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 알과 땡감, 그리고 복어알 파문

 

 

계곡마다 가재가 지천하던 시절엔 가재 잡는 일이 식은 죽 먹기였다. 낮에는 계곡물에 들어가 가만히 돌만 들추면 여기저기서 가재가 기어 나왔고 밤중엔 횃불과 그릇만 들고 들어가 보이는 대로 주워 담으면 그만이었다.
재미로 가재 낚시를 하는 때도 있었는데 방법이 아주 쉬워 낚시랄 것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생긴 나뭇가지에 대충 실을 묶고 그 실 끄트머리에는 개구리 뒷다리를 묶어 물 속에 넣어두기만 하면 가재가 심심찮게 물었으니 그저 그릇에 연방 털어넣으면 됐다.
이런 방법도 있었다. ○○이삭을 잘라 돌에 으깬 다음 상류 쪽으로 가 풀어넣기만 하면 하류 쪽 가재들이 하나 둘씩 기어나왔다. ○○이삭에 특별한 독성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가재가 맥을 못 추고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요즘 같으면 꿈도 못 꿀 얘기지만 친구 둘만 모여도 무슨 일이든 저질러 먹을거리를 구했던 1960~70년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우리네 고향 모습이다.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에 휴지가 달라붙은 것처럼 깔깔해 지는 땡감 얘기. 지금이야 감의 떫은 맛을 없애는 방법이 수없이 개발돼 홍시가 되기 전이라도 얼마든지 맛있게 감맛을 보게 됐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땡감 먹고 안 체해 본 어린이가 없을 정도로 덜 익은 감을 예사로 먹었다. 잘 먹어야 체하지 않거나 옷에 땜감칠 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먹어댔는지 그 또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우리네 과거다.

 


전혀 뜬금 없는 두 얘기. 더구나 먹을거리로 따져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재와 땡감. 하지만 여기에 소름 끼치는 비밀이 들어 있다. 다름 아닌 이 두 가지를 잘못 섞어 먹으면 큰일난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냥 가재가 아니고 가재의 알(날것)과 땡감을 함께 먹으면 몸에 큰 부작용이 생기거나 심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전의 사약 재료였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사약 재료 가운데 해란(蟹卵)이라고 소개된 것이 바로 가재 알인데 엉뚱하게도 게의 알로 풀이돼 있다. 이는 가재의 한자명이 석해(石蟹)인 것에 비추어 해(蟹)를 글자대로 '게'로 풀이한 데 따른 오류라 생각된다.
사약 재료는 이밖에도 비상·수은·생금(生金)·생청(생꿀)·초오·부자·천남성·화경버섯·짐독 등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한 가지만 쓰이지 않고 여럿을 조합하거나 해란과 땡감처럼 서로 상극인 재료들을 혼합해 사약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엔 독성을 가진 자연물이 의외로 많다. 사약 재료로 쓰인 것들도 대부분 자연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짐독 또한 중국에 사는 올빼미류인 짐새 깃털을 술에 담가 만든 것이다.
해서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작업장 인부 6명이 약초술을 나눠 먹고 몽땅 병원에 실려갔던 일도 초오 때문이다. 약초에 대한 어설픈 상식이 불러온 엉뚱한 사고였다. 물론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 사약 재료인 부자와 천남성은 물론 초오 역시 한방에 쓰이는 약초다. 하지만 약성과 용법, 용량을 제대로 알 때 약초이지 그렇지 않으면 독초일 뿐이다.

 


최근 발생한 복어알 파문도 독을 약으로 잘못 이용하려다 신세 망친 사례다. 먹으면 치명적인 맹독성 복어알을 암과 아토피 치료제로 만들 생각을 한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것을 환자에게 특효약이라고 속여 판매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다.
오죽 다급하면 복어알 제품을 고가에 구입해 먹었겠냐마는, 타인의 생명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돈만 벌면 그만이다는 물질만능·황금만능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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