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는 서로 다른 두 나무가 가지를 통해 하나가 된 것을 일컫습니다.
Yeonriji refers to two different trees that became one through branches.

연리목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줄기째 만나 하나의 나무로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Yeonrimok refers to the fact that two different trees meet on a stem and grow into a single tree.

연리지와 연리목은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을 비유해 사랑나무라고도 부릅니다 
In Korea, Yeonriji and Yeonrimok are also called "love trees" by comparing the extreme love between two men and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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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fmxb5sU3JrM

백로담의 슬픈 사연에 물길마저 통곡하듯 굽이치고ㆍㆍㆍ

용추골 내 용추폭포 하얀 물줄기 절경 이뤄
가무내 명칭 금송아지(金牛) 전설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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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경 이룬 용추폭포
용추골 안에 있는 용추폭포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과 함께 지금도 바위 주변에 용발자국이 남아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위 위에서 떨어진 옥수(玉水)가 2단으로 펼쳐지며 절경을 이룬다.  


장마전선이 물러가니 하늘빛도 산천빛도 다 새롭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요동치던 강물도 2~3일 지나니 언제 그랬냐며 수줍은 몸짓이다.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장대비에 잠시 날갯짓을 사리던 물잠자리도 더욱 말쑥해진 차림이고 비가 그치면서 훨씬 높아보이는 푸른 창공엔 황조롱이 새끼가 비행술을 익히느라 이리저리 어지럽다.


괴산군 청천면 신도원에서 도원을 비껴 현천다리(도원교)에 도착한 강물은 또 한번 ‘가무내’란 명칭으로 이름갈이를 한다. 가무내는 말 그대로 ‘검은 내(현천·玄川)’란 뜻인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강바닥에 검은 바위와 돌이 많이 깔려있고 도원교 바로 아래엔 수심 깊은 소가 있어 항상 강물이 검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이는 현대적인 해석일 뿐 그 어원은 다른 데 있다.


괴산 청천지역 향토사학자인 김사진씨(60ㆍ전 괴산군 의원)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 물가서 금송아지가 나온 이래 쇠 금(金)과 소 우(牛) 자를 써서 ‘금우내’로 부른 것이 차츰 감우내→가무내로 변했다가 한자 지명으로 바뀌면서 현천이 됐다는 것이다.


이 가무내란 이름은 현 도원교가 세워진 부근(화양2리)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한 달래강의 또다른 이름으로도 불러진다. 

금송아지(金牛) 전설을 안고 흐르는 가무내의 봄풍경.


어쨋거나 유난히 검게 보이는 하천바닥을 급한 물살로 지나친 가무내(달래강)는 현천다리 바로 아래서 커다란 소를 이루며 까불까불 다시 한번 몸을 추스린 뒤 이내 화양1리 청소년수련원 뒤편으로 흘러 지류인 화양천과 몸을 섞는다.


화양천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북 도계(백두대간 마루금)서 발원해 송면에서 선유동쪽의 관평천과 만나 화양계곡을 거쳐 흘러드는 지류를 말하는데 비가 온 뒤끝이라 수량도 많고 물빛도 유리알 같은 게 본류인 가무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달래강 지류는 추후 별도로 보도 예정)


화양천을 만나면서 더욱 힘이 솟구친 가무내는 그야말로 바위 투성이인 마당바위 구간을 통과하면서 온갖 번뇌 다 토해낼 것 같은 하얀 몸부림을 친다.

 

달래강 전 구간이 암반으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상에 돌과 바위가 많이 깔려있지만, 이 구간은 특히 커다랗고 시커먼 바위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색다른 경관을 이루는데 그 중에서도 백로담 직전의 마당바위 부근이 가장 빼어나다.


이 구간은 또 절경도 절경이지만 ‘달래강의 숨결’ 취재팀이 수 개월째 추적하고 있는 ‘수달’이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수역으로 오죽하면 어부들도 그물을 치길 꺼려하는 요주의(?) 지역이기도 하다.(수달의 서식현황을 비롯한 달래강의 생태도 추후 상세 보도 예정)


이날 역시 돌위에 나보란듯 흔적을 남긴 수달똥을 집어들고 버릇처럼 냄새를 맡으며 물길을 따라 내려 가다가 며칠전 만났던 이 동네 어부를 다시 만나 ‘심한 수달얘기’를 듣게 됐는데 그 어부 왈, “엊그제 그물을 쳤더니 그물을 채곡채곡 쌓아놓은 게 마치 사람이 걷어놓은 것처럼 해놓고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남겨두질 않았다”며 억울해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수달 서식지

 마당바위 부근에는 수많은 바위와 강물이 어우러져 달래강 특유의 경관을 빚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은 ‘극성스러울 만큼’ 수달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어부들마저 그물 치길 꺼리는 수달천국이다.   

내심 반가운-어부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할- 얘기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고 도착한 곳이 후영리 백로담이다. 얼핏 듣기로도 범상치 않은 지명이 또 한번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백로담은 마당바위를 지나 후영교 부근의 커다란 물굽이를 이루는 지역을 일컫는데 예전엔 이곳 절벽 노송에 백로 서식지가 있어 강의 푸른 못(담ㆍ潭)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뤘다고 한다.


백로담과 관련된 전설을 들어보자.

 

옛날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부하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는데 산세가 수려한 데다 백로가 많이 찾아오고 동네마저 부촌인 지라 훗날 큰 인재가 날 것을 두려워 해 뒷산 중턱에 호를 파서 산세를 끊고 장검으로 혈을 찔렀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단다.

 

이 전설을 들으니 약 20년전 ‘금강 1천리 물길’ 취재시 그곳 발원지인 전북 장수의 신무산 역시 임란때 이여송이가 직접 뜸을 떠 혈을 끊었다는 얘길 듣고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백로담의 슬픈 사연을 듣고 물길을 바라보니 물길마저 통곡하는 양 역S자형을 그리며 온몸으로 꿈틀댄다. 그 꿈틀대는 물길을 따라 2km가량 더 내려가니 반원처럼 둥글게 물굽이 치는 왼편에 마을 하나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다. 마을 형상도 노루 모가지 같고 물길도 노루목처럼 흐른다는 노루목 마을이다.

 

노루 모가지처럼 흐르는 달래강
괴산군 청천면 백로담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반원처럼 둥글게 물굽이 치는 왼편으로 손바닥만한 마을 하나가 뙤약볕에 그을리고 있다. 마을 형상도 노루 모가지 같고 물길도 노루목처럼 흐른다는 노루목 마을이다.


마을 반대편 도로에서 노루목의 깊은 인상을 담고 거봉리를 향하려는데 산모퉁이 초입에 조그만 다리(용추교)가 나타나고 그 안쪽으로는 골짜기가 이어진다.

 

이름하여 용추골로 향하는 곳이다.


용추골은 지난 봄 사전답사때 그 안쪽 사기막리에 있는 용추폭포와 연리목(사랑목)을 촬영키 위해 들어갔던 곳으로 여름 장마철 모습이 궁금해 다시  찾기로 하고 발길을 옮기니 봄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바위를 다 갉아먹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적잖은 물이 2단으로 쏟아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다. 고즈넉한 산중에서 모처럼만에 폭포수 소리 들으며 한동안 정신없이 셔터를 누루고 나니 온몸에 냉기가 돈다.

 

삼복에 냉기를 받으며 절경에 빠지니 이 어찌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인근에 있는 연리목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폭포소리가 여전히 따라온다.

 

며칠 전 이곳과 지척거리인 선유동 계곡을 찾았다가 그곳 연리지(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붙은 나무를 일컫고 연리목은 두 나무 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을 지칭함)가 고사한 것을 직접 목격했던 터라 발걸음이 괜히 무겁다.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낸 연리목은 봄에 본 건강한 모습 그대로 객을 반긴다.

 

 괴산 송면의 연리지 소나무가 죽은 뒤에도 줄곧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던, 건강하던 소나무가 갑자기 죽은 데 대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이 연리지가 세계서 가장 아름답고 빼어났었다”는 때늦은 가치 평가와 함께 “보호수 지정 기관인 괴산군 스스로가 이 나무를 죽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산26의 이 연리지 소나무는 수령 약 100년된 소나무 2그루가 전생에 못다한 사랑을 주고받듯 가지 하나를 서로 붙인 채 계집 녀(女) 형상을 하고 있는 등 수형이 특이해 괴산군이 지난 2004년 군보호수(112호)로 지정, 보호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지난해 가을부터 푸른 잎이 붉어지면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올 봄이 되자 수세가 더욱 악화돼 지금은 완전히 말라죽은 채 흉물로 서있다.
 이 연리지가 죽자 가장 먼저 아쉬움을 나타낸 이들은 다름 아닌 국내 연리지 연구가들. 그 중 전 세계의 연리지를 연구해 온 한 전문가는 “그동안 연리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실물을 봐왔지만 괴산 송면의 연리지만큼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계집 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못봤다”며 “연리지의 본 고장 중국에도 송면의 연리지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연리지를 관광상품화 해 지역 브랜드로 활용할 정도로 귀중히 여기고 있다”며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지만, 그런 면에서 볼 때 송면의 연리지를 잃은 것은 엄청난 자연자원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과 함께 ‘책임 소재’에 대한 지역여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괴산군의 이중적인 행정이 송면의 연리지를 죽였다’는 쪽으로 여론이 쏠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역민들이 괴산군에 책임을 떠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면 괴산군이 연리지를 보호수로만 지정해 놨을 뿐 그에 따른 실질적 보호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인접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 줌으로써 연리지가 죽었다고 지역민들은 믿기 때문이다.
 한 지역민은 “연리지에 바로 인접해 건축허가를 내준 것도 잘못이지만 공사 도중에 허가사항은 잘 지켜지는지, 또 연리지에 악영향은 주지 않는지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며 “그 결과 중장비 및 기초 공사에 따른 땅울림과 뿌리 훼손, 시멘트 독성 등으로 인해 결국 소나무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연리지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등 가슴 뿌듯해 했는데 이젠 되레 소나무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주민들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며 “많은 군민이 아쉬워하는 만큼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에 의하면 괴산엔 현재 용추골의 연리목을 비롯해 20개 가까운 연리지가 있는 등 전국서 가장 많은 연리지가 발견된 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이들의 존재를 밝힐 경우 ‘송면 연리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지금까지 함구해 오고 있다고 한다.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옥(玉)이 수 십 말 있으면 뭘 하겠는가. 그것이 있다고 마냥 떠들어 댈 줄만 알 뿐 그것을 실에 잘 꿰어 보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없었기에 스스로 빚은 결과다.
 만일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슬기롭게 대처하고 지혜로움을 발휘했더라면, 그 가치와 존재들이 떳떳하게 널리 알려져 아마도 괴산은 지금쯤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연리지의 고장’이 돼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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