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전하는 말 서른여덟번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우리 민족은 예부터 '소나무 아래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고 할 만큼 소나무와 매우 가깝게 지내왔다.
그래서 우리 문화를 소위 소나무 문화라고도 한다.
소나무는 항상 푸르름을 잃지 않는 데다 줄기가 잘려져 나가도 옆에 잔가지를 뻗지 않는 특성 때문에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이나 수호신으로서, 또는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의 상징이자 부부간의 백년해로를 뜻하는 음양수(陰陽樹)로서, 혹은 풍류를 대변하는 매개자로서 세세천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뿌리깊이 내려왔다.
소나무의 어원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솔(수리>술>솔)과 나무가 합쳐진 말로서 '나무 중의 으뜸'을 의미한다.
한자어의 松 역시 木과 公이 합쳐져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소나무를 나무 중의 으뜸으로 여긴 사실은 실제 기록으로도 전해진다.
즉, 고려 현종은 즉위 4년(1013년)에 '때를 어겨 나무를 벤다는 것은 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모든 나무의 장인데 근래 백성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소나무를 많이 벤다하니 차후부터는 이유 없이 소나무를 베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나라가 직접 나서 소나무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신라시대 때부터이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금산(禁山)과 봉산(封山) 정책으로 소나무를 적극 보호했다.
소나무가 우리 나라에 특히 많은 이유는 소나무가 잘 자라는 화강암과 화강편마암 지역이 한반도 내에 폭넓게 분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나무도 해를 거듭할수록 사라져 가고 있다.
소나무가 사라지는 가장 큰 요인은 솔잎혹파리에 이은 재선충병과 피목가지마름 등 각종 병해충의 확산과 대기오염의 심화이다.
또한 예전처럼 적극적인 인공식재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낙엽을 채취하지 않는데 따른 토양의 비옥화로 점차 활엽수와의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없앤다 하여 산허리를 싹둑 잘라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리기다소나무에 솔잎혹파리를 잔뜩 묻혀 들여와 온 산야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억울한 판인데, 이제는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병에 피목가지마름병이라는 해괴망측한 병해충까지 들끓고 그것도 모자라 대기오염은 갈수록 태산이니 소나무로선 최대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요즘엔 산에서 야생 소나무를 몰래 캐다 파는 신종 도둑들이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친다하니 기가 찰 노릇이지 않은가..
지구 온난화 혹은 이로 인한 한반도 기후의 변화(아열대화)란 말만 나오면 아예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는 백년 안에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못을 박아대기까지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산허리 중턱이나 마을 어귀 한자락에 자리잡고 서 있는 멋진 소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활엽수와의 살아남기 경쟁 등 앞서 얘기한 여러 이유로 점점 더 살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신세이긴 하나 여전히 그 꿋꿋함을 잃지 않고 '한반도의 풍류와 기개'를 대변하고 있는 모습에서 가슴 속이 뭉클할 정도로 장한 느낌을 받는다.
제 멋대로 뻗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구석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자연스런 가지뼏음이 여간 멋진 게 아니다.
그 어느 분재 기술자가 저렇게 멋들어진 아름다움을 창출할 수 있겠는가.
어떨 땐 그런 모습에 매료돼 차를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한참을 바라다보곤 한다.
우리나라를 더욱 우리나라답게 하고 한국인을 더욱 한국인스럽게 만들어준 소나무.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한국화의 인상이 전혀 달라졌을 것은 분명한 일이고 아마도 추사의 세한도도 탄생하지 않았거나 그림 속 화재가 동구 밖에 홀로 서 있는 어느 느티나무로 대치되지 않았을까?
물론 애국가 속의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없었을 테고...
유구한 역사를 지켜 오면서 한국인의 가슴에 ‘바람서리 불변하는 기상’을 상징적으로 간직하게 해 온 소나무.
그 소나무가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그깟 샛바람에 떨어서야 되겠느냐며 우리들로 하여금 자유의 마당으로 내달리게 하던 그 소나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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