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여뭄과 기욺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추석(秋夕)을 한자대로 풀면 '가을저녁'이다. 추석의 유래가 된 중추절·가배(嘉俳)·가위·한가위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한자어로 가을저녁인 추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생각컨대 여물 대로 여문 보름달이 떠오름과 동시에 기울기 시작하는 날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해(日) 다음으로 경외로운 달(月)이 가장 풍요롭고 커다랗게 떠오르는 날이 바로 추석이요, 더 이상 찰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그 둥근달(滿月)이 다시 기울기 시작하는 날도 추석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자연에 감사하고 조상께 예를 올리자는 깊은 뜻이 들어있다고 본다. '여뭄(=참)'과 '기욺'을 함께 헤아린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는 얘기다.
추석의 추(秋)는 본래 가을을 뜻하지만 어원적으로는 '여물다'란 의미를 지니며 저녁을 뜻하는 석(夕) 자 역시도 '기울다' 혹은 '비스듬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런 개연성은 더욱 높다. 해서 종합하건대 추석의 또 다른 의미는 여움(참)과 기욺을 동시에 생각케 하는 특별한 날인 것이다.


이 특별한 날인 추석은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였다.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듯 일종의 추수감사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엔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끔 한다. 즉, 본래의 추석은 가을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차례를 지내는 명절인데 오늘날엔 이 마저도 시기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달의 영향으로 추석이 늦어진 올해만 해도 그렇다. 추석의 본래 의미 대로라면 수확한 오곡으로 제삿상을 차려야 제격인 데 쌀농가 대부분이 수확을 못한 채 추석을 맞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추,밤,사과,배 등 햇과일 때문에 제삿상을 차린 자손들 마음이 덜 죄송스러웠다는 점이다.


인터넷으로 지난 수십년간 추석이 든 날짜를 헤아려보니 대부분 9월초에서 10월초 사이에 들어있었다. 앞으로 20년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농사절기상으로 보아 10월초에 드는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수감사제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9월초에 추석을 맞는 해엔 새파란 벼와 풋대추, 풋밤을 바라보며 제를 지내야 한다. 농법이 크게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기후가 변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석명절과 현재의 농사절기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변한 건 또 있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양태가 많이도 달라졌다. 민족대이동으로 인한 불편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귀향 몇 시간만에 제삿상에 머리만 조아리고 이내 휑하니 떠나는 급하디 급한(?) 귀성객들이 많아졌다. 성묘길에 만나거나 아니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인사와 담소, 술잔을 나누면서 회포 풀던 정경은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마을 단위의 풍습도 그렇다. 씨름대회나 콩쿨대회 같은 건 빛바랜 앨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꿈같은 얘기가 됐다.


대신 마을입구마다 나부끼는 건 어느 어느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총동문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뿐이다. 추석명절을 틈타 옛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우선 고향의 실정부터 생각해 봄이 어떨까. 고향을 지키느라 허리가 굽을 대로 굽은 채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면서도 뼈빠지게 지어놓은 농삿물을 어디다 내다 팔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내고향 농산물 팔아주기 씨름대회나 노래자랑과 같은 화합의 장을 열어보면 어떨까 싶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 옛날 마을행사의 단골멘트를 상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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