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생존전략
대부분의 곤충들은 보호색을 포함한 각종 의태(擬態)와 위장술을 통해 천적의 눈을 따돌리거나 은신처에 직접 몸을 숨김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
먹고 먹히는 냉혹한 생태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 보존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천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몸의 색깔과 형태를 갖추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요, 설령 천적에게 노출돼 위험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재빠르게 몸을 숨겨 생명을 부지해 나가는 것이 동물들의 보편적인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얼마만큼 의태와 위장술이 발달해 있느냐가 생존확률을 좌우하는 관건이며, 위험이 닥치면 그것을 얼마만큼 빠르게 감지해 대처하느냐가 종족 보존의 잣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편적인 생존전략과는 반대로 오히려 ‘나 잡아 보라며 유혹하듯이’ 눈에 잘 띄는 화려한 몸 색깔을 하고 겁 없이 몸을 드러낸 채 활동하는 엉뚱한(?) 곤충들이 있다. 이른바 ‘간 큰 곤충들’이 우리 주변에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믿고 그처럼 화려한 체색을 하고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시쳇말로 ‘덜 떨어진, 아니 진화가 덜 된 곤충’은 아닌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게 곤충의 세계다. 도리어 그러한 생각이 커다란 착각임을 일깨워주는 그들만의 비장의 카드가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얼핏 생각해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그들의 화려한 체색과 대담한 행동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숨어있는 것이다.
무당벌레의 예를 들어보자. 붉은 계통에 검은 무늬가 있어 다른 곤충들보다 눈에 잘 띄는, 비교적 화려한 체색을 지닌 이 벌레는 주요 먹이인 진딧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활보하듯 버젓이 잘도 돌아다닌다.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어줄 첫 번째 무기는 바로 무당벌레의 타고난 ‘내숭떨기’에 있다. 다시 말해 무당벌레는 ‘죽은 척 하기의 명수’이다.
무당벌레는 평상시엔 대담하게 활동하다가도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그 즉시 땅에 떨어져 죽은 척 한다. 날개딱지와 다리를 모두 접은 채, 아니면 날개는 닫고 다리 한 두 개 만 약간 벌린 채 꼼짝 않고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죽은 벌레다. 내가 언제 살아있는 벌레였냐는 듯 내숭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무당벌레의 생존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노리던 천적이 그래도 미심쩍어 다시 건드리면 제 2단계의 방어동작에 들어간다. 즉, 다리관절 사이에서 고약한 냄새와 쓴맛이 나는 액체를 뿜어내 천적으로 하여금 넌덜머리가 나게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화려한 외출’ 뒤에는 그만한 비장의 무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황홀한 ‘유혹’과 ‘내숭’
무당벌레는 화려한 체색을 하고 있어 천적의 눈에 쉽게 띄지만 위험에 부닥치면 즉시 땅으로 떨어져 죽은 시늉을 하는 ‘내숭의 귀재(아래 사진)’이며, 그것도 모자라면 냄새가 고약하고 쓴맛이 나는 액체를 내뿜어 위기를 모면한다, 위 사진은 산수유 열매에 붙어있는 무당벌레의 모습./자연닷컴
무당벌레와 같이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는 길앞잡이는 또 어떤가. 익히 알려져 있는 바 대로 길앞잡이는 곤충계의 최고 멋쟁이라 할 만큼 날개딱지에서 무지개 빛이 도는 게 유난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벌레 역시 일부러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며 천적을 유혹이라도 하듯 시골길 한 복판을 낮게낮게 날아다니며 먹이사냥 하는 습성이 있다.
지금이야 포장이 안 된 시골길과 그 위를 팔짝팔짝 나르는 길앞잡이 보기가 고춧대에서 송진 보기보다도 더 어려운 시절이 되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땐 붙여진 이름 그대로 길 가는 이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나그네 보다 꼭 두 세 발짝씩만 앞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던 이 곤충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천적을 지척에 둔 채 약을 올리듯, 잡힐 듯 말 듯 위태로운 날갯짓을 하는 이 곤충은 왜 하필 은신처가 별로 없는 노출된 지역에서, 그것도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화려한 무늬를 한 채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는 걸까.
천적이 다가가면 다가가는 대로 일정 거리를 두고 날아오르는 자신의 순발력만 믿고 그러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머리통만한 강한 이빨을 가지고 있는 데다 입을 통해 역한 냄새와 거품이 나는 액체를 내뿜을 수 있는 그 나름의 무기를 믿기 때문이다. 괜한 호기가 아니다. 천적에게 잡히면 이빨로 물어뜯고 그것도 모자라면 입으로 고약한 냄새와 거품이 나는 액체를 뿜어냄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 2중의 생존수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진 설명 ◆곤충계의 멋쟁이 ‘길앞잡이’
길앞잡이는 보호색 대신 오히려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화려한 체색을 한 채 은신처가 별로 없는 곳에 서식하는 ‘간 큰 곤충’이다. 하지만 이 대담함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자연닷컴
나방 가운데에도 애벌레 시기에 비교적 화려한 무늬와 체색을 지닌 것들이 있는데 이들 또한 그에 상응하는 종 특유의 방어수단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쐐기나방류들은 겉보기엔 비록 화려하게 보여도 온몸에 나있는 독침은 가히 위력적이다. 쐐기나방 애벌레를 잘못 건드렸다가 눈물이 날 정도의 아픔을 경험해 본 이들은 ‘황홀한 유혹 뒤에 숨겨진 곤충들의 생존전략’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실제로 체험했을 것이다.
이렇듯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체색 또는 무늬를 지닌 곤충들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대내림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생존전략이 그 속에 내재돼 있기 때문임을 반증해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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