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산나물철을 맞아 온 산이 산나물 밭이다.
이웃집 할머니 봄나물 캐러 들로 나서던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엔 산으로 향한다. 세월 참 빠르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고 봄나물 나왔다 하니까 산나물이다.
산나물은 종류가 많다. 대표격인 취나물만도 곰취, 참취, 수리취, 분취, 미역취, 개미취, 좀개미취, 벌개미취, 바위취, 병풍취 등 10가지가 넘고 고사리, 고비, 원추리, 참나물, 어수리, 솜대, 모싯대, 박쥐나물, 어리병풀, 우산나물, 물레나물, 남산제비꽃 등 그 수가 엄청나다.
전해오는 말에 소가 먹을 수 있는 건 사람이 먹어도 된다고, 적당히 데쳐 우려내면 웬만한 새싹은 나물이 된다.
그러나 이 철에 나는 새싹이라고 무턱대고 먹어선 크게 후회한다. 맹독성 식물 때문이다. 초오류(草烏類)인 투구꽃, 놋젓가락나물, 그늘돌쩌귀 등과 앉은부채류가 바로 요주의 식물이다.
특히 초오류는 옛날 사약재료로 이용됐을 만큼 독성이 무척 강하다.
또 앉은부채나 애기앉은부채는 잎이 배추처럼 소담해 먹는 나물로 오인하기 쉬우나 먹는 즉시 설사한다. 어찌나 설사가 심한지 이것에 한 번 당했던 사람들은 '호랑이배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얘기다.
비온뒤 고사리 돋듯 한다더니 최근 내린 비로 온 산에 나물이 지천하면서 가는 곳마다 사람 또한 천지다.
웰빙 붐 타고 부쩍 늘어난 산나물애호가들이 너도 나도 산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산채의 독특한 맛과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란다.
많은 세시풍속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으나 산나물 뜯기만큼은 오히려 성행하고 있다. 아니 성행 정도가 아니라 극성이다.
산나물 뜯으러 가는데 심지어 관광차 빌리고 인터넷으로 회원 모집해 원정까지 나서니 극성 아닌가.
산나물 뜯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폐해 또한 속출하고 있다. 산과 생태계가 된통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게 중에는 아주 작정한 듯 되나가나 싹쓸이 해가는 이들도 있다. 씨를 지울 태세다. 먹성 좋은 멧돼지떼가 며칠 굶은 후 지나간 것처럼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
두릅나무와 엄나무는 성한 가지가 없다. 해도 너무 한다.
과욕의 대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여 희귀한 것이 눈에 띄면 영락없이 뽑아제친다.
깽깽이풀, 복수초, 노루귀 같이 희소성 높은 야생화는 물론 오갈피·느릅·헛개나무 등 몸에 좋다는 나무와 분재용 나무가 주 표적이다.
이쯤하면 산도둑이요 절도다. 거기다 산불까지 종종 내니 정도가 극에 달한다. 산으로서는 최악의 계절이다.
상황이 이러니 당국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다. 산림청이 칼을 빼 들었다.
산림청은 최근 산나물과 산약초를 불법채취하다 적발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현행법에는 임산물을 절취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중벌이다.
이젠 관계기관의 허가 내지 산주인의 동의를 얻어야만 산나물을 뜯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중죄인 취급 받는다.
이에대한 반발도 많다.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풍습을 법으로 막는다니 너무하단 얘기다. 게다가 각 산마다 누가 주인인지를 알아 동의 얻고, 매번 행정관서 찾아 허가받아야 한다니 말이 되느냐며 볼멘소리까지 한다.
하지만 자초한 화다. 자연이 베푼 선물을 자기만 독차지하려는 얌체족들의 과욕이 낳은 결과다.
산나물 뜯는 것까지 법의 잣대로 철퇴를 가하게 된 세상,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꺾세 꺾세 고사리 꺾세' 정겹던 노랫가락이 비가(悲歌)처럼 맴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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