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았던 ‘피’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피라는 야생풀이 있다. 벼와 생김새가 흡사하나 생명력과 번식력,생장력 면에서는 벼를 훨씬 능가하는 근성있는 풀이다. 얼마나 근성있는 풀인가는 논밭을 한 해, 아니 단 한 철만 묵혀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온통 피논 피밭으로 변한다. 한 마디로 피투성이가 된다.
해서 농부들은 피라면 넌덜머리를 낸다. 작물 특히 벼의 생육을 저해하는 등 농사에 해가 많아서다. 오죽하면 피사리란 농작업까지 생겼겠는가. 피사리는 주로 품앗이를 통해 논의 피를 ‘작정하고 뽑아내던’ 전통 농작업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농촌풍경 중의 하나였다.
피사리는 한때 우리나라 전시·동원행정의 상징이기도 했다. 윗사람 말 한마디가 그대로 정책결정에 반영되던 뼈아픈 시절의 뼈아픈 시달림이 바로 피사리였다. 특히 도로변의 논을 경작하던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피사리를 해야 했다. 공무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행여 윗사람이 차를 타고 지나치다가 “저 논 꼴이 왜 저 모양이야”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했다간 그 날짜로 모가지가 댕강 했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주 다급할 땐 면(面) 직원 모두 동원돼 허겁지겁 피 이삭만 잘라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피가 본래부터 천덕꾸러기는 아니었다. 구황작물로서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원산지인 인도로부터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전래됐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재배돼 왔다. 그것도 한반도서 재배된 최초의 작물로서 말이다.(청동기 유적인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의 피 관련 유물이 이를 입증함)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오곡의 하나로 불릴 만큼 주요 작물로 재배돼 온 피는 농업발전,경제성장과 더불어 사람들의 배가 불러지면서 서서히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까지도 근근이 명맥이 유지됐으나 결국 1965년 이후 불어닥친 통일벼 증산 열풍으로 경작지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지금은 아예 곡물로서 취급도 못 받는 버림 받은 풀이 돼버렸다.
‘잡곡피(재배피)’는 본디 그의 조상격인 야생 돌피나 물피,강피와 모양·생태는 비슷하나 이삭이 크고 낟알도 굵은 등 유전자원적 가치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작물로서 퇴출 당한 후부터는 여느 피처럼 쓰잘 데 없는 풀로 전락했다. 졸지에 뒤웅박 팔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잡곡피를 신소득 작목으로 새롭게 육성하려는 노력이 충북도농업기술원(이하 충북농기원)에 의해 시도되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충북농기원은 지난 3년간의 연구 끝에 잡곡피를 기계로 심어 재배하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충북농기원은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피 유전자원 21종을 분양받아 수차례의 이앙시험을 한 결과 최근 10a(300평)당 207kg의 피를 수확했다. 벼 수확량에 비하면 그리 많진 않지만 다른 잡곡에 비하면 결코 적은 소출이 아니다. 게다가 밥을 지으면 부드럽고 구수한 데다 단백질,비타민,칼슘,인,철분,식이섬유가 풍부해 웰빙식으로도 그만이다.
또 재배가 쉽고 생육기간도 짧아 3개월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척박하고 염분이 많은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생육에 필요한 물 요구량도 적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해서 충북농기원은 잡곡피를 지역특화작목으로 육성하는 한편 기능성 식품도 개발해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란다. 반가운 일이다.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 충북농기원에 박수를 보낸다.
버림받은 풀에서 신소득 작목으로 새롭게 태어난 피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식탁에 올라올 지 자못 궁금하다. 피란 식물을 모르는 신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도 궁금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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