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카우보이와 멧돼지

 

 

"1970년 무렵 나는 너무나 많은 소들을 갖게 돼 지붕도 없는 축사에 100~200 마리씩 가두어 놓고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크고 살찌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소의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풀 대신 조섬유와 곡물, 농축 단백질을 먹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식사는 소의 소화기관을 상하게 했다. 많은 소들이 탈장으로 고생했고 나 또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소를 사들였다. 어떤 땐 20여 곳에서 한 번에 100마리씩 들여오기도 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소들을 한 우리에 넣어 기르다 보니 이번엔 질병이 문제였다. 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 항생제였고, 들끓는 파리떼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량의 살충제까지 뿌려댔다.
소들을 더욱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호르몬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가장 빈번히 사용한 성장호르몬은 DES(디에틸스틸베스트롤)이었다. 나는 이 호르몬을 임신한 소의 유산을 위해서도 사용했다. 그 무렵 나는 화학약품이라면 무조건 좋은 줄로 알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소 한 마리의 무게를 1,100파운드 되도록 만드는데 30개월 걸리던 것을 15개월로 단축시켰고 농장을 4O배나 키웠다. 하지만 정작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화학물질 자체가 비쌌고 매년 보다 많은 화학비료와 항생제를 사용해야만 그 전 해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들은 병들거나 죽어나갔다."

 


미국 몬태나에서 대규모 축산업을 하다가 신경종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산업축산의 폭력성을 깨닫고 채식주의자가 된 하워드 F. 리먼의 <성난 카우보이>란 책을 일부 요약한 내용이다. 카우보이에서 축산업자로, 동물권리운동가로, 채식주의자로 변신해 온 리먼은 1996년 그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소가 소를 먹는 현실을 폭로하면서 광우병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주목 받았던 인물이다.


당시 리먼이 겨냥한 것은 광우병이지만, 그의 주장과 논리는 오늘날 축산업에 몸담고 있는 전세계 농민과 국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성난 카우보이>를 통해 사용하지 말아야 할 화학약품 등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용해 온 제 자신을 스스로 폭로하고 아울러 그것을 방임해 온 국가에게도 일부 책임을 묻고 있다. 사육두수가 적었을 땐 없던 걱정거리들이 점점 사육두수가 많아지면서 자꾸만 생겨나고, 또 그런 반면 욕심은 더욱 커져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축산현실을, 체험을 통해 통렬히 지적하는 한편 그릇된 축산업이 지구를 어떻게 절망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지를 싸잡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가축 전염병들, 특히 요즘 한창 시끄러운 우리나라 구제역(비록 광우병은 아니지만)을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리먼의 <성난 카우보이>요, 언제나 하세월인 우리의 방역대책이다.
왜 또 발생했을까. 올해만도 1월과 4월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구제역으로 시작해 구제역으로 끝나는 느낌마저 든다. 언론에선 단골메뉴까지 생겨났다. 자고 나면 '빠르게 확산'이란 굵직한 타이틀과 함께 여지없이 생매몰 광경이 내비쳐진다.


치료약은 없고 예방약도 오히려 만들면 전파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는, 그래서 일단 발병하면 일정 반경내 가축들을 모조리 매몰한다는 우리나라의 현실. 이런 와중에 멧돼지는 도심으로 내려와 수시로 날뛴다. 마치 축사 안의 가축들도 언젠가는 뛰쳐나와 날뛰는 날이 있을 것이란 시위라도 하듯 말이다.

 
   
 
   
 
산야를 다니다 보면 돌연 믿기지 않는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된다. 황소개구리도 아닌 토종 개구리가 저보다 큰 무자치를 물고 발버둥치고 있거나 물고기인 동사리가 살모사와 입을 마주 문채 나뒹굴고 있는 모습, 또 유혈목이가 천적인 백로와 왜가리의 목을 감고 사생결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 등 가히 기적이라 할만큼 황당한 사건이 생태계서 벌어지곤 한다.

어찌보면 먹잇감(피식자)의 반란 같기도 하고 약자의 최후 발악 같기도 한 이광경. 하지만 포식자의 입장에선 그들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치욕의 순간이다. 어쨌거나 서로가 생과 사를 걸고 벌이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싸움을 보노라면 이 세상 생명체들이 얼마나 자신의 생명에 집착하는 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그렇다면 이들 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대부분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으나 간혹 양쪽 모두가 죽고 마는 극한상황까지 벌어진다. 반면 약자인 피식자가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령 이긴다해도 목숨만 부지할 뿐 상대를 집어삼키진 못한다.

비슷한 일이 곤충세계서도 일어난다. 생태계내에서 강자인 말벌이 꿀벌을 공격했다가 화가 난 꿀벌들의 역습으로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가 그 예다. 이 경우도 말벌은 죽지만 타격은 꿀벌들에게도 만만찮다. 강한 턱과 이빨을 가진 말벌이 순순히 당할 리 없다.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그 결과 싸움이 끝난 자리엔 말벌의 사체 외에도 꿀벌의 사체 또한 부지기수다.

생태계내 먹잇감의 하극상(?)은 이렇듯 희생을 가져온다. 아니 그 희생은 이미 예견된 결과다. 생태계에는 그만큼 비정한 먹이사슬의 법칙이 있다. 피식자는 포식자의 섭식활동에 결과적으로 순응토록 돼 있다. 다만 쉽사리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생존경쟁을 벌이고 필사의 저항을 할 뿐이다. 그 생존경쟁과 저항은 양쪽 모두를 진화하게 하는 모티브가 된다. 이것이 생태계다.

만일 동물계의 먹이사슬에 인간이 끼어들어 한 동물의 먹이체계를 뒤바꿔 놓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초식성 동물에게 육식성 먹이를 먹도록 강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경우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지금 우린 그 엄청난 결과를 '실제 상황'으로 목격하고 있다. 다름아닌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이 그 답을 던져주고 있다.

생각해 보자. 이미 알려진 바대로 광우병의 발병 원인은 근본적으로 소의 먹이(사료)에 있다. 20여년 전부터 영국 등지서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리고 비육우를 빨리 살 찌우기 위해 양과 소의 장기, 뼈, 살코기 등을 사료원료로 이용한 게 단초가 된 것이다.

초식성인 소에게 단백질을 공급한답시고 육식성 사료를 섞어 먹인 것이 화근이 돼 결국 광우병이란 해괴망칙한 병을 낳고 말았다.

그결과 전 세계는 광우병의 공포에 휩싸이게 됐고 우린 지금 그 병의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문제로 전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촛불시위의 피킷마다 '미친소=미친정부'라며 아우성이다. 이젠 해외 동포들까지 나서 우리의 '미친 정국'을 우려하고 있다.

자고로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 했다. 개도 먹을땐 건드리지도 말라 했잖은가. 그만큼 먹을거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난도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는 건 곧 신뢰성과 안전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제 아무리 약자인 피식자라도 열 받고 궁지에 몰리면 반격하는 게 자연계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자신의 먹을거리가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억지에 의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건 생존의 문제다. 그 어찌 분노가 극에 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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