시기, 열매 맺을 시기를 스스로 인지하는 것도 다 이런 기작 때문이다.
 자연이 자연스러운 때는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생태시스팀이 원활히 작동될 때를 의미한다. 반대로 각 생물들의 생태시스팀이 원활히 작동되지 않을 때엔 각종 부자연스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봄에 여름꽃과 가을꽃이 피고 가을에 봄꽃과 여름꽃이 핀다면 그 어찌 자연스럽다고 하겠는가.


 널 뛰듯 하는 올해 날씨가 실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예사롭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이미 했던 터이지만 요즘 나타나는 징후들을 보면 그야말로 심상찮다.
 4월 하순에나 알을 낳는 원앙들이 3월 중순에 구애행동을 하고 여름철새인 호랑지빠귀가 벌써부터 날아와 “히이 호오” 귀신소리를 낸다. 전국의 양식장 물고기들은 갑작스런 수온변화로 각종 질병이 창궐하고 각 지역 하천에선 이름모를 이끼들이 잉크를 풀어놓은 양 번지고 있다. 음력 2월인데 시골 농가에 모기가 나타나고 해충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각종 생물들의 생태시계가 망가트려져 자연계의 생태달력마저 삐그덕 거리게 하는 게 목하 올 봄의 이상기후요 이상징후다.

철쭉꽃이 폈다. 그것도 흐드러지게 폈다.

대전,청주 등 도회지 부근에선 이미 지난달 24일께 철쭉꽃이 폈고 속리산 뒷자락의 사담 계곡엔 28~29일께부터 피기 시작했다.
철쭉꽃만이 아니다.

눈송이처럼 희게 피는 팥배나무꽃도 사담계곡에 흐드러지게 피어 제모습을 알리고 앙증맞고 기이한 모습의 매발톱꽃도 온통 꽃망울을 터트렸다.
문제다. 이들 꽃이 핀 게 문제가 아니고 '이르게' 핀 게 문제다.

혹자는 꽃 몇 종 이르게 폈다고 뭐 그리 호들갑 떠나 할 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철쭉꽃과 팥배나무은 보통 5월 중순께나 핀다. 그런데 올해엔 4월 하순께 피기 시작했다. 매발톱꽃은 더하다. 보통 6~7월에 피지만 요즘 어딜 가나 만개했다.
이미 진 꽃도 있다. 대개 5월 이후 꽃을 피우는 귀룽나무는 올해엔 4월 하순 꽃이 폈다 진 후 지금은 열매까지 맺혔다.

아그배도 꽃잎을 떨군 지 오래다.

왜 그럴까.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하도 이상스러우니 꽃들마저 개화시기에 혼란이 온 것이다.
요즘 날씨를 보라.

5월초인데 낮기온은 벌써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아침 저녁으론 되레 썰렁하다. 봄과 한여름 날씨가 공존해서다.

어떨 땐 수은주가 곤두박질쳐 극심한 일교차를 보인다. 얼마전 괴산,보은 등 내륙지역에 엄청난 된서리가 내린 데 이어 오늘(6일) 또 다시 서리가 왔다.
올해엔 유난히 날씨가 변덕스럽다.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훨씬 이르게 찾아온 데다 두 세 차례 썰렁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한여름인지 봄인지 종잡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날씨가 이러니 생태달력인들 온전할 리 없다.

봄에는 봄꽃이, 여름엔 여름꽃이 펴야 정상적인 생태달력인데 봄꽃과 여름꽃이 한 데 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태계 곳곳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모기와 병해충이 조기 출현하고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지 않고 방황(?)한다.

또 큰 일교차와 지난번 내린 된서리로 농축산물이 피해를 입었다.
이른바 '양봉철'이 왔어도 식물의 꽃에서 꿀이 적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양봉업자들이 울상이다. 극심한 일교차 때문이다.
냉해가 더한 곳은 고추재배 농가와 과수농가다. 애써 심은 어린 고추묘는 지난 된서리에 얼어죽거나 잎이 말라 다시 심어야 할 판이고 이제 막 꽃을 떨군 사과,배,복숭아는 어린 열매가 동해를 입어 과육이 기형으로 자라는 피해를 입게 됐다.
또 산란계를 키우는 양계농가에서는 때이른 무더위로 닭들이 먹이를 잘 먹지 않아 산란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하소연이다.

가뜩이나 조류인플루엔자로 멍든 가슴 날씨로 인해 더욱더 찢어진단다.

기후는 변한다.

지구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기후변화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게 나타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수 백년 동안에 이뤄질 기후변화가 불과 몇십 년만에 나타나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더 빨라지고 있다.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생태계는 갈팡질팡한다.

계절의 흐름과 밤낮의 길이를 감지하는 '생태시계'가 온전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우이지만 동식물의 생태시계가 아예 고장나면 어떻게 될까.

여름철새와 겨울철새의 구분이 없고 각종 해충이 시도 때도 없이 들끓게 될 것이다. 생태계내의 계절적인 질서가 깨져 말 그대로 혼돈의 세계가 오게 된다.

현실은 어떤가.

봄과 여름은 물론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한반도. 그래서 봄꽃과 여름꽃이 함께 피고 여름철새인 백로,왜가리가 겨울에도 이동하지 않는 이상해진 생태계.

우린 지금 혼돈의 세계, 무질서의 세계에 이미 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심각성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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