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이면 생각나는 'DDT와 말벌의 아픈 추억'
디디티(DDT)란 살충제가 있었다. 지금은 사용이 금지됐지만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정도로 아주 흔하게 사용됐던 농약이다. 살충력이 얼마나 뛰어났던 지 사람들은 아예 만능으로 여겼다. 해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거의 모든 가정엔 회푸대 종이로 만든 디디티 봉지가 상비약처럼 구비돼 있었다.
모기가 들끓는 시궁창에도, 쥐가 다니는 길목에도, 집앞 남새밭에도, 당시 소득작목 1위였던 담배밭 이랑에도 곳곳이 밀가루처럼 생긴 하얀 디디티 가루가 늘상 뿌려져 있었다. 요즘 같은 가을철엔 더욱더 요긴하게 쓰여졌다. 다름 아닌 벌을 퇴치(예전엔 퇴치한다기 보다는 벌의 애벌레를 얻기 위해 벌집을 따거나 벌굴을 파헤치는 일이 많았음) 하는 데도 디디티만한 게 없었다. 행여 집 근처와 논·밭두렁, 산소 근처에 벌집 혹은 벌굴이 있으면 영락없이 디디티를 뿌려댔다. 신기한 것은 이 가루를 뿌리기만 하면 벌레건 벌이건 맥을 못추고 그 자리서 죽거나 줄행랑 쳤다.
어디 그 뿐이랴. 어린 애들이 있는 집에서는 소위 ‘이 주머니’란 작은 주머니에 디디티를 넣어 사타구니며 겨드랑에 달아주고는 그것도 모자라 학교 갈때마다 불러 세워놓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얗게 뿌려주기까지 했다. 그때 그시절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고향의 냄새, 추억의 냄새 하면 곧잘 디디티의 독특한 냄새를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필자도 어렸을 적엔, 부끄럽지만, 디디티의 위력을 맹신했다가 손가락만한 장수말벌에게 쏘여 까무러쳤을 정도로 된통 당한 적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겁을 내는 친구들을 꼬드겨 감히 장수말벌 굴을 파헤치려 앞장섰던 것이다. 집에서 몰래 가져간 군용 우의를 걸친 다음 손에 디디티봉지를 들고 말벌이 수없이 드나드는 땅굴을 향해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이래 봤자 벌굴입구에 디디티를 뿌리는 일이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살금살금 까치발을 하고 벌굴앞에 다다랐을 때 별안간 목덜미가 두번 따끔했다.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들고간 디디티를 뿌려야겠다는 마음에 봉지에 손을 넣는 순간 또 한번 뒤통수가 따끔했다. 그러곤 기억이 사라졌다. 얼마가 지났는지 깨어나보니 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무모한 짓이었는데 그때 그런 호기를 부리도록 한 것이 다름 아닌 디디티의 위력이었다.
디디티는 말라리아 퇴치, 해충 구제와 같이 인류에게 공헌한 바도 많고 그것의 살충능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에게 노벨상도 안겨준 놀라운 발명품이지만, 반감기가 2~15년에 이를 만큼 분해가 잘 안되는 오염물질로서 생물농축 과정을 통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인간에게도 암을 유발하는 등 위해성이 커 각 국가들이 사용을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71년 사용이 금지됐으나 사용금지 3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체인구의 20% 이상이 체내에서 디디티 성분이 검출될 만큼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다.
바야흐로 벌초·성묘의 계절을 맞아 벌에 쏘여 숨지거나 병원신세를 지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살충제 사용 이후 야생벌의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인명피해 사례는 되레 많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생활양식, 특히 음식문화가 바뀌면서 현대인의 체질이 점차 산성화 돼 벌로 인한 피해가 늘었다고 한다. 과거 알칼리 체질일 때에는 벌에 쏘여도 독(산성-pH 5.2~3.5)이 중화돼 죽거나 하는 등의 큰 피해가 없었는데 체질이 산성화 되면서 산성의 독성분에 의한 과민 반응이 더욱 커져졌다는 것이다.
‘벌의 계절’이면 생각나는 디디티와 말벌의 추억. 생각만 해도 똥끝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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