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없는 하천을 정녕 보고 싶은가
경상도 해안지역에 가면 육침고기,침쟁이,해방고기로 불리는 물고기가 있다. 정식 명칭은 큰가시고기로 커봐야 10cm를 넘지 않는 소형종이다. 이름에 ‘큰’ 자가 붙은 것은 국내 가시고기류 가운데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 특징은 몸에 가시가 나 있는 것 외에도 수컷의 새끼사랑이 유달리 강하다는 점이다. 2000년 출간돼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던 소설 ‘가시고기’는 이 물고기의 부성애가 모티브다.
바다를 오가는 이 물고기는 생활사도 독특하다. 새끼때 바다로 내려가 자란 큰가시고기는 봄이면 강으로 올라와 산란 준비를 하는데 그 일을 수컷이 도맡는다. 수컷은 우선 웅덩이를 판 다음 수초 등을 물어다 둥지를 짓는다. 산란둥지가 완성되면 수컷은 본격적인 구애작전에 나서 ‘눈맞은 암컷’을 유인해 신방을 차린다.
종 특유의 행동은 이 때 발현된다. 암수컷이 은밀하게 그들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수컷이 암컷의 꼬리잔등을 가볍게 톡톡 쳐주면 암컷은 이에 순순히 응한다. 대를 잇기 위한 스킨십이다. 수컷의 노력으로 자극 받은 암컷은 그제서야 요동치며 알을 갈긴다. 수컷의 방정도 이때 이뤄진다. 알을 낳은 암컷이 떠나면 곧이어 수컷의 눈물겨운 부성애가 시작된다. 행여나 둥지가 침범 당할까봐 잠시도 한눈 팔지 않는다. 쉬기는 커녕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이윽고 새끼가 부화해 둥지를 떠나면 그때서야 조용히 생을 접는다. 얼마 뒤엔 썩은 몸마저 새끼들에게 먹힌다.
이런 과정을 유난히 지켜본 이가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영국학자인 옥스퍼드대학의 니코 틴버겐(Nikolaas Tinbergen) 교수다. 그는 무려 13년간 큰가시고기의 산란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암컷이 수컷에게 유인당하는 요인은 산란철 붉게 변하는 수컷의 혼인색이며, 알을 밴 암컷은 (수컷이 아니더라도) 꼬리잔등만 쳐주면 산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른바 해발인(解發因)의 원리다. 이 업적으로 틴버겐은 1973년 노벨상을 탔다.
오랜 가뭄과 변덕스런 날씨에도 자연계의 생태시계는 어김없이 물고기 산란철을 가리키고 있다. 끊길 듯 말 듯 쫄쫄쫄 흐르는 계곡물에서도, 곳곳에 바닥을 드러낸 채 낮은 수위를 보이고 있는 각 강과 호수 안에서도 물고기들은 일년거사를 치르느라 무척이나 분주해졌다. 아니 바빠진 것도 바빠진 것이지만 그 어느해보다 수량(水量)이 적은 불리한 환경속에서 각기 유리한 산란터를 선점키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고 있다.
쉬리,돌마자 같은 여울성 물고기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여울이 다행인 듯 앞다퉈 알을 쏟아내고 있고 돌 표면에 알을 붙이는 꺽지,동사리도 부쩍 좁아진 공간에 서로 알 붙일 터 찾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하천생태계가 2년째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도 봄가뭄 때문에 물고기들이 산란에 어려움을 겪더니만 올해도 상황이 퍽 좋질 않다. 곡우에 맞춰 비가 왔지만 안심할 수 없다. 물고기 산란율이 떨어지면 하천생태계는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산란철에 더욱 기승부리는 남획행위다.
알 낳기 위해 한곳으로 몰려드는 습성을 악이용해 동시다발적으로 싹쓸이 포획을 한다. 마치 소탕작전 같다. 그물 한 번에 수십,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그것도 터질 듯이 알 밴 어미들이 일시에 몰살 당한다. 물고기가 산란하면 큰 일이라도 일어나는 양 어떤 곳에선 동네사람 모두가 나선다. ‘해발인의 계절’을 맞아 숭고한 본능을 발현하기도 전에 숱한 물고기가 떼죽임 당한다.
매년 반복되는 산란철 물고기 남획. 이대로 가다간 하천생태계가 끝장날 판이다. 물고기가 사라진 하천을 그렇게도 보고들 싶은가.
'뱁새의 생태풍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들의 울음소리엔 사연이 있다 (0) | 2009.05.12 |
---|---|
산나물 철의 간 큰 공고, 간 부은 사람들 (0) | 2009.05.12 |
똥 같은 세상, 에라 똥이다 (0) | 2009.04.14 |
도깨비불에 놀란 청명 절기 (0) | 2009.04.07 |
생태시계가 망가진 올봄의 이상징후 (0) | 2009.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