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봄이 또다시 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목이다. 일종의 랜드마크라 할까.
길을 가다가도 고목이 나타나면 으레 가까운 곳에 마을이 나오고 행여 마을이 없으면 적어도 옛 마을터나 집터가 자리하고 있는 게 우리네 농촌이다.
그만큼 고목은 우리 농촌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그 자체가 고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부터 고목은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자 휴식을 주던 쉼터요 할아버지의 따스한 정을 기억케 하는 매개체였다.
고목은 또 자연 생태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니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태박물관이었다.
봄이 되면 참새와 찌르레기,원앙이 날아들어 줄기와 가지에 난 구멍마다 둥지 트느라 요란했고 여름이면 서쪽새 깃들어 밤새 불침번 서던 곳이 고목이다. 또 늦가을 돼 서리라도 내릴라 치면 구렁이,무자치 얼어죽을 새라 밑둥치 구멍으로 속속 기어들고 중턱 나뭇가지 구멍으론 귀염둥이 다람쥐 겨울잠 자러 서둘러 들어가던 곳이 바로 고목이다. 또 겨울이 오면 올빼미 눈 부라리며 썩은 나무구멍 찾아 몸 숨기고 터줏대감 부엉이는 밤새 울며 괜한 아이 겁 주던 곳이 마을어귀 고목이었다. 일년내내 딸린 식구 많아 늘 시끄럽고 사시사철 생명이 머물던 생태계의 텃밭이었다.
그러던 고목이 요즘엔 어떻게 됐나.
봄이 와도 찌르레기,원앙은 커녕 참새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여름철 서쪽새 울음소리 끊긴 지 오래다. 유구한 마을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던 고목나무 속 구렁이 얘기도, 겨울밤이면 머리끝을 쭈뼛쭈뼛하게 만들던 부엉이 소리도 추억속 옛일이 됐다.
나무는 서있건 만 생명의 발길이 무 잘리듯 단절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온갖 생명이 들끓던 고목들이 왜 이처럼 황량해졌을까. 답은 하나,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고목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아버림으로써 생명의 발길을 끊어버린 것이다. 고목의 줄기나 가지에 난 구멍은 새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의 둥지 내지 거소 역할을 해온 중요한 서식환경이다. 참새가 붙박아 살고 찌르레기와 원앙이 날아들며 서쪽새와 올빼미가 찾아든 것도 기실 나무구멍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곳에 엉뚱한 손을 댐으로써 그곳을 찾던 생명들을 졸지에 갈 곳 없는 미아(迷兒) 신세로 만들어 버렸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외과수술이란 미명 아래 전국에 있던 거의 모든 고목의 구멍들을 몰타르와 스치로폼 류로 온통 ‘땜질’한 웃지 못할 처방(?)으로 인해 그곳에 깃들던 생명들로 하여금 집 잃은 설움을 겪게 한 일대 사건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편협한 잣대가 부른 자연파괴 행위다.
수백년을 살아온 고목들은 비바람을 비롯한 모든 자연조건에 적응한 결과로서 가지에 구멍도 생기고 때론 줄기 자체가 텅 빈 채 서 있는 것이 본디 모습이다. 또한 오래된 줄기 가운데엔 죽은 세포가 모여 살아있는 세포를 감싸 보호하는 것이 나무의 섭리다. 그러니 구멍 몇 개 난 들 큰 문제가 안되며 자신의 썩은 구멍으로 인해 죽었다는 나무도 보질 못했다.
그런데 이같은 자연섭리를 생각지 않고- 순전히 인간의 시각에서- 그것을 도려내고 땜질해 주면 오래 살겠지 하는 단순한 판단이 결국 나무에게도 씻지 못할 생채기를 남기고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꼴이 됐다.
한쪽에선 인공둥지를 달고 먹이까지 줘 가며 억지로라도 야생동물을 불러들이려 하고 또 한쪽에선 엉뚱한 발상으로 찾아오던 동물마저도 내쫓는 게 우리네다. 전문적인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들으려하지도 않는다.
산란철 앞둔 참새가 가까운 고목 놔두고 애써 콘크리트 구멍 찾아 기웃거리는 그 이상한 봄이 또다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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