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에 놀란 청명 절기
흔히 도깨비불이라 불리는 인광(燐光) 때문에 두 번을 몸서리치게 놀란 적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은 일로서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어느날 친구 세 명과 함께 이웃마을에 놀러갔다가 늦게 돌아오게 됐는데 그날따라 밤하늘이 칠흑같았다. 다행히 깊은 산길은 아니었으나 5리가 넘는 시골길을 어린아이들끼리 걷는 걸 알았던지 커다란 짐승이 뒤따라오면서 잔뜩 겁을 주었다. 해서 모두가 신발을 벗어들고 걸음아 나 살려라 앞만 보고 내달리는데 한참 뒤 개울 건너편에서 갑자기 파란불이 춤을 추며 나타났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커다란 버드나무 고목에서 별안간 푸른 불빛이 널름거리니 모두가 기겁할 수밖에. 그 순간 우린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양 장승처럼 굳어졌다.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외마디 비명은 커녕 숨까지 멎는 듯했다.
그러길 수십 분, 바람이 잦는가 싶더니 이내 파란불빛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 다들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날 밤 내내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그 일 이후 우린 그 고목 근처도 가지 않았다.
또 한 번은 군대 초년병 시절 겪은 일이다. 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의 한 해안초소에 발령받아 근무할 때인데 그날도 별빛 한 점 없이 무척 컴컴하고 바람까지 불었다. 새벽 한 시쯤 서치라이트 당번이 걸려 혼자 근무하고 있는데 초소 앞바다 수면위로 이상한 불빛이 번쩍거렸다.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서치라이트를 다시 비춰보니 영락없는 불빛이었다. 그것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육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몹시 긴장됐다. 마른침을 몇 번 삼킨 뒤 분대원들이 자고 있는 내부반의 비상벨부터 누르고 중대본부에 무전을 날렸다. “초소앞 11시 방향에서 수상한 불빛이 빠르게 접근중”이라고 숨넘어가듯 보고했다.
자던 분대원들이 완전군장으로 나타나고 순찰나갔던 대원까지 합세해 비상배치됐다. 옆 초소도 난리가 났다. 본부 타격대까지 출동해 조명탄을 터트리며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황당했다. 충청도 촌놈이 바닷물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인광을 수상한 불빛으로 오인해 중대원들을 괜히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그 때만큼 뼈저리게 자연현상을 체득한 적도 없다.
성격은 다르지만 또다른 도깨비불이 있다. 다름 아닌 봄철에 나는 불, 즉 봄불을 일컫는 말이다. 낙엽과 풀은 바싹 말라 있는 데다 바람마저 살랑이니 일단 불이 붙으면 도깨비가 불을 놓듯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순식간에 번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봄불은 여우불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다. 눈에 보여도 끌까 말까한데 보이지도 않는 불이 이리 붙고 저리 옮겨 붙으니 불 가운데 가장 무서운 불이다.
바야흐로 도깨비 봄불이 극성을 부리는 청명 절기다. 온 산야가 메말라 있고 대기마저 건조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공무원들이 나서고 수많은 산불감시요원들이 연일 촉각을 곤두세워도 봄불은 여전히 신출귀몰하다. 맑고(淸) 밝아야(明) 할 절기에 산불 연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청명과 한식, 식목일이 겹친 지난 5일 우린 또다른 도깨비불을 봐야만 했다. 북한이 쏘아올린 장거리 로켓의 화염이 그것이다. 다들 쏘지 말라고 경고했는 데도 어린아이 불장난 하듯 쏘아진 커다란 불덩어리에 전 세계인이 경악했다.
하지만 한반도 남쪽의 우리네보다 더 놀라고 긴장한 곳이 있으랴. 하필이면 일요일까지 겹쳤던 그날 땅에서는 언제 날 지 모르는 ‘그놈의’ 도깨비 봄불 때문에 바싹 긴장하고 하늘에서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놈의’ 불덩어리 때문에 하던 일도 멈췄던 것이 바로 우리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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