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담의 슬픈 사연에 물길마저 통곡하듯 굽이치고ㆍㆍㆍ

용추골 내 용추폭포 하얀 물줄기 절경 이뤄
가무내 명칭 금송아지(金牛) 전설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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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경 이룬 용추폭포
용추골 안에 있는 용추폭포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과 함께 지금도 바위 주변에 용발자국이 남아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위 위에서 떨어진 옥수(玉水)가 2단으로 펼쳐지며 절경을 이룬다.  


장마전선이 물러가니 하늘빛도 산천빛도 다 새롭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요동치던 강물도 2~3일 지나니 언제 그랬냐며 수줍은 몸짓이다.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잠시 날갯짓을 사리던 물잠자리도 더욱 말쑥해진 차림이고 비가 그치면서 훨씬 높아보이는 푸른 창공엔 황조롱이 새끼가 비행술을 익히느라 이리저리 어지럽다.


괴산군 청천면 신도원에서 도원을 비껴 현천다리(도원교)에 도착한 강물은 또 한번 ‘가무내’란 명칭으로 이름갈이를 한다. 가무내는 말 그대로 ‘검은 내(현천·玄川)’란 뜻인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강바닥에 검은 바위와 돌이 많이 깔려있고 도원교 바로 아래엔 수심 깊은 소가 있어 항상 강물이 검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이는 현대적인 해석일 뿐 그 어원은 다른 데 있다.


괴산 청천지역 향토사학자인 김사진씨(60ㆍ전 괴산군 의원)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 물가서 금송아지가 나온 이래 쇠 금(金)과 소 우(牛) 자를 써서 ‘금우내’로 부른 것이 차츰 감우내→가무내로 변했다가 한자 지명으로 바뀌면서 현천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가무내란 이름은 현 도원교가 세워진 부근(화양2리)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한 달래강의 또다른 이름으로도 불러진다. 

금송아지(金牛) 전설을 안고 흐르는 가무내의 봄풍경.


어쨋거나 유난히 검게 보이는 하천바닥을 급한 물살로 지나친 가무내(달래강)는 현천다리 바로 아래서 커다란 소를 이루며 까불까불 다시 한번 몸을 추스린 뒤 이내 화양1리 청소년수련원 뒤편으로 흘러 지류인 화양천과 몸을 섞는다.


화양천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북 도계(백두대간 마루금)서 발원해 송면에서 선유동쪽의 관평천과 만나 화양계곡을 거쳐 흘러드는 지류를 말하는데 비가 온 뒤끝이라 수량도 많고 물빛도 유리알 같은 게 본류인 가무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달래강 지류는 추후 별도로 보도 예정)


화양천을 만나면서 더욱 힘이 솟구친 가무내는 그야말로 바위 투성이인 마당바위 구간을 통과하면서 온갖 번뇌 다 토해낼 것 같은 하얀 몸부림을 친다.

 

달래강 전 구간이 암반으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상에 돌과 바위가 많이 깔려있지만, 이 구간은 특히 커다랗고 시커먼 바위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색다른 경관을 이루는데 그 중에서도 백로담 직전의 마당바위 부근이 가장 빼어나다.


이 구간은 또 절경도 절경이지만 ‘달래강의 숨결’ 취재팀이 수 개월째 추적하고 있는 ‘수달’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수역으로 오죽하면 어부들도 그물을 치길 꺼려하는 요주의(?) 지역이기도 하다.(수달의 서식현황을 비롯한 달래강의 생태도 추후 상세 보도 예정)


이날 역시 돌위에 나보란듯 흔적을 남긴 수달똥을 집어들고 버릇처럼 냄새를 맡으며 물길을 따라 내려 가다가 며칠전 만났던 이 동네 어부를 다시 만나 ‘심한 수달얘기’를 듣게 됐는데 그 어부 왈, “엊그제 그물을 쳤더니 그물을 채곡채곡 쌓아놓은 게 마치 사람이 걷어놓은 것처럼 해놓고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남겨두질 않았다”며 억울해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수달 서식지

 마당바위 부근에는 수많은 바위와 강물이 어우러져 달래강 특유의 경관을 빚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은 ‘극성스러울 만큼’ 수달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어부들마저 그물 치길 꺼리는 수달천국이다.   

내심 반가운-어부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할- 얘기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고 도착한 곳이 후영리 백로담이다. 얼핏 듣기로도 범상치 않은 지명이 또 한번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백로담은 마당바위를 지나 후영교 부근의 커다란 물굽이를 이루는 지역을 일컫는데 예전엔 이곳 절벽 노송에 백로 서식지가 있어 강의 푸른 못(담ㆍ潭)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뤘다고 한다.


백로담과 관련된 전설을 들어보자.

 

옛날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부하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는데 산세가 수려한 데다 백로가 많이 찾아오고 동네마저 부촌인 지라 훗날 큰 인재가 날 것을 두려워 해 뒷산 중턱에 호를 파서 산세를 끊고 장검으로 혈을 찔렀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단다.

 

이 전설을 들으니 약 20년전 ‘금강 1천리 물길’ 취재시 그곳 발원지인 전북 장수의 신무산 역시 임란때 이여송이가 직접 뜸을 떠 혈을 끊었다는 얘길 듣고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백로담의 슬픈 사연을 듣고 물길을 바라보니 물길마저 통곡하는 양 역S자형을 그리며 온몸으로 꿈틀댄다. 그 꿈틀대는 물길을 따라 2km가량 더 내려가니 반원처럼 둥글게 물굽이 치는 왼편에 마을 하나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다. 마을 형상도 노루 모가지 같고 물길도 노루목처럼 흐른다는 노루목 마을이다.

 

노루 모가지처럼 흐르는 달래강
괴산군 청천면 백로담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반원처럼 둥글게 물굽이 치는 왼편으로 손바닥만한 마을 하나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다. 마을 형상도 노루 모가지 같고 물길도 노루목처럼 흐른다는 노루목 마을이다.


마을 반대편 도로에서 노루목의 깊은 인상을 담고 거봉리를 향하려는데 산모퉁이 초입에 조그만 다리(용추교)가 나타나고 그 안쪽으로는 골짜기가 이어진다.

 

이름하여 용추골로 향하는 곳이다.


용추골은 지난 봄 사전답사때 그 안쪽 사기막리에 있는 용추폭포와 연리목(사랑목)을 촬영키 위해 들어갔던 곳으로 여름 장마철 모습이 궁금해 다시  찾기로 하고 발길을 옮기니 봄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바위를 다 갉아먹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적잖은 물이 2단으로 쏟아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다. 고즈넉한 산중에서 모처럼만에 폭포수 소리 들으며 한동안 정신없이 셔터를 누루고 나니 온몸에 냉기가 돈다.

 

삼복에 냉기를 받으며 절경에 빠지니 이 어찌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인근에 있는 연리목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폭포소리가 여전히 따라온다.

 

며칠 전 이곳과 지척거리인 선유동 계곡을 찾았다가 그곳 연리지(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붙은 나무를 일컫고 연리목은 두 나무 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을 지칭함)가 고사한 것을 직접 목격했던 터라 발걸음이 괜히 무겁다.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낸 연리목은 봄에 본 건강한 모습 그대로 객을 반긴다.

 

"천왕봉서 물머리 일으켜 3백리 물길 시작" 
실질적인 시작점은 백두대간 마루금
'속리천'이란 이명으로 최상류 흘러

 

 

■달래강 물길의 시작점


달래강 물길은 그동안 속리산 비로봉 아래 상고암 약수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탐사 결과 달래강의 제1 발원지는 천왕봉 아래의 봉수대터 샘물임이 새롭게 밝혀짐에 따라 달래강 3백리 물길은 바로 이 샘물로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물론 실질적인 물흐름이야 천왕봉서 문장대를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학계서 인정하는 강의 시작점은 '하구 또는 합류지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샘물 형태의 물뿌리(水源)'이기에 천왕봉 봉수대터 샘물이 진정한 '달래강의 시작점'인 것이다.


다만 이번에 함께 찾아진 비로봉 남쪽사면의 굿당터 샘물(제2 발원지-상환암과 천왕봉을 잇는 등산로변 바위굴 샘물)과 기존의 발원지로 알려진 상고암 약수(제3 발원지)도 달래강의 주요 시작점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발원 샘물들은 각기 몸을 일으켜 법주사쪽 골짜기로 흘러들면서 달래강의 최상류 수역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천왕봉의 봉수대터 샘물은 서북방향으로 물흐름을 시작해 산의 중허리 쯤에서 제2 발원샘인 굿당터 샘물과 몸을 섞은 다음 이내 상환암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잠시 은폭동 폭포서 몸을 떨군 다음 비로산장 아래 삼거리(등산로를 따라 경업대·상고암 방면과 상환암·천왕봉 방면으로 나눠지는 갈림길)서 비로산장쪽으로부터 흘러오는 물길과 하나가 된다.

 

발원 샘물의 합수
천왕봉과 비로봉에서 각기 발원한 달래강 물머리는 비로산장 아래 삼거리(천왕봉·상환암쪽 등산로 입구)에서 서로 만나 비로소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다. 왼쪽이 상고암·경업대쪽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 오른쪽이 비로봉 남쪽사면과 천왕봉·상환암쪽서 내려오는 물줄기.


비로산장쪽의 물길이란 다름 아닌 상고암 약수로부터 시작한 물줄기와 경업대·입석대쪽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상고암 입구 삼거리(경업대 방면과 상고암 방면의 갈림길)서 만나 비로산장을 거쳐 내려오는 물길을 말한다.


이들 주요 발원지 물길의 특징은 처음엔 석간수 형태의 샘물을 이루다가 샘물 밖을 벗어나 물흐름을 시작하면 다시 돌과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모습을 감췄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길 수십 차례씩 반복하면서 앞서 말한 합류점(비로산장 상·하부)에 와서야 비로소 계곡수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이들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물은 보이지 않고 돌과 바위 밑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이른바 건천지역이 유난히 많다. 그러다가도 여름철 장마 기간이 돼 유수량이 많아지면 물길이 겉으로 드러나 크고 작은 폭포와 급류를 이루는 등 새하얀 물줄기가 온 골짜기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비로산장 아래부터 제법 계곡수 형태를 띠기 시작한 달래강 물길은 다시 세심정 부근서 문장대쪽 물줄기와 합쳐지면서 몸집을 불린 뒤 조선 세조대왕이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욕소를 지나 태평교 밑에서 사내저수지로 흘러든다.


사내저수지는 달래강이 속리산서 물머리를 일으킨 후 미처 산자락을 벗어나기 전에 만나는 첫 인공 구조물로서 인근 법주사를 비롯한 속리산면 일대의 주요 상수원 역할을 하고 있다.


보은군이 관리하는 사내저수지 상수원은 자연유하식 식수전용댐으로서 총 14만2,500톤의 저수용량을 갖고 있다. 보은군은 이곳 상수원을 통해 모두 485가구 1,759명의 주민들에게 하루 1,238톤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보은군은 지난 1988년부터 사내저수지를 포함한 속리산 자연환경보전지역내 계곡들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발원지에서 사내저수지까지
달래강은 처음엔 석간수 형태의 샘물을 이루다가 샘물을 떠나 물흐름을 시작하면 다시 돌과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모습을 감췄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길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비로산장과 세심정 부근에 와서야 비로소 계곡수 형태를 띤다. 세심정 부근서 문장대쪽 물줄기와 합쳐진 달래강 물길은 목욕소를 지나 태평교 밑에서 사내저수지(맨 오른쪽)로 흘러든다.

 

■속리천의 이름으로


사내저수지를 지난 물길은 법주사 바로 앞에서 동암쪽 계곡수와 만나면서 '속리천'이란 이름으로 사내리를 향해 물머리를 남쪽으로 튼다. 속리천은 달래강 물길이 발원지로부터 흘러내려 오면서 처음으로 얻게되는 '법정 하천(지방 2급 하천)으로서의 명칭'이다. 따라서 이곳부터는 계곡수 형태를 벗어나 비로소 '자연하천'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고 수량도 많아진다.


속리천이란 이름은 달래강이 하류로 내려가면서 구간에 따라 달리 불려지는 여러 이명(異名) 중의 하나로, 물길이 청원군 미원면 관내로 접어들어 '박대천'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 전까지의 명칭이다.

 

속리천이란 이름으로
사내저수지를 지난 물길은 법주사 바로 앞에서 동암쪽 계곡수와 만나면서 '속리천'이란 이름으로 사내리를 향해 물머리를 튼다.


법주사를 지난 물길은 다시 야영장 부근서 남산쪽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길과 합류한 후 사내리 집단시설지구(상가지역)와 법주사를 잇는 다리를 지나 하천내에 설치된 분수대서 잠시 몸을 풀어헤친 뒤 묘봉쪽서 내려온 물길과 합쳐져 정이품송을 향해 줄달음질 친다.


법주사에서 사내리 집단시설지구까지 흐르는 동안 달래강 물길은 처음으로 '인간냄새'를 맡으면서 물빛도 달라지고 수질도 드디어 'BOD'를 띠기 시작한다.


상가지역 건너편 사낙골을 지나 대형버스 주차장을 옆으로 끼고 산모퉁이를 도니 이내 '국민 소나무' 정이품송이 600여년의 전설을 머리에 인 채 물길을 반긴다.

 

하지만 우산을 펼쳐 놓은 듯 말끔하던 예전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태풍에 잘려져 나간 상처를 허공에 떠 받들고 누런 솔잎에다 흉칙한 철기둥을 버팀목 삼아 근근이 서 있는 게 여간 측은해 보이는 게 아니다.

 

현재의 병색도 병색이거니와 그 병색을 더욱 짙게 만든 것이 다름아닌  인근 하천의 습기, 즉 달래강(속리천) 물길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안쓰럽다.

 

바로 옆으로 도로 공사를 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뿌리를 흙으로 깊게 덮는 바람에 물빠짐이 불리해져 화근이 된 데다 인근 하천에서는 끊임없이 수분을 과잉공급해 물과는 상극인 소나무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유일한 '벼슬나무'이기에 수시로 링거주사를 맞는 호강(?)을 누리고는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병색이 짙어지는 것을 보면 그 명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달래나 보지…" 슬픈 남매 사연 담은 설화 대표적
물맛 좋아 달천(甘川), 수달 많이 살아 수달천(獺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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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달천)은 사연이 참 많다. 특히 명칭 유래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와 기록이 전한다.

 

우선 충주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진 달래강 설화부터 들어보자.


"먼 옛날 친남매가 길을 가다 소나기를 만났다. 때는 여름인지라 앞서가던 누나의 얇은 옷이 비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뒤따라가던 남동생은 어쩔 수 없이 누나의 드러난 몸을 보게�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성이 착했던 남동생은 자신이 엉뚱한 생각을 한 게 죄스러워 그만 돌로 아랫도리를 쳐 죽고 말았다.
한참 뒤 남동생이 따라 오지않는 것을 안 누나가 이상히 여겨 되돌아가보니 아뿔사, 동생이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지 않은가. 이를 본 누나는 그제서야 전후사정을 알아채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하는 말이 '차라리 달래나 보지, 말이나 해 보지…' 그랬다는 것이다."


이같은 슬픈 얘기가 전해지면서 그때부터 달래강이란 이름이 생겼고 누나가 동생을 끌어안고 통곡한 곳은 달래고개라 불렀다 한다.

 

다음은 달천에 관한 유래다.


때는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조선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게 됐는데 이 때 이여송이 명군의 장수로 들어오게 됐다. 이여송의 아버지(이성량)는 본래 조선사람이었으나 철령위로 도망가 살았기에 이여송 역시 근본이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한 채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중요한 혈을 끊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여송 휘하의 한 장수가 충주지역을 지나다 갈증이 나자 맑게 흐르는 강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달고 좋아 감천(甘川)이라 한 것이 훗날 달천으로 변했다고 한다.


물맛이 달고 맛있다는 뜻의 또다른 이명으로는 단냇물, 달냇물 등이 있으며, 충주 인근의 달천동,단월동,단호사와 같이 '달' 혹은 '단'자가 들어간  지명은 한자어에 상관없이 모두 '단 물맛'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동국여지승람에 달천(獺川)으로 표기돼 있는 점을 들어 본래 이 강에는 예부터 수달(獺)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수달내라는 뜻의 달천(獺川)으로 불리다가 후에 '달' 자가 채음돼 달래강(達川)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달래강 인근에서는 조선초부터 수달피가 진상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달천과 관련된 다른 기록으로는 이중한의 택리지에 '속리산 정상에서 동으로는 낙동강, 서로는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며 북으로는 충주의 달천(達川)이 되어 한강으로 흘러든다'고 적혀있다. 또 조선시대 동람도에는 충주 서쪽으로 흐르는 강을 산천,덕천,달천(獺川)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어 당시에도 달천이란 이름과 함께 여러 명칭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덕을 입은 강, 즉 덕천(德川)이란 이명도 전한다. 조선시대 벌미란 마을의 한 사내가 자신의 집으로 탁발 온 스님의 권유에 따라 달천에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병자(病者)가 다리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되자 그 병자를 업고왔던 노인이 '과연 덕을 입은 강이로구나(於是 彼德之川也)' 한 것이 전해져 덕천이란 이름이 생겼다 한다.

 

달래강은 지금도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최상류인 보은 속리산지역에선 속리천, 청원 금관~어암리 부근에선 박대천, 괴산 청천부근에선 청천강 혹은 가무내(현천), 괴산읍 부근에선 괴강(槐江) 등으로 불리다가 충주시 달천동에 이르러서야 달래강이 된다.


속리천은 발원지인 속리산에서 이름을 따왔고 박대천은 인근 어암리(충북 청원군 미원면)의 박대소(沼)에서 유래됐으며, 청천강은 괴산 청천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청천지역, 특히 화양동 부근에서 불리는 가무내는 '검은 내(현천.玄川)'란 뜻으로 인근 강바닥이 검은 바위와 돌로 돼 있어 물이 검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괴강은 괴산지역 주민들이 특히 달래강을 대신해 부르는 이름으로 괴산(槐山)의 '괴(槐)' 자를 따왔다.

 

 

�달래강의 다른 이름 '박대천'
달래강은 지금도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최상류인 속리산 부근에선 속리천, 청원 미원 부근에선 박대천, 괴산 청천부근에선 청천강 혹은 가무내(현천), 괴산읍 부근에선 괴강(槐江) 등으로 불린다.

< 청천천의 겨울>

 

 <가무내(현천)의 봄 전경>

 

<속리천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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