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품송과 나랏일
최근 정이품송의 가지가 또 부러진 것과 관련해 '이상한 말'이 나돌고 있다. 지난 1993년 강풍으로 서쪽 가지 1개가 부러진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엔 폭설로, 2007년엔 강풍으로 서북쪽 가지가 잇따라 부러진 바 있는데 매번 가지가 부러지던 해엔 나라 안에 '큰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 번에도 뭔가 심상찮은 조짐이란 것이다.
풍문의 시발점은 17년 전인 1993년 2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속리산 지역을 강타한 초속 40m 가량의 강풍과 함께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 정이품송의 서쪽 가지 1개가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날 부러진 가지는 직경 25㎝, 길이 5~6m 가량으로 서쪽으로 난 가지 중 가장 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좌우대칭이던 정이품송 특유의 자태가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600여 년을 살아온 정이품송이 처음으로 가지가 부러지던 그 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기 바로 3일 전이었다. 가지가 부러질 당시엔 아무 말도 떠돌지 않았으나 11년 뒤인 2004년 3월 5~6일 대폭설 때 두 번째 가지부러짐이 발생하면서 나랏일과 관련된 좋지 않은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폭설은 살인적이었다. 3월 5일 하루 적설량만도 청주 32.0 cm, 보은 39.9 cm를 기록하는 등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3월에 내린 하루 적설량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 폭설로 인해 정이품송은 두 번째로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 이 번에도 서북쪽으로 난 가지가 피해를 입었다. 당시 정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건으로 나라 안이 온통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세 번째 가지부러짐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초기 징후가 나타나던 2007년 발생했는데 그 해는 우리나라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해였다.
그 해 3월 28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순간 최대풍속 26.7m/sec의 강한 돌풍이 불어 정이품송 가지 1개가 부러졌다. 당시에도 역시 서북쪽으로 난 가지(직경 약 30cm, 길이 4∼5m)가 부러졌는데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적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 6일 밤 또 다시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몰아쳐 서북쪽 가지 1개(직경 약 20cm, 길이 약 5m)가 부러졌으니 사람들의 우려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당시 취재 현장에서 들은 주민들의 우려는 한결같이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려고 자꾸만 정이품송 가지가 부러지느냐"였다.
다소 견강부회격인 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정이품송을 지역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으로 여겨오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이품송의 건강은 곧 지역의 건재함, 나아가 나라의 안녕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을 수 있기에 그저 '헛우려'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정이품송은 수령 600년이 지난 노거수 중의 상노거수다. 사람으로 치자면 평균수명을 훨씬 넘긴 시한부 삶이다. 언제 어느 때 푸르름을 잃을 지 아무도 모른다. 부러진 가지의 대부분이 속이 거의 썩어 비어 있는 것도 노쇠한 정이품송의 현 상태를 말해 준다.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고위 품계(정이품)를 받아 그것을 이름으로 삼고 또 부인(정부인송)까지 거느린 유별난 명품 소나무가 이젠 '반쪽 모습'을 한 채 지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엉뚱한 근심거리가 된 것이다.
혹자는 매번 서북쪽 가지만 부러지는 것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나랏님(?)이 있는 쪽이 그 쪽이기에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그 쪽 가지만 부러진다는 것이다. 억측치고는 모골이 송연한 억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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