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숲’을 보려면 그대로 둬라

 
 봄을 맞는 산들이 시끄럽다.

   깊은 산 골짜기는 물론 인가 근처 산에서도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다. 다름 아닌 나무베는 소리다.
   예전엔 일일이 톱질 해 나무를 베었지만 요즘엔 기계톱으로 하기에 소리가 여간 큰 게 아니다. 엔진이 달린 데다 동시에 여러 대가 가동되기 일쑤이니 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메아리까지 합쳐지면 더욱 요란하다.
 처음엔 낮은 소리였다가 곧바로 찢어질 듯한 고음이 나면 영락없이 나무 하나가 넘어간다.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분이다. 길어봤자 5분이 안 걸린다. 수 십 년 살아온 생명이 그렇게 속절없이 끝난다.
 

   요즘 이뤄지고 있는 나무베기 작업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솎아베기 즉 간벌이요 또 하나는 송두리째 베어내는 벌목이다. 공식적인 작업만 두 가지지 뗄나무를 장만하기 위해 몰래 베는 도벌까지 합하면 세 가지다.
 간벌과 벌목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간벌은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잘 자라도록 시원찮은(?) 나무를 솎아주려는 것이며 벌목은 다 키운 나무를 수확하거나 산지 개발 혹은 수종갱신을 위해 허가를 얻은 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요즘엔 일자리 만들기의 일환으로 해당 기관들이 앞다퉈 작업을 벌이다 보니 산 하나 건너마다 기계톱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문제는 무분별한 나무베기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벨 곳 안 벨 곳 가리지 않고 무작정 기계톱을 들이댄다. 간벌과 벌목, 일자리 만들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특히 간벌은 그 효과가 크다는 걸 익히 안다. 간벌한 산과 안 한 산은 차이가 난다. 나무 자라는 게 다르다. 벌목 역시 수종갱신을 위해선 꼭 필요한 절차요 효과 또한 무시할 게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란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효과냐는 것이다. 정녕 산을 위하고 나무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쓸만한 나무만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진정 자연을 위하는 일인가. 그 어찌 산마다 쓸만한 나무만 있어야 하는가.

   자연에는 불필요한 것이 없다. 그러니까 자연이다. 한자(漢子)를 놓고 봐도 그렇다. ‘스스로 자(自) 자’에 그럴 연(然)‘이 합쳐진 게 자연이니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된 것‘ 혹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자연 아닌가.
 

   무참히 잘려나가는 나무 한 그루도 귀중한 생명이거니와 그 나무 한 그루가 잘려져 나감으로써 숲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 그 공간은 졸지에 혼돈 상태가 된다. 전에 비치지 않던 햇빛이 들어오고 또 그렇게 되면 하층부의 식물이 영향을 받는 등 여파가 도미노처럼 번진다. 
 졸지에 휑하니 뚫려진 숲 환경은 야생동물들을 불안케 한다. 갑자기 바뀐 환경을 그들이 좋아할 리 없다. 또 하나는 굉음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다. 조용하던 산골짜기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굉음은 그 자체가 폭탄이다. 산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이 치명타를 입는다. 난데 없는 소리에 기겁해 달아나야 하고 야행성 동물들은 잠 잘 시간에 괜한 생고생을 해야 한다. 가뜩이나 요즘은 들짐승들이 새끼 갖는 시기다.  
 며칠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해 괴산군을 떠들석하게 했던 ’괴산호주변 까막딱따구리‘ 둥지 바로 근처서 별안간 간벌굉음이 울려퍼졌다. 벼락을 맞은 듯한 놀란 가슴으로 즉시 해당부서에 연락해 중단시키긴 했으나 아직도 떨떠름하다.
 

   간벌과 벌목을 하지말라는 게 아니다. 하더라도 나무만 보지 말고 숲생태계도 봐가면서 하라는 얘기다. 아울러 진정한 숲을 보려거든 스스로 그러려니 내버려 두는 일도 한 방법임을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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