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전하는 말... 서른여섯번째> 

 

밤꽃은 보면 볼수록 희한한 생각이 든다.

암꽃은 마치 성게 새끼처럼 생겨 앙증맞고 수꽃은 여우 꼬리처럼 생겨 별쭝스럽다.

어디 그 뿐인가.

수꽃에서 진하게 풍겨 나오는 꽃향기는 마치 사람의 정액 냄새와 흡사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게 '6월 밤나무골 과부 몸부림치듯 한다'느니 '과부는 유난히 밤나무골을 좋아한다'느니 하는 쓰잘 데 없는 말들인 지는 몰라도, 정녕 그 냄새를 맡아보면 왜 그런 말들이 생겨나게 됐는지 절로 이해가 갈 만큼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밤꽃이 만발한 숲을 애인과 함께 걸으면 사랑을 성취한다는 속설도 있고 보면 혹시 밤꽃 향기에 여자의 정을 북돋는 독특한 물질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위: 밤나무의 암꽃> 

 <아래: 밤나무의 숫꽃>

 

이 같은 생각은 비록 필자만 하는 건 아닌 듯 싶다.

많은 시인들이 밤꽃을 사랑과 연관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 중 이덕이란 시인은 「밤꽃 필 무렵」이란 시에서 이같이 표현하고 있다.

『밤꽃 냄새 알면/ 처녀가 아니라고 했네/ 동네 과부는/ 바람 타고/ 이름을 바꾼다고 했네…』

밤꽃 냄새를 알면 그건 이미 알건 다 알고 해볼 건 다 해본 상태란 얘기다.

김광규란 시인은 또 「오뉴월」이란 시에서 『…승부와 관계없이/ 산개구리 울어대는 뒷산으로/ 암내 난 고양이 밤새껏 쏘다니고/ 밤나무꽃 짙은 향내가/ 동정의 열기를 뿜어냅니다…』라고 했다.

첫 몽정(夢精)한 소년 하나가 그것이 부끄러워 이내 밤나무 밑으로 달아났으나 (자신의 몸에서 나온 정액냄새 같은) 밤나무꽃의 축축한 내음이 온 동네에 퍼져있으니 이미 소문이 난 게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밤꽃만 별난 게 아니다.

밤나무의 종자인 밤에서 어린 싹이 돋아날 때도 다른 나무에서는 볼 수 없는 별쭝스러움이 있다. 즉, 참나무나 소나무 같은 대부분의 나무들은 열매나 씨에서 싹이 트면 그 껍데기가 새싹 머리에 붙어 땅위로 올라오거나 묘목뿌리에 얼마간 붙어있다 썩어 없어지는데 비해 밤 껍데기는 묘목뿌리에 붙은 채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런 까닭에 밤나무는 근본을 잊지 않는 '효도나무'라 하여 예부터 조상의 위패(位牌)를 만들 때 흔히 밤나무를 써왔다.

다시 말해 밤나무는 조상 숭배의 얼이 담긴 나무인 것이다.

「연감유함」이란 책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도 밤(산밤)과 관련 있는데, 눈앞의 이익만을 좇거나 간사한 꾀로 남을 농락함을 꼬집은 유명한 고사다.

밤은 또 우리 민족에게 있어 다산과 부귀를 가져다주는 과실로 여겨져 제삿상이나 혼례상에 반드시 올려진 귀중한 제과(祭果)다.

 

바야흐로 밤나무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시골 마을 어귀나 산자락마다엔 화제의 그 밤나무 수꽃들이 이제 막 꼬리를 내밀고 묘한 냄새 풍길 채비를 차리고 있다.

벌써부터 암내난 고양이 이 시기를 놓칠 새라 이리저리 야옹거리고, 꿀 찾아 날아든 벌 나비도 여기저기 어지럽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특히 올여름에 정녕 사랑을 성사시키고 싶은 연인들이여.

자연이 마련한 '사랑의 계절' 6월이 왔으니 다음주쯤 어디 가까운 밤나무 숲을 찾아 단둘이 거닐어보면 어떨는지...

또한 부부애가 조금쯤은 식었다 싶은 사람들도 더 큰 사랑을 다지는 계기로 밤나무 숲을 한번쯤 찾아보면 어떨는지...

어~ 하다보면 금새가는 게 시간이요 생태계의 이치이니 지금 당장 스케줄 잡아놓고 사랑하는 그이에게 시간 비우라는 통보를 하는 게 좋을성 싶은데...

 

성게와 여우꼬리 같이 생긴 밤꽃이 이내 폈다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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