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랜드마크 '금강'은 이제 슬프다

 

 

금강은 특별하다. 전북서 발원해 1천리를 굽이치고도 다시 전북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큰 강 치고 발원지와 종착지가 한 도(道)에 있는 건 금강 뿐이다. 그러면서 물줄기는 전라 경상 충청을 아우른다. 그래서 삼기(三岐)의 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강을 금강답게 특징 지웠던 것은 금빛 백사장을 끼고 수놓 듯 흐르던 푸른 물결이었다. 오죽했으면 비단강(錦江)이라 했겠는가.
푸른 물빛과 함께 곳곳에 펼쳐졌던 황금빛 모래사장은 가히 금강의 대명사였다. 대전 인근의 신탄진과 청원 부용의 금호리 일대는 해수욕장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이미 강수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은 지류 곳곳에도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미호천이다. 지금도 청주시민의 추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팔결다리 백사장과 까치내 백사장은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서 손꼽히던 명소였다.

 


금강은 또 여러 생명체를 껴안은 생명의 강이었다. 서식 환경이 다양하니 그곳에 깃든 동식물도 다양할 수밖에. 물고기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에 오로지 금강수계에만 사는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Ⅰ급)를 비롯해 어름치(〃 238·259호), 감돌고기(멸종위기Ⅰ급), 흰수마자(〃), 퉁사리(〃), 꾸구리(〃Ⅱ급), 돌상어(〃), 둑중개(〃), 금강모치, 종어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소중한 물고기들이 지천했다.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i-미호종개의 학명)'의 주인공 전북대 김익수교수가 '미호천엔 색다른 물고기가 살 것'이란 학술적 상상을 가짐으로써 결국 미호종개를 발견해 냈던 모티브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봐왔던 미호천 모래사장이었다. 금강은 또 '물고기 할아버지' 고 최기철박사의 학문적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금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류이긴 하지만 금강 언저리서 태어나 그 물에 멱 감으며 자랐고, 언론사에 몸 담은 뒤론 줄곧 '주요 출입처'로서 늘 관심을 가져왔다. 금강 토박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요 당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금강은 슬프다.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렜던 본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적어도 비단강 시절의 금강은 이젠 없다. 속살이 훤히 비치던 푸른 물결도, 금가루가 금세 묻어 나올 것만 같던 모래사장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생명의 숨소리도 야위어 있다. 부여의 진상품이던 종어는 오래 전에 절종됐고 어름치는 수십년째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인공복원됐다. 뿐만 아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랫바닥을 훑기만 해도 한 줌씩 잡혀나왔던 재첩은 물론 갈퀴질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튀어나왔던 모래무지,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떼지어다닌다 하여 멍석이라 불렀던 잉어떼들…. 모두가 옛날 얘기다.

 


강은 자체가 생명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수십,수백 억 년을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에 따라 모습을 갖춰온 복합생명체다. 그러나 그같은 복합생명체도 '인위'에는 약하다. 강의 최대 천적은 인간이다.
어느날 졸지에 물흐름이 바뀌고 곳곳이 단절된 채 상하류가 뒤죽박죽 된 것도 사람에 의해서요, 한반도 형성기부터 뿌리 내려온 물고기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져간 것도 사람에 의해서다.

 


금강은 이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뜩이나 벼랑끝 신세이던 금강이 목하 4대강 사업의 손안에서 '조각(彫刻)'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숱한 세월을 이어온 자연의 라이프사이클에 감히 마구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금강의 라이프사이클, 그 와중에 우리들 추억속 랜드마크까지 갈가리 '조각'나고 있다.

잡고 보니 보호종이었다?

 

 

지난 7월 24일 오후 3시 청원 미원 관내의 달천. 굵은 빗방울이 지나간 뒤 비가 뜸해지자 3명의 피서객이 열심히 투망질을 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지만 요즘엔 간 큰 사람들이나 하는 불법행위다. 그래서인지 일행중 한 사람이 연방 도로쪽을 바라보며 망을 보고 있었다.
해서 멀찌감치 차를 세워놓고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달가워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우선 웃는 얼굴로 인사부터 건넨 후 이런저런 말을 걸며 "잡은 물고기좀 구경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남이 잡은 물고기를 왜 보자고 하느냐"며 귀찮아 하는 눈치였다.
"요즘엔 무슨 물고기가 잡히나 궁금해서 그런다"며 다시 부탁하니 그때서야 마지못해 고기바구니를 내밀었다. 세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탓이다. 천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던 시절과는 인심이 전혀 딴판이다.

 


어쨋거나 두 차례 머리를 조아려 양해를 구한 다음 보게 된 '남이 잡은 물고기'. 하지만 그 물고기를 뒤적이는 순간 눈을 의심케 하는 물고기가 손에 들어왔다. 3마리의 돌상어였다. 지난 1991년 손영목박사(전 서원대교수)가 채집해 마지막으로 서식을 확인한 이래 그동안 채집사례가 없어 달천에서 사라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왔던 물고기가 돌연 피서객의 손에 잡혀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틀림없는 돌상어였다. 불그스름한 몸바탕에 입이 아래쪽을 향하고 짧은 입수염이 4쌍 있으며, 머리 아랫면과 배밑 부분이 납작해 자갈이 깔린 여울에 살기 적합하도록 생겼다.
더욱 놀란 것은 그곳에서만 돌상어가 잡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하류인 괴산 청천 관내에서도 비록 1마리이지만 피서객의 투망질에 희생된 채 매운탕거리에 섞여있었다.

 


돌상어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인 한국특산어다. 예전엔 물이 맑은 하천 중상류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살고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 등으로 극히 보기 드물어진 희귀종이다.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이를 잡거나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돼 있다.
학술적으로는 아직 생태와 생활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미답의 물고기'이기도 하다. 지구상 유일한 분포지인 우리나라에서도 한강, 금강 수계에만 서식하는 데다 금강에서는 최근 '거의 사라진 물고기'로 취급되는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그런 물고기가 달천에서 20년 만에 발견됐으니 박수를 치며 반가워 해야 할 판에 되레 안타까운 마음부터 앞섰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적은 개체나마 달천 상류서 소중한 대(代) 내림을 해오고 있던 이 땅의 살붙이가 여전히 남획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달천변에는 현재 보호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있다. '우리가 보호한 토종물고기, 후손들의 큰 자랑이 됩니다'란 문구와 함께 지켜야 할 물고기의 사진과 이름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는 친절이다. 그것을 관심있게 보는 이도 없거니와 봐봤자 사진과 이름만으론 어떤 것이 보호종인지 이해하는 이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잡은 뒤에, 이미 죽어 매운탕거리로 변한 뒤에 그것이 보호종이라고 해봐야 때는 늦으리이다. 감시와 단속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주변에 혹은 내가 머무는 곳에 어떤 보호종이 있는지 보다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총으로 쏘고 보니 보호종이었다는 '포수의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문화선진국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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