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신선이 살던 옥화9경 곳곳에 펼쳐져”
선비들 즐겨 찾던 옥화대 옛 정취 솔~솔
‘죽은 하천’으로 변한 박대소 아쉬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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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신선이 살던 곳 옥화9경. 청주-보은간 19번 국도가 지나는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 삼거리서 왼쪽으로 박대천(달래강)을 끼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이 지역 안내표지판의 대표적인 수식어다.


달래강 삼백리 물길 중 유독 이 지역서 용과 신선이 강조되고 있음은 이곳의 경치가 예부터 예사롭지 않았음을 전설로 말해준다. 국내 절경 치고 용과 신선 이야기를 품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2경인 용소에서 그 옛날 승천하다 지나가던 여인이 보는 바람에 중도에 떨어져 이무기됐다는 ‘슬픈 용’의 전설을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3경인 천경대를 향하는데 물가에서 청소년 20여명이 기타 치며 흥겹게 놀고 있다. 1970~80년대나 볼 수 있었던 낯익은 광경이어서 눈길이 절로 머문다.

 

예년에 없던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때 이르게 찾아온 불볕더위로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데 그늘 하나 없이 달랑 돗자리 몇 개 깔고 앉아 노는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럽게도 보였지만 자연과 어울어진 그들에게서 멋진 정열을 느낄 수 있었다.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마을 안쪽 강변에 있는 천경대는 수직으로 이뤄진 절벽과 함께 달빛이 맑은 물에 투영돼 마치 하늘을 비추는 거울같다 하여  이름지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절벽앞 하천 수심이 얕아져 예전 풍취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옥화3경 ‘천경대’

 

마른장마로 장마철 때아닌 가뭄 현상이 이어지면서 달래강도 예년에 없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7월 둘째 주말을 맞아 강가를 찾은 피서객들이 강물엔 들어가지 않고 물가서 놀고 있다.


천경대서 하류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4경인 옥화대가 지척에 있다. 옥화대는 하천변 들판에 절벽과 고목이 어울어진 동산이 마치 옥처럼 떨어져 있다 해서 이름지어졌는데 이곳을 즐겨찾던 옛 선비들이 옥화9경 중 가장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았던 곳이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인 석애 이규소 등 유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키 위해 추월정과 만경정, 세심정 등 세 정자를 지어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옥화대 정상부의 세심정에 올라 앉으니 주변 고목이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제멋대로 휘어진 아름드리 소나무와 느티나무, 참나무가 옛 향기 절로 피어나는 정자와 어울어진 게 어찌나 멋드러진 지 금방이라도 옛날 선비들의 시 읊던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한참을 그렇게 옛 향기에 취해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꾀꼬리가 날카로운 경계음으로 제 존재를 알린다. 유난히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니 근처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빨리 자기들 행동권역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인지라 더 지체할 수가 없어 발길을 막 돌리려는데 이번엔 옆에 있던 소나무 둥치 구멍서 느닷없이 솔부엉이가 튀어나온다. 잠을 자다가 이웃사촌 꾀꼬리 부부가 하도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듯 하다.

 

생태계가 아직은 살아있음이다. 생물들이 살아갈 적당한 환경과 공간만 보전된다면 그들 역시 언제까지라도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옥화대(옥화4경)의 세심정


반가운 손님을 뒤로 하고 발길은 다시 5경인 금봉을 향한다. 이곳은 이미 지난 3~4월에 세 차례 답사했던 곳으로 우거진 숲과 급경사, 높은 절벽 때문에 사진촬영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지난번 마지막 촬영 때 70~80도 절벽 위의 참나무에 간신히 올라앉아 수백 미터 아래로 굽이치는 물길을 촬영하다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으로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 했던 생각에 아직도 등줄기가 찌릿하다.    

 

비단결 같은 봉우리란 뜻의 금봉(錦峰)은 달래강서 보기 드물게 물길이 오메가(Ω) 형으로 굽이치는 곳으로 커다란 바위 동산을 하천물이 한바탕 휘돌아 나가는 하천가에 깨끗하고 고운 백사장이 형성돼 있어 많은 이들이 찾던 명소다.

 

길 입구가 있는 미원면 월룡리서 금봉을 바라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한 순간 2m 가량의 좁은 능선에서 동시에 양쪽 강물이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오메가 형태의 목 부분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뤄진 이곳 목 부분을 아래 위 동시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나타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워낙 절벽이 높아 포기하고 말았다.

 

과거 언젠가는 서울의 모 기업서 이곳 목부분에 터널을 뚫어 거기서 생기는 낙차를 이용, 소형 발전소를 건설하려 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인할 길이 없다. 금강 유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전북 무주군 무주읍 방우리에 있는 오메가 형태의 물줄기에 터널을 뚫어 소수력발전소를 건설한 바 있다.

 금봉(옥화5경)에서 바라본 박대천(달래강)

 비단결 같은 봉우리란 뜻을 지닌 금봉(錦峰)은 달래강서 보기 드물게 물길이 오메가(Ω) 형으로 굽이치는 곳으로 커다란 바위 동산을 하천물이 한바탕 휘돌아 나가는 하천가에 고운 백사장이 형성돼 있어 많은 이들이 찾던 명소다


금봉을 돌면서 호쾌하게 몸부림 친 물줄기는 깊은 산골짜기를 빠져나오면서 곧바로 옥화6경인 금관숲(미원면 금관리)과 만난다. 금관숲은 청주 등 인근지역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야영장 형태의 자연숲이다. 약 7,000㎡의 넓은 숲에 20m가 넘는 굴참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한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금관숲에서 다시 미원면 계원리를 향해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 산자락으로 높이 6~10m, 넓이 약 50m 가량 되는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그 앞쪽에 7경인 가마소뿔이 있다. 이 가마소뿔은 독특한 이름 만큼이나 애잔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막 혼례를 치른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는데 신부의 가마가 흔들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를 애통해 하던 신랑도 함께 뛰어 들어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어 나타나는 8경인 신선봉은 미원면 계원리서 바라보이는 강건너 신선봉의 경치를 말한다. 해발 630m인 이 봉우리는 먼 옛날 신선이 놀았다 하여 신선봉으로 불려지고 있다.

 

마지막 옥화9경인 박대소는 이 지역(청원 미원)의 달래강 이름인 박대천을 낳은 곳으로, 계원리서 쇠바우(어암1리) 쪽을 향해 물길을 따라내려 가다보면 깊은 계곡 안에 커다란 소(沼)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박대소다. 푸른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깊은 못이 있어 박대소라 일컬어지는데 이곳 역시 하천 바닥이 많이 메워져 예전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 소는 특히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 있어 불법어로꾼들이 자주 찾는 바람에 오래전부터 물고기와 다슬기가 자취를 감춘 ‘죽은 하천’으로 알려져 있다.

박대천 이름 낳은 박대소
옥화9경의 마지막 명소인 박대소는 청원 미원 지역의 달래강 이름인 박대천을 낳은 곳으로, 푸른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깊은 못이 있어 박대소라 일컬어지는데 이곳 역시 하천바닥이 많이 메워져 예전 느낌은 나지 않는다.
 

여울로 변한 뱃길 세월무상 절로 느껴져
80년 보은 대홍수로 마을마다 아픈 상처 
청원관내 접어들면서 박대천으로 불려져

 

상전변성해(桑田變成海), 즉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속리천(달래강)을 따라 보은군 산외면 이식리로 접어든 나그네는 세월의 무상함에 발길을 멈춘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배들이 쉬어갔다는 주식포(舟息浦)는 지금의 지명인 이식리(梨息里)로 변했고 마을앞 강물은 무릎도 채 안차는 얕은 여울로 변했으니 말 그대로 창해상전(滄海桑田)이요 능곡지변(陵谷之變: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뀜)임을 실감케 한다.


이식리에서 잠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사람의 인생살이와 강의 생로병사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잠겨있다 다시 이식2교를 건넌다.

 

물길은 이곳서 산외면과 내북면 경계를 지나 오른쪽 산자락을 끼고 또 한바탕 커다란 S자형을 그리며 호기를 부리는데 그 중간에 만나는 곳이 호룡소(虎龍沼)다. 산외면 이식리서 내북면 봉황리를 향해 이어진 바위산 자락이 마치 호랑이가 누워 눈을 감고 있고 능선에서는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그 밑을 감도는 물을 호룡소(虎龍沼)라 불렀는데 지금은 흔히 호롱소라 부르고 있다.

 

호롱소에서 호랑이 머리격인 바위 절벽 위 산봉우리는 전국에서 제일 가는 명당으로 알려진 곳인데 지금은 문화 류씨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호롱소 부근은 그 이름 만큼이나 경치 또한 절경을 이뤄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명당도, 명소도 이젠 모두 예전 일이 될 판이니 이곳서도 세월무상을 또 다시 느끼게 한다.

 

최근 진행중인 내북-운암간 도로 공사로 곧 터널이 뚫릴 예정이어서 주변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터널과 교량이 지나는 곳이 하필이면 호랑이 머리부분과 호롱소 주변이어서 인근 주민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위기의 호룡소
호랑이와 용의 형상을 한 바위산 밑으로 강물이 휘돈다 하여 이름 붙여진 호룡소는 인근 도로공사로 인해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위기에 놓여 있다. 한 주민이 호룡소의 내력을 설명하며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강물마저 호롱소의 슬픈 사연을 아는 지 가냘픈 몸짓으로 호랑이 꼬리 부분의 산자락을 살짝 적시며 모래벌을 향한다.

 

봉황리의 중심마을인 모래벌은 이곳의 지형상 속리천이 휘돌아 흐르면서 곳곳에 모래톱을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수초로 가득 차 예전 모습과는 딴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 앞의 청벽산이 봉황리란 아름다운 지명과 유구한 마을 역사를 전하며 마을 상징으로 우뚝 솟아있다. 봉황리는 이곳 청벽산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봉황 한 쌍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


하천을 끼고 있는 속리천 유역의 마을 대부분이 지난 1980년도 보은 대홍수때 입은 수해로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듯이 봉황리 모래벌 역시 당시 입은 수해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으로 변해 집을 다시 짓고 제방도 높이 쌓는 큰 변화를 겪었다. 현재 마을앞을 지키고 서 있는 느티나무도 당시 제방을 높이면서 밑둥치가 2m 이상 덮여져 높이가 오히려 줄어든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봉황리 모래벌 앞에는 봉황교가 세워져 있고 이 다리 남쪽으로는 달래강의 1차 지류(총 17개) 중 처음으로 만나는 흑천이 흘러든다.

 

흑천은 한남금북정맥이 지나는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서 시작해 염둔·화전리를 거쳐 창리에서 동산·도원리쪽 물길과 합쳐진 후 봉황교 부근서 속리천과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흑천 합류부 지점 도로변엔 '속리산 24km'란 표지판이 서있어 이곳이 달래강 3백리 물길을 따라 발원지로부터 하류쪽으로 대략 5분의 1가량 지난 지점임을 알려주고 있다.


모래벌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서 마주치는 곳이 청주-보은간 19번 국도가 지나는 청벽산 절벽이다. 이 청벽산 절벽에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특이한 자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봉황리 마을의 숨겨진 자랑거리인 '홍두깨물'이다. 이 홍두깨물은 비가 많이 올 때만 청벽산 절벽의 중간 부분 바위틈에서 약 40m 아래로 쏟아지는 장대한 폭포로서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아주 희귀한 현상이다.

 

봉황리의 상징 청벽산
보은군 내북면 봉황리는 마을앞 청벽산에 봉황 한 쌍이 살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졌는데 이곳 중턱에는 비가 많이 올때만 나타나는 '홍두깨물 현상'이 마을의 자랑거리로 전해진다
.

 

봉황리 모래벌앞 느티나무는 지난 1980년 보은 대홍수 이후 제방을 높이면서 밑둥치가 2m 이상 파묻힌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청벽산 아래 봉황보에 잠시 머물렀던 물길은 보를 넘으면서 보은군 경계를 벗어나 이내 청원군 관내로 접어드는데 바로 이때부터 속리천이란 이름 대신 '박대천'이란 새 이름으로 흐르게 된다.

 

박대천은 청원군 미원면 어암리에 있는 박대소(沼)의 이름을 딴 것으로 달래강이 괴산군 청천지역에서 청천천이란 이명을 갖기 전까지 불려지게 된다.


이름이 바뀌어서일까. 청원군 미원면 운암1리서 박대천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달래강은 물흐름이 훨씬 느긋해졌다.

 

들판 가운데를 흐르는 물길을 따라 인풍정교를 지나 운암교에 올라 서니 왼쪽으로 또 하나의 물길이 합류하고 있다. 두번째 1차 지류인 감천이다. 감천은 청주시 상당산 부근서 시작해 낭성면 지역서 인경천(2차 지류)과 만난 후 다시 미원면 관내를 흐르는 미원천(2차 지류)과 몸을 섞어 운암교 아래서 박대천으로 흘러든다.

 

봉황보

 

인풍정교서 바라본 박대천

 
이곳 감천 합류지점부터는 옛날 용과 신선이 살았다는 옥화9경 지역이다. 옥화9경은 달래강 본류가 통과하는 4개 시.군(보은군, 청원군, 괴산군, 충주시 등으로 지류만 지나는 음성군은 제외) 가운데 가장 짧은 구간을 지나는 청원군 관내 9곳의 절경을 일컫는 바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청원군이 '청원 관광의 간판'으로 내세우는 명소다.


그 중 옥화 1경은 달래강 본류가 아닌 감천(청주-보은간 19번 국도변 운암리) 하류에 있는 청석굴로 이곳에서는 구석기인들의 생활흔적인 찍개와 볼록날, 긁개 등이 발견된 바 있으며 굴에서는 용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감천이 합류하는 운암교에서 하류로 약 1km 가량을 내려가면 옥화2경인 용소(龍沼)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에 있는 용소는 달래강 수계 중 수심이 가장 깊어 절벽위서 내려다 보면 바닥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물빛이 검푸른 게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이 용소에는 먼 옛날 용이 살았는데 그 용이 승천할 때 지나가던 여인네가 보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그대로 떨어져 이무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절벽 면에는 용이 승천할 당시 새겨진 듯한 용의 형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달래강의 명소 '용소(옥화2경)'
용소에는 먼 옛날 이곳에 살던 용이 승천할 때 지나가던 여인네가 보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그대로 떨어져 이무기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절벽 면에는 용이 승천할 당시 새겨진 듯한 용의 형상이 뚜렷이 남아 있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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