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가 무색해진 생태변화

 

연홍지탄(燕鴻之歎)이란 말이 있다.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입장에 있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연안대비(燕雁代飛) 역시 비슷한 말이다.
제비와 기러기는 철새다. 하지만 입장이 다르다. 제비는 여름철새이고 기러기는 겨울철새다. 제비는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지만 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온다.
해서 도래시기도 다르다. 제비가 날아올 시기이면 기러기는 이미 떠나고 기러기가 날아올 시기이면 제비가 떠나고 없다. 그러니 서로 만날 기회가 없다. 적어도 삼짇날과 중양절이 중시되던 시절만 해도 그랬다. 해서 생겨난 말이 연홍지탄이요 연안대비란 사자성어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 가운데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 제비와 기러기뿐이었겠는가. 청둥오리와 두루미,고니 같은 겨울철새들과 꾀꼬리,뻐꾸기,파랑새,백로,왜가리 같은 여름철새들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겨울철 삼한사온이 두드러지던 시절의 우리나라 조류 생태계의 모습은 그랬다. 그게 한반도의 자연섭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졌다. 연홍지탄이니 연안대비니 하는 사자성어가 더이상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태계가 변했다. 해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긴 하지만,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는 갈수록 빨라지는 반면 남쪽으로 날아가는 시기는 점차 늦어지고 있다. 삼짇날 이전에 제비가 출현하는가 하면 10월 하순, 심지어 11월초까지 이동하지 않는 제비도 눈에 띈다. 기러기 역시 10월초만 되면 날아왔다가 이듬해 5~6월이 돼도 날아가지 않는 '조기 도래, 지각 귀향'하는 개체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만큼 두 종간 서로 마주치는 개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연홍지탄, 연안대비란 말은 이제 맞는 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만남'이 다른 새들에게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철새였던 백로류와 왜가리는 해를 넘길수록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개체들이 많아지고 있고 청둥오리 역시 겨울철새인 본래의 입장(?)을 잊은 채 여름을 나는 게 예삿일이 됐다. 백로류 가운데 중대백로는 월동개체가 10년 사이에 232%, 왜가리는 80%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기러기떼 모여든 겨울 들판에 여름철새인 백로,왜가리가 기웃거리고 물총새,호반새,황로가 노니는 강변에 겨울철새인 청둥오리가 날아들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먹이를 찾고 있다. 예전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어색한 만남이 이젠 다반사가 돼 버렸다.

 


게다가 이젠 이런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를 찾던 새가 아닌, 전혀 뜬금없는 새들의 출현이 최근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엔 제주도 조천읍에서 검은슴새란 뜻밖의 새가 발견됐고 그보다 전인 6월엔 마라도 부근에서 역시 우리나라 새가 아닌 쇠부리슴새가 500마리나 관찰됐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뜬금없는 새가 2000년 이후 69종이나 새로 발견됐다고 한다. 학계 입장에서는 연구할 대상이 많아져 좋을 지는 모르나, 생태계 전반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이상 징후다.

 


학자들 대부분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기후 변화로 보고 있다. 기후가 변하니 새들의 생태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뜬금없는 새들의 출현에 대해서는 먼바다를 날다 길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기후 변화에 따라 서식지를 우리나라로 확대한 것인지 좀더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쨋거나 작금의 생태변화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사자성어마저 무색케 하는 지경에 와 있다. 연홍지탄의 뜻이 '제비와 기러기가 만나 탄식할 만큼의 세태변화'로 이해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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