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이 품을 연 곳으로 속리천은 흐르고

최상류 대부분 전형적인 산골 풍경 멋진 풍경

일부구간 하천정비사업으로 점차 옛 모습 잃어


산경표의 원리에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이 있다.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눈다는 뜻이니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과도 같다.


또 산경표에서는 두 능선 사이에 반드시 계곡이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반드시 능선이 있다고 본다. 또한 물길은 능선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해 서로 끊기지 않고 이어져 흐르니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어 결국 산과 강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흘러온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룬 뒤 바다로 흘러가듯 이 산 저 산줄기가 모여 정간과 대간으로 흘러들고 마침내 백두산으로 향하니 이 모든 것이 한반도의 산과 강을 이룬다는 것이다.


옛 선조들의 기막힌 논리를 생각하며 눈앞에 펼쳐진 속리산 자락을 보니 옛말이 틀림없다.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달래강 최상류)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물길에 서서 물과 산의 개념으로 바라보니 더욱더 새롭다. 본류(남한강)랑 만나는 곳이 북쪽이니 좀더 빠른 그쪽을 향해 물길을 틔울 법도 한데 정반대 방향인 남쪽을 향해 점잖게 머리를 틀고 있으니 이 또한 속리산의 매력이자 달래강의 멋이 아닌가 싶다.


천변에 자란 달뿌리풀이 한 길 가량 자라있다. 사내리 집단지구시설에서 처음으로 '인간냄새'를 맡으면서 BOD를 품었다고는 하나 물빛이 아직은 꽤나 맑은 표정이다. 물가엔 검은 듯 푸른 모습의 물잠자리 떼가 산란기를 맞아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없이 오가고 둑방에는 앙증맞은 엉겅퀴가 망울을 터트린 채 바람에 하늘거린다.

 

인근 도로로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들며 도시내음을 전해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산골 풍경이다.

 

속리천과 정이품송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다시 물길을 타고 상판교를 지나 중판리 쪽을 향하니 말티고개 쪽 골짜기서 내려오는 실개천과 만난다.

말티고개 정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 천왕봉서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이다. 고개 너머는 금강수계요 속리산 쪽은 속리천(달래강·남한강) 수계다.


이 지점부터 한동안은 왼쪽으로 한남금북정맥 능선을 두고 흐른다. 따라서 인근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그대로 속리천의 몸이 된다.


하천이 한바탕 휘도는 곳으로 둑방길을 따라 들어가니 중판리 점말교가 나타난다. 다리위에 서서 물이 흘러드는 위쪽을 바라보니 물길이 가냘프다.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하천물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점말교 바로 아래에 최근 '무전원자동수문'이 세워져 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곳 역시 텅 비어 있다.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이 자동수문은 보은군청 이호천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담당)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수질과 수량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신형 수문이다. 보은군청은 앞으로 이 자동수문을 속리천 곳곳에 더 설치해 연중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그 효과가 기대된다.

 

 

무전원자동수문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현재 속리천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중판리 자동수문으로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물이 넘칠 때의 모습(위)과 현재 모습(아래).

 

중판리 자동수문 아래에는 30년전(1979년) 건설된 '희망의 다리'가 고목처럼 누워있다.

 

인근에 속리터널이 뚫리면서 교통량이 많아지자 바로 아래에 중판교가 신설돼 다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런 탓인지 다리 입구에 새겨진 희망의 다리란 이름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보은군과 대한석유공사가 이 다리를 건설할 당시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밖의 세계로 통하는 희망'을 주기 위해 야심찬 이름을 붙였으련만 세월이 흐르면서 퇴물로 전락한 채 피서객들의 주차장과 그늘막 역할을 할 뿐이다.

 

속리천도 세월처럼 그렇게 흘렀으리라. 뒤에서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채지 않고 미련없이 낮은 곳만을 향해 줄달음 쳤으리라.


잠시 세월무상에 젖었다 발길을 돌리려니 새로 들어선 중판교 초입에 낯익은 돌탑이 금줄을 두르고 서있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자연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물길을 따라내려가다 속리산면의 하수처리상황은 어떨까 궁금해 하천옆(중판리)에 세워진 속리하수처리장을 잠깐 들렀다. 보은군이 지난 2003년부터 한국수자원공사에 위탁해 관리운영해 오고 있는 이 하수처리장은 하루 처리용량 4천톤 규모로 인근의 상판·중판·사내·갈목리 일원 하수를 총13km의 차집관거를 통해 걸러내고 있다. 방류구를 살펴보니 비교적 맑은 물이 속리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다시 도로로 나와 속리터널 앞을 거쳐 하류로 향하니 오른쪽으로 문화마을(중판2리)이 보일 쯤 하판교가 나타난다. 물길은 계속해서 왼편에 한남금북 마루금을 끼고 도로와 평행으로 달린다.


'샨띠와남'이란 독특한 이름의 요가수련원을 지나니 북암리와 마주친다. 마을 앞 세강교 아래엔 수령 3백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 역사를 대변하듯 마을간판처럼 서있고 왼쪽 수백m 위쪽으로 하천변 바위 절벽과 조화롭게 자란 소나무가 고풍스런 자태로 객을 반긴다.


37번 국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한바퀴 휘돌고나니 백현리 마을이다. 백현교로 들어서자 다리 아래 개울가 모습이 지금까지 보여온 자연하천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게 어색해 보인다. 최근에 마친 하상정비 사업으로 둑방엔 철망이 깔리고 하천바닥은 편평하게 다듬어져 '죽은 느낌'을 주고 있다.

 

 

속리천과 한남금북정맥의 멋진 만남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군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를 지나니 잠시 뒤 백석2교가 쉬어가라고 객을 부른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또 한바탕 휘도는 산모퉁이 중간에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가 있고 이어 나타나는 백석2교가 잠시 쉬어가란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지는 석양이 아쉬워 발길을 돌리니 백석1교가 지난 겨울의 모습을 떠올린다. 찬 바람이 불던 늦겨울 예비탐사차 이곳을 찾았을 때와 물빛이 확연히 다른 게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계속>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주요 분수계 역할
동북으로는 백두대간이 낙동강과 경계 지어
서북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이 금강과 물길 나눠


산과 물을 말할 때 요즘은 흔히 분수령과 마루금,재,분수계,수계란 말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뒤에 설명하는 '산경표'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우선 분수령이란 산에 관한 개념으로서, 글자 그대로 물을 나누는 마루, 즉 산의 양쪽 사면이 만나는 곳 혹은 산의 양쪽 사면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능선과 같은 말이다. 마루금은 이 분수령(능선)을 서로 연결한 금(선)을 뜻하고 말티재,질마재,모래재 등의 '재'는 능선 중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 반대가 봉우리다.


또 분수계는 하나의 강 유역을 완전히 에두른 분수령의 집합으로 다른 강 유역과 구분되는 영역을, 수계는 분수계로 둘러싸인 안쪽의 전 영역을 일컬을 때 쓰인다. 다만 분수계는 산과 관련된 개념인 반면 수계는 물에 관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달래강(달천) 유역의 분수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대체적으로 달래강이 흐르는 방향인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강과 경계를 이루고 왼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금강과 경계를 이룬다.

 

■백두대간과 달래강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동·서로 구분짓게 하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속리산 천왕봉을 기점으로 북쪽을 향해 조령산 인근의 마력봉까지 줄달음을 하면서 동으로는 낙동강 물줄기를 일으키고 서로는 달래강 물줄기를 일으킨다.


속리산 천왕봉서 시작해 마력봉까지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가자면, 우선 속리산 연봉인 비로봉,신선대,문장대 등을 차례로 지나 경북 용화와 화북을 연결하는 밤티에 이어 늘재를 만난 뒤 청화산,조항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시루봉,이만봉,백화산,황학산으로 이어졌다가 이내 이화령과 조령산,조령3관문을 지나 마지막으로 마력봉을 만난다.


이렇게 이어진 마루금은 대부분 충북과 경북 도계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둘로 나누는 분수령 역할 뿐만 아니라 양 지역의 문화를 각기 달리 형성시킨 문화적 산파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마력봉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다시 방향을 바꾼 마루금은 월악산쪽 지릅재를 거쳐 대미산과 남산,마지막재,계명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동달천,내사천,충주호 등과 경계를 이룬다.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마력봉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충주 관내 계명산까지 이어진 마루금은 달래강의 오른쪽 유역, 즉 동북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백두대간의 '늘재'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구분짓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백두대간의 여러 분수령 가운데 하나인 늘재로, 오른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경북 상주시 쪽에서 바라본 늘재 △분수령 안내판 △충북 괴산 송면 쪽에서 바라본 전경 △고갯마루의 백두대간비.

 

백두대간의 '밤티'
속리산 문장대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경북 상주시의 밤티. 원내는 경북 용화에서 화북 방향으로 바라본  밤티 모습.

 

■한남금북정맥과 달래강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이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 달래강과 낙동강 유역을 나누는 것과는 달리 한남금북정맥은 왼쪽 방향으로 북쪽을 향해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다.


속리산 천왕봉서 처음엔 남서쪽으로 뻗기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은 이어 속리산 관문인 말티고개(현재 속리터널이 인근에 뚫렸지만 여전히 버스노선으로 이용되는 등 관문역할을 하고 있슴)를 지나면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구봉,탁주봉,시루산,구봉산,국사봉,머구미재를 지나 청주 인근의 선두산,선도산,상당산으로 접어든다.

 

이어 충북 청원의 미원과 내수읍(초정 약수터)을 잇는 이티재를 지나 구녀산과 좌구산을 넘으면 괴산군의 청천 쪽에서 청안을 넘나드는 질마재가 나오고 이내 칠보산을 거쳐 괴산읍과 증평읍을 잇는 모래재를 지나 보광산,보천고개,행티재를 넘어 음성 관내의 소속리산에 이르게 된다. 소속리산에 다다른 한남금북정맥은 계속해서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을 거쳐 강화도를 향해 달리지만 달래강과의 인연은 소속리산 자락에서 끝을 맺는다.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다시 방향을 튼 마루금은 음성 감우재를 지나 부용산과 수레의산,덕고개,자주봉산,솔고개,평풍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청미천과 앙성천,한포천 등과 경계를 이룬다.


이곳까지의 마루금은 달래강의 서남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한남금북정맥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한남금북정맥은 북쪽을 향해 왼쪽 방향으로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보은 삼년산성에서 바라본 한남금북정맥의 전경으로 오른쪽으로부터 천왕봉과 말티고개가 보인다.

 

■산경표


산경표는 우리 나라의 산이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흐르며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한 지리서다.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동국문헌비고(영조46년, 1770년)에 수록된 신경준의 여지고와 산수고를 바탕으로 편찬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산맥 분류 체계와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서 간(幹)은 줄기를, 맥(脈)은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를 지칭한다.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은 이 책의 분류에 따른 것으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커다란 기둥줄기를 일컫고 이 기둥줄기로부터 뻗어나간 2차적인 갈래를 정간과 정맥이라 하는데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줄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도 산경표에서 나온 말로 '산 스스로 물을 나누는 경계, 즉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산경도는 산경표를 지도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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