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상자료가 무용지물이 된 세상
5년전 태평양 마셜제도 상공서 직경 10mm짜리 빗방울이 관측된 바 있다. 당시 세계언론은 사상 최대의 자이언트 빗방울이 발견됐다고 떠들어댔다.
혹자는 10mm짜리 빗방울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했을 지 모르나 그 이전까지 관찰된 사상 최대 빗방울이 직경 8mm였다는 점과 보통 빗방울의 지름이 1~2mm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분명 예삿일은 아니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빗방울 크기는 1기압 상온서 직경 6mm일 때가 한계란다. 직경 6mm가 넘으면 표면장력이 견디지 못해 부서지거나 구형이 아닌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아주 희귀한 흔적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의 공룡화석 산지와 진주시 진성면 조류화석 산지에 있는 1억년전의 빗방울 자국이 그것으로 가장 큰 것의 직경이 11㎜이다. 특히 이 빗방울 자국은 바깥 윤곽이 거의 원에 가깝다는 점에서 당시 흔적이 생길 때의 날씨가 수직으로 비가 쏟아진, 요즘으로 치면 바람없는 날 국지성 호우가 들이붓 듯 엄청난 빗줄기가 쏟아졌음을 짐작케 한다.
마셜제도 상공서 관찰된 자이언트 빗방울에 비하면 크기는 불과 1mm 차이가 나지만 내용에 있어선 비길 바가 못된다. 왜냐면 '마셜제도의 빗방울'은 지상이 아닌 구름속에 머물고 있던 빗방울이었지 지상에 떨어진 빗방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은 떨어지면서 작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비록 화석상의 흔적이긴 하지만 당시 쏟아졌던 '한반도 남쪽의 빗방울'이 이 지구상에 떨어진 사상 최대의 빗방울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이러한 생각 이면엔 1억년이란 시간적 격차와 그간에 있었을 기후 및 대기, 환경 변화를 무시한 중대한 착오가 있지만 말이다.
해서 말인데 아주 먼 옛날의 한반도 기후와 환경은 오늘날과 크게 달랐던 것 같다. 앞의 화석 산지가 이미 밝혀줬 듯 이 땅의 주인이 공룡인 적도 있었고 어느 시기엔 코뿔소,코끼리,하이에나,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떼지어 사는 등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기온과 그에 따른 자연환경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뿔소 등의 뼈화석은 대청호변의 두루봉동굴 유적서 실제 출토된 바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국가들이 축적해 온 과거 기상자료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더이상 쓸모없게 됐다고 한다. 유엔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농업과 수력발전, 태양열 등의 분야에서 사업전략을 세우는데 지금까지는 과거의 기상자료가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강수량과 온도에 대한 예상치가 더 중요해 졌다"면서 "과거는 더이상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과거의 자료는 과거의 자료일 뿐 변화된 기상현상을 더이상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기상패턴이 얼마나 달라졌으면 과거의 기상자료가 무용지물이 됐겠는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현상을 보고 날씨를 점치는 관천망기(觀天望氣)가 제법 족집게 같은 기상예보 역할을 했는데 그 마저도 현실에 맞지 않거나 틀리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말하면 뭣하겠는가. 제비가 낮게 날면 비 올 징조라 했는데 이젠 날씨를 점치기는 커녕 제비 자체를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이 됐다. 아침에 거미줄이 보이면 맑아지고 개미가 장을 치면 비가 온다한 것 또한 비슷한 상황이 됐다.
청개구리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는 핀잔을 듣게 된 오늘날, 농부들이 애써 기록해 온 영농일기까지도 낙서장이 될 판이니 어찌 슬픈 변화가 아니겠는가. 무릎이 저릴 때마다 서둘러 비설겆이 하던 옛 어른들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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