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잡초(雜草)란 말을 쓰고 있다.
풀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있으나 마나한 것쯤으로 취급되는 풀이 곧 잡초다.
아니 농사를 짓는 이들에겐 오히려 '없었으면 하는 풀'이 바로 잡초요 잡풀이다.
사전을 찾아봐도 잡초 또는 잡풀이란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대수롭지 않은 풀'로 풀이돼 있다.
대수롭지 않은 풀!.
여기서 대수롭지 않다는 말은 대단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대수로움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단한 우문(愚問)이지만 그 주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다.
'인간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니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을 리 없고 대수로울 리 만무다.
그래서 갖다 붙인 이름이 잡초요 잡풀이다.
잡초와 잡풀이란 말은―그 동안 인간에 의해 순전히 타의적으로―그 범주에 속해온 당해 풀들에겐 대단히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말일 것이다.
인간에게 쓸모가 없다고 해서 굴비 엮듯 한데 묶어 '풀 이하의 이름'을 달아 경멸하는 까닭에서다.
풀의 입장에서 보면 그 보다 더 서럽고 야속한 말이 없을 것이다.
엄연히 풀이면서도 풀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대자연이 어찌 저희 인간들만의 것인가.
속이 터지고 복장이 터질 일이다.
인간의 오만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 오만은 자연에 대한 오만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잣대가 인간중심으로 못박히게 된 그 첫 걸음마가 잡초와 잡풀이란 말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그러한 오만으로 인하여 그 동안 우리 인간은 얼마나 대자연을 깔보고 멸시해 왔던가.
그 깔봄과 멸시는 고작 '대수로운가 대수롭지 않은가'라는 조그마한 잣대에서 출발하여 결국 대자연속의 모든 식물을 잡초 또는 잡목이라는 하나의 부류와 유용식물이라는 또 다른 부류로 이분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관심마저도 유용식물에게만 쏟아오게 하는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
어찌 대자연의 온갖 식물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대수롭고 필요하면 관심의 대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관심조차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그런 논리가 대자연의 섭리를 얼마나 무시하는 말인가.
자고로 이유없는 삶은 없다고 했다.
대자연의 모든 생명은 나름대로 삶의 이유와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잡초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풀이 어디 있으며 있으나 마나 한 풀이 어디 있는가.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대자연의 한 구성원이자 주인으로서 모두가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에게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소임이 있다.
어찌 그 소임이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공연한 잣대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하거늘 우리 인간은 되레 그릇된 잣대를 만들어 대자연을 멸시해오길 꺼리지 않았다.
이제 그 잘못된 잣대는 버려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될 수 없고 인간은 자연을 벗어나 살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달은 이상 그 그릇된 잣대를 버려야 한다.
그릇된 잣대를 버리는 길은 지금부터라도 잡초와 잡풀이란 말이 대자연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 '건방진 단어'인가를 깊이 깨달아 그같은 단어들을 쓰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까지 잡초로 인식돼 온 풀들도 저마다 각각의 이름을 갖고 있다.
바랭이, 뚝새풀, 방동사니, 새우풀, 크령, 수크령 등이 그들이다.
따라서 제각기 붙여져 있는 이들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굳이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잡초와 잡풀이란 말 대신 들에서 자라는 풀이란 뜻의 '들풀'이나 '야생초'로 바꿔 불러야 한다.
이들을 또 유용식물(작물 포함)과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엔 '여느풀' 또는 '보통풀'이라는 명칭이 어울릴 성싶다.
'예사풀'이란 이름도 괜찮을 듯 하다.
명칭이 여러 가지라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그래도 잡초와 잡풀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는 것이 그나마 대자연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풀들을 평등하게 대해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들을 사용할 경우에도 반드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그들도 그들 나름 대로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또 더 나아가 그들도 자연생태계를 이루는 중요 구성원이자 대자연의 주인이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 잡초와 잡풀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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