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공생(共生)과 기생(寄生)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태계 내에서 곤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천적의 공격을 피해 목숨을 구하는 일과 에너지원의 섭취를 위해 그들 스스로 먹잇감을 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곤충 자체가 이 지구상의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소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범주’를 벗어나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먹히지 않으면 먹어야 하는 것이 생태계의 원리요 법칙이다.

 

그러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천적으로부터 도망쳐야 하고 또 그와 반대로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식물체든 동물체든 자신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것이 숙명이다.

 

그러나 생태계내의 모든 생물들이 오로지 먹고 먹히는 관계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복잡한 관계로 서로 얽히고 섥혀 있는 것이 생태계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공생(共生)과 기생(寄生) 또한 이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는 생태계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즉, 공생과 기생이란 독특한 방법을 통해 먹이를 구하거나 이로움을 취하는 곤충들도 우리 주변에 상당수가 존재한다.

 

먼저 공생을 보자. 공생(共生)이란 ‘서로 다른 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상리공생(相利共生)과 편리공생(片利共生)이 있다. 상리공생은 말 그대로 공생자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로운 관계를 말하며 편리공생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되 어느 한 쪽만 이로운 관계를 의미한다.

 

이렇듯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에 설명하는 기생(寄生)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공생관계에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개미와 진딧물의 관계이다. 진딧물은 뾰족한 입을 이용해 식물체의 수액을 빨아먹은 후 꽁무니에 단물을 배출하는 습성이 있다. 진딧물이 내는 이 단물은 개미의 중요한 먹이가 되기 때문에 진딧물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개미가 모여들기 마련이다.

 

진딧물이 단물을 배출해 내는 이유는 단순히 개미에게 먹이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달콤한 먹이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는 보다 근본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달콤한 수액을 손쉽게 얻어먹게 된 개미들은 그 대가로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 등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적극 퇴치해 주는데 이로써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이로움을 주는 관계, 즉 공생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종은 아니지만 외국의 어떤 불개미는 진딧물의 무리를 아예 자신의 집으로 모셔다가 흙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곳에 진딧물이 살도록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이에 두고 보호해 가며 단물을 얻어먹겠다는 그들만의 심오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곤충 가운데에는 자기 스스로 먹잇감을 구하지 못하고 다른 곤충의 몸이나 알에 기생(寄生)하며 살아가는 얌체족(?)이 있다.

 

곤충의 기생관계는 양측 혹은 어느 한 쪽이 이로움을 취하는 공생관계와는 달리 기생자가 일방적으로 이로움을 취하고 기생을 당하는 쪽(이를 숙주라고 함)은 피해를 입는 관계를 의미한다.

 

기생을 하는 곤충, 즉 기생곤충 가운데에는 맵시벌과 좀벌(이들을 기생벌류라 함), 사마귀수시렁이 등과 같이 곤충류에 기생하는 것들도 있다.

 

 

 

'기생곤충의 벌레혹'

얼핏 보기에는 나무열매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팽나무에 생긴 기생곤충의 벌레혹(알집)이다.(위 사진) 이 벌레혹을 갈라보면 씨앗 대신 기생곤충의 애벌레만 가득하다(아래 사진)./자연닷컴

 

맵시벌이나 좀벌은 하늘소, 사슴벌레 등 다른 곤충류의 알과 애벌레, 번데기에 알을 낳아 그 속에서 자라도록 함으로써 결국 숙주인 하늘소와 사슴벌레 등에게 ‘죽음’이라는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처럼 기생관계를 통해 숙주를 죽게까지 하는 것을 ‘포식기생’이라고 한다.

 

사마귀수시렁이는 이름 그대로 사마귀의 알집에 알을 낳아 거기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사마귀의 알을 먹고 자라게 한다.

 

곤충 가운데에는 식물에 기생하는 것들도 있다.

 

혹벌이란 곤충은 밤나무나 참나무의 잎과 어린 가지에 ‘벌레혹’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의 유충을 키운다. 집주변의 밤나무나 참나뭇가지 혹은 이들 나무의 잎 뒷면에 작은 구슬 모양의 돌기가 무수히 나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혹벌이 만들어 놓은 벌레혹이다.

 

이 벌레혹을 칼로 절단해 보면 그 안에는 희고 둥그스름한 알 또는 애벌레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생곤충의 벌레혹은 구슬모양 이외에도 꽃처럼 생긴 것, 열매처럼 생긴 것 등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한 곤충의 지혜로 볼 수 있다.

 

특히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팽나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벌레혹은 어찌나 나무열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전문가가 아니고는 쉽게 구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의태술(擬態術)’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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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생존전략

대부분의 곤충들은 보호색을 포함한 각종 의태(擬態)와 위장술을 통해 천적의 눈을 따돌리거나 은신처에 직접 몸을 숨김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

 

먹고 먹히는 냉혹한 생태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 보존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천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몸의 색깔과 형태를 갖추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요, 설령 천적에게 노출돼 위험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재빠르게 몸을 숨겨 생명을 부지해 나가는 것이 동물들의 보편적인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얼마만큼 의태와 위장술이 발달해 있느냐가 생존확률을 좌우하는 관건이며, 위험이 닥치면 그것을 얼마만큼 빠르게 감지해 대처하느냐가 종족 보존의 잣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편적인 생존전략과는 반대로 오히려 ‘나 잡아 보라며 유혹하듯이’ 눈에 잘 띄는 화려한 몸 색깔을 하고 겁 없이 몸을 드러낸 채 활동하는 엉뚱한(?) 곤충들이 있다. 이른바 ‘간 큰 곤충들’이 우리 주변에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믿고 그처럼 화려한 체색을 하고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시쳇말로 ‘덜 떨어진, 아니 진화가 덜 된 곤충’은 아닌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게 곤충의 세계다. 도리어 그러한 생각이 커다란 착각임을 일깨워주는 그들만의 비장의 카드가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얼핏 생각해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그들의 화려한 체색과 대담한 행동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숨어있는 것이다.

 

무당벌레의 예를 들어보자. 붉은 계통에 검은 무늬가 있어 다른 곤충들보다 눈에 잘 띄는, 비교적 화려한 체색을 지닌 이 벌레는 주요 먹이인 진딧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활보하듯 버젓이 잘도 돌아다닌다.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것일까.

 

궁금증을 풀어줄 첫 번째 무기는 바로 무당벌레의 타고난 ‘내숭떨기’에 있다. 다시 말해 무당벌레는 ‘죽은 척 하기의 명수’이다.

 

무당벌레는 평상시엔 대담하게 활동하다가도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그 즉시 땅에 떨어져 죽은 척 한다. 날개딱지와 다리를 모두 접은 채, 아니면 날개는 닫고 다리 한 두 개 만 약간 벌린 채 꼼짝 않고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죽은 벌레다. 내가 언제 살아있는 벌레였냐는 듯 내숭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무당벌레의 생존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노리던 천적이 그래도 미심쩍어 다시 건드리면 제 2단계의 방어동작에 들어간다. 즉, 다리관절 사이에서 고약한 냄새와 쓴맛이 나는 액체를 뿜어내 천적으로 하여금 넌덜머리가 나게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화려한 외출’ 뒤에는 그만한 비장의 무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황홀한 ‘유혹’과 ‘내숭’

무당벌레는 화려한 체색을 하고 있어 천적의 눈에 쉽게 띄지만 위험에 부닥치면 즉시 땅으로 떨어져 죽은 시늉을 하는 ‘내숭의 귀재(아래 사진)’이며, 그것도 모자라면 냄새가 고약하고 쓴맛이 나는 액체를 내뿜어 위기를 모면한다, 위 사진은 산수유 열매에 붙어있는 무당벌레의 모습./자연닷컴

 

 

무당벌레와 같이 딱정벌레목(目)에 속하는 길앞잡이는 또 어떤가. 익히 알려져 있는 바 대로 길앞잡이는 곤충계의 최고 멋쟁이라 할 만큼 날개딱지에서 무지개 빛이 도는 게 유난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벌레 역시 일부러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며 천적을 유혹이라도 하듯 시골길 한 복판을 낮게낮게 날아다니며 먹이사냥 하는 습성이 있다.

 

지금이야 포장이 안 된 시골길과 그 위를 팔짝팔짝 나르는 길앞잡이 보기가 고춧대에서 송진 보기보다도 더 어려운 시절이 되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땐 붙여진 이름 그대로 길 가는 이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나그네 보다 꼭 두 세 발짝씩만 앞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던 이 곤충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천적을 지척에 둔 채 약을 올리듯, 잡힐 듯 말 듯 위태로운 날갯짓을 하는 이 곤충은 왜 하필 은신처가 별로 없는 노출된 지역에서, 그것도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화려한 무늬를 한 채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는 걸까.

 

천적이 다가가면 다가가는 대로 일정 거리를 두고 날아오르는 자신의 순발력만 믿고 그러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머리통만한 강한 이빨을 가지고 있는 데다 입을 통해 역한 냄새와 거품이 나는 액체를 내뿜을 수 있는 그 나름의 무기를 믿기 때문이다. 괜한 호기가 아니다. 천적에게 잡히면 이빨로 물어뜯고 그것도 모자라면 입으로 고약한 냄새와 거품이 나는 액체를 뿜어냄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 2중의 생존수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진 설명 ◆곤충계의 멋쟁이 ‘길앞잡이’

길앞잡이는 보호색 대신 오히려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화려한 체색을 한 채 은신처가 별로 없는 곳에 서식하는 ‘간 큰 곤충’이다. 하지만 이 대담함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자연닷컴

 

나방 가운데에도 애벌레 시기에 비교적 화려한 무늬와 체색을 지닌 것들이 있는데 이들 또한 그에 상응하는 종 특유의 방어수단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쐐기나방류들은 겉보기엔 비록 화려하게 보여도 온몸에 나있는 독침은 가히 위력적이다. 쐐기나방 애벌레를 잘못 건드렸다가 눈물이 날 정도의 아픔을 경험해 본 이들은 ‘황홀한 유혹 뒤에 숨겨진 곤충들의 생존전략’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실제로 체험했을 것이다.

 

이렇듯 천적의 눈에 쉽게 띄는 체색 또는 무늬를 지닌 곤충들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대내림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생존전략이 그 속에 내재돼 있기 때문임을 반증해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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