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보 부보(Bubo bubo),  바보 바보?”

 
 야묘(夜猫)라 불리던 새가 있다. 수리부엉이다. 여기서 묘는 삵이다. 소리없이 접근해 쥐도 새도 모르게 멱을 따는 게 삵이니, 밤중에 나타나 졸지에 먹잇감을 채가는 삵이 곧 야묘다. 섬뜩하다.
수리부엉이는 달갑잖은 새로 인식돼 왔다. 기이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 도깨비뿔 같은 귀깃, 어린애 만한 몸집, 딱딱거리며 위협하는 큰 부리, 한 번 움켜쥐면 놓지 않는 발톱 등 생김새부터가 비호감이다. 울음소리도 쭈뼛하다.

 부엉이가 달갑잖은 존재로 인식케 된 데엔 어른들의 장난기 어린 으름장도 한몫했다. 시도때도 없이 우는 아이에겐 “저기 부엉이 온다”고 어르고 밤에 자주 싸돌아다니는 아이에겐 “부엉이한테 잡혀간다” 겁줌으로써 부엉이는 곧 두려움으로 각인됐다. 할아버지 무릎 베고 옛날 이야기 들을라치면 으레 배경음악처럼 낮게 깔린 부엉이 소리가 저멀리 들리는가 싶다가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질 때쯤이면 어느새 뒤꼍 느티나무로 옮겨와 기겁하게 한 것이 부엉이다.

 부엉이 소리가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음은 속설과 기록에도 나타난다. 우리말에 부엉이가 마을을 향해 울면 상을 당한다는 말은 그만큼 부엉이가 불길한 일을 몰고다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엔 태조,세조 등 여러 임금이 궁궐 가까이서 부엉이가 울면 서둘러 거처를 옮기고 해괴제(解怪祭)를 지냈다 전한다. 해괴제는 부처에서 땀이 흐르는 일처럼 기괴한 일이 있을 때나 지내던 신풀이다.

 하지만 때론 부(富)를 가져오는 새로도 인식됐다. 속담에 부엉이가 새끼 3마리를 낳으면 대풍 든다는 말이 있다. 육식성인 부엉이가 3마리의 새끼를 키우기 위해선 수많은 들쥐를 잡아 날라야 하기에 생긴 말이다. 새끼 3마리를 키우려면 하룻밤에 수십 마리를 잡아야 한다.
 부엉이는 욕심도 많아 먹잇감을 보는 대로 잡아다 쌓아 놓는다. 해서 옛 어른들은 부엉이집 하나만 맡아도 횡재했다고 했다. 부엉이가 잡아오는 먹잇감엔 닭,꿩,토끼 심지어 어린 고라니까지 있어 그 중 일부만 슬쩍 갖다 먹어도 고기걱정은 안했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림이 늘어나는 것을 부엉이살림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부엉이의 습성을 빗댄 말이다.
 부엉이는 부부애가 강해 한번 짝 맺으면 평생 함께 살아가는 것은 물론 시시때때로 짝짓기하는 새로도 알려졌다. 다른 새와 달리 혹한의 1~2월에 산란해 번식기가 끝나도 오랜 기간 줄곧 사랑을 나누면서 금슬을 확인한다.

 부엉이는 높은 벼랑에 둥지를 튼다. 기자가 최근 확인한 10여개의 둥지 모두 탁 트인 수십 길 바위절벽에 있다. 천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몸집을 던져 쉽게 날고 또 밖에선 곧바로 날아들기 위한 지혜다.
 전국의 부엉바위,부엉고개,부엉골,부엉산은 부엉이가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터넷상 자유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엔 ‘…경사가 급해 등산객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알려졌다가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올라 투신한 곳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적혀 있다. 국민장의 ’노란‘ 처연함이 눈에 선하고 추모행렬이 아직 줄을 잇는데 백과사전엔 벌써 과거형으로 올라있다. 인생무상이다.

 일명 자살바위로도 불렸다는데, 어쨋거나 부엉이가 살던 부엉이바위서 전직 대통령이 부엉이처럼 몸을 던졌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처럼 말이다.
 수리부엉이의 학명은 ’Bubo bubo‘다. 울음소리서 유래한 학명이 노 전 대통령의 별명인 바보를 연상케 함은 아이러니일까. 부디 자유롭게 날개 펼쳐 훨훨 날길 기원한다. 부보 부보, 바보 바보?.

이상한 봄이 또다시 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목이다. 일종의 랜드마크라 할까.

길을 가다가도 고목이 나타나면 으레 가까운 곳에 마을이 나오고 행여 마을이 없으면 적어도 옛 마을터나 집터가 자리하고 있는 게 우리네 농촌이다.
   그만큼 고목은 우리 농촌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그 자체가 고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부터 고목은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자 휴식을 주던 쉼터요 할아버지의 따스한 정을 기억케 하는 매개체였다.
 고목은 또 자연 생태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니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태박물관이었다.
봄이 되면 참새와 찌르레기,원앙이 날아들어 줄기와 가지에 난 구멍마다 둥지 트느라 요란했고 여름이면 서쪽새 깃들어 밤새 불침번 서던 곳이 고목이다. 또 늦가을 돼 서리라도 내릴라 치면 구렁이,무자치 얼어죽을 새라 밑둥치 구멍으로 속속 기어들고 중턱 나뭇가지 구멍으론 귀염둥이 다람쥐 겨울잠 자러 서둘러 들어가던 곳이 바로 고목이다. 또 겨울이 오면 올빼미 눈 부라리며 썩은 나무구멍 찾아 몸 숨기고 터줏대감 부엉이는 밤새 울며 괜한 아이 겁 주던 곳이 마을어귀 고목이었다. 일년내내 딸린 식구 많아 늘 시끄럽고 사시사철 생명이 머물던 생태계의 텃밭이었다.
 

  그러던 고목이 요즘엔 어떻게 됐나.

봄이 와도 찌르레기,원앙은 커녕 참새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여름철 서쪽새 울음소리 끊긴 지 오래다. 유구한 마을마다 전설처럼 내려오던 고목나무 속 구렁이 얘기도, 겨울밤이면 머리끝을 쭈뼛쭈뼛하게 만들던 부엉이 소리도 추억속 옛일이 됐다.
 나무는 서있건 만 생명의 발길이 무 잘리듯 단절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온갖 생명이 들끓던 고목들이 왜 이처럼 황량해졌을까. 답은 하나,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고목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아버림으로써 생명의 발길을 끊어버린 것이다. 고목의 줄기나 가지에 난 구멍은 새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의 둥지 내지 거소 역할을 해온 중요한 서식환경이다. 참새가 붙박아 살고 찌르레기와 원앙이 날아들며 서쪽새와 올빼미가 찾아든 것도 기실 나무구멍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곳에 엉뚱한 손을 댐으로써 그곳을 찾던 생명들을 졸지에 갈 곳 없는 미아(迷兒) 신세로 만들어 버렸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외과수술이란 미명 아래 전국에 있던 거의 모든 고목의 구멍들을 몰타르와 스치로폼 류로 온통 ‘땜질’한 웃지 못할 처방(?)으로 인해 그곳에 깃들던 생명들로 하여금 집 잃은 설움을 겪게 한 일대 사건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편협한 잣대가 부른 자연파괴 행위다.
 

  수백년을 살아온 고목들은 비바람을 비롯한 모든 자연조건에 적응한 결과로서 가지에 구멍도 생기고 때론 줄기 자체가 텅 빈 채 서 있는 것이 본디 모습이다. 또한 오래된 줄기 가운데엔 죽은 세포가 모여 살아있는 세포를 감싸 보호하는 것이 나무의 섭리다. 그러니 구멍 몇 개 난 들 큰 문제가 안되며 자신의 썩은 구멍으로 인해 죽었다는 나무도 보질 못했다.
 그런데 이같은 자연섭리를 생각지 않고- 순전히 인간의 시각에서- 그것을 도려내고 땜질해 주면 오래 살겠지 하는 단순한 판단이 결국 나무에게도 씻지 못할 생채기를 남기고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꼴이 됐다.

 한쪽에선 인공둥지를 달고 먹이까지 줘 가며 억지로라도 야생동물을 불러들이려 하고 또 한쪽에선 엉뚱한 발상으로 찾아오던 동물마저도 내쫓는 게  우리네다. 전문적인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들으려하지도 않는다.
 산란철 앞둔 참새가 가까운 고목 놔두고 애써 콘크리트 구멍 찾아 기웃거리는 그 이상한 봄이 또다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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