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꽃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찔레꽃 노래다. 원곡은 일제 말기인 1942년 가수 백난아가 처음 불렀는데 훗날 이미자가 가사일부를 바꿔 불러 더욱 유명해진 국민가요다. 뜬금없이 찔레꽃 타령을 하는 이유는 요즘이 바로 찔레꽃 피는 철이기 때문이다. 아까시꽃이 막 지고나면 덤불위로 앙증맞은 얼굴을 내미는 찔레꽃. 그 찔레꽃이 필 때면 한 손엔 찔레순을 또 한손엔 삘기를 뽑아들고 산과 들로 내달리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이 무렵이면 버릇처럼 의문이 가는게 있다. 바로 찔레꽃의 색깔이다. 노랫가사엔 분명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는데 우리 주변에 피는 것은 거의 모두 희거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이다. 그러니 의문이 갈 수 밖에.

우리나라에는 털찔레, 좀찔레, 제주찔레 그리고 도감에도 잘 안나오는 요강찔레 등이 있는데 대부분 흰색 계통의 꽃을 피우며 유독 빨간 꽃을 피우는 종은 국경찔레 뿐이다. 하지만 국경찔레는 보기가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하필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했을까.

찔레꽃 피면 우리의 산과 들은 더욱 요란해 진다. 찔레꽃 가사(3절)에도 있듯 아름다운 찔레꽃 피어나면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는 이리저리 춤춘다. 당시 작사가는 생태달력을 꽤나 알았던 모양이다. 찔레꽃 색깔은 좀 그렇지만.

찔레꽃 필 무렵의 생태달력은 일년 중 가장 부산하다. 우선 찔레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쏘가리 잡는 어부들부터 발에 땀이 난다. 강가의 어부들은 쏘가리의 산란기와 찔레꽃의 개화시기가 같은 것을 알기에 찔레꽃이 폈다 싶으면 알 밴 쏘가리가 이동하는 여울로 내달린다. 일년을 별러온 호기 아닌가. 찔레꽃이 어부들에겐 참으로 기막힌 '알람'인 셈이다.

찔레꽃 피는 시기는 또 뻐꾸기가 날아와 알낳는 시기이기도 하다. 뻐꾸기가 목청돋워 울어재치면 영락없이 찔레꽃이 피는데 이 무렵 뻐꾸기의 행동을 보면 매우 독특하다. 꾀꼬리나 밀화부리 같은 여름철새는 고향인 우리나라로 날아오면 우선 고단한 날개 추스린 뒤 곧바로 둥지 트느라 여념 없는데 뻐꾸기는 되레 노래만 불러제키며 '남의 집' 넘보기에 정신 없다. 이유인 즉슨 뻐꾸기는 둥지를 직접 틀지 않고 다른 새둥지 찾아 알을 낳기 때문이다. 이를 탁란이라 하는데 본능치고는 고약한 심보다.

찔레꽃 필 무렵이면 농촌 들녘도 무척 바빠진다. 절기로는 소만과 망종 사이다. 바지가랭이 내리고 뭐 볼 시간도 없는게 바로 이 즈음이다. 밭둑에 찔레꽃 피고 앞논 참개구리 정신없이 울어제킬 때면 모내기에다 밭일에다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니 흙묻은 손으로 볼일인들 편히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이다. 굽어진 허리 펼 새 없이 방바닥이고 뭐고 등에 대이기만 하면 이내 코고는게 이무렵 농부들이다. 오죽하면 불때던 부지깽이도 거드는 시기라고 했을까.

올핸 봄가뭄이 극심해 농부들이 무진 애를 먹고 있다. 모내기도 서둘러야 하고 보리도 베야 한다. 고구마에다 참깨, 들깨도 심어야 하고 자식들 줄 참외와 수박묘도 이식해야 한다.

풀도 뽑아야 한다. 일거리가 끝이 없다. 그래서 망종(芒種)을 亡終이라고도 한다. 끝을 잊는다는 얘기다.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여 농촌에 뿌리를 둔 도시인들이여 생태달력이 찔레꽃을 피우면 농사달력은 으레 바쁜 농사철이니 대뜸 고향으로 달려가 논배미로 밭뙈기로 뛰어드는 건 어떨는지. 가는길에 시원한 막걸리 받아다 아버지 한잔 삼촌 한잔 따라드리며 FTA다 AI다해 상심한 가슴 달래도 드리고.
 지금 농촌은 (芒種)이다


 옛말에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말이 있다.

또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도 있고 '별 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

모두 망종(芒種) 절기 때 나온 말이다.

망종 때 오죽 바빴으면 부엌에서 불 때던 부지깽이까지 나서서 사람 일손을 돕고, 일 하다가 바지춤을 내리기도 전에 발등에 오줌을 쌌을까.

가뜩이나 짧은 밤 제대로 잠 한숨 못 자고 별 떠 있을 때 일터에 나가 또 다시 별이 떠야 집으로 돌아오는 심정은 또 어떻고….

 

망종은 가시래기 망(芒) 자와 씨 종(種) 자가 합해서 이뤄진 말이니, 말 그대로 가시래기(까끄라기)가 있는 종자를 거둬들이는 철, 즉  보리 수확철을 일컫는다.

예전 경운기는 물론 트랙터도 없이 모든 일을 소나 사람 손으로 해야 했을 땐 보리 수확기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보리의 특성상 제 때 베지 않으면 대공이 쓰러져 손실이 많고 수확하기도 쉽지 않다. 또 보리를 얼른 베어내야 이모작으로 모내기도 하고 콩과 같은 다른 작물들도 심게 된다.

농사란 게 시기를 놓치면 모두가 폐농하게 되니 잠시도 헛눈을 팔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베어낸 보리는 일일이 손으로 타작을 해야만 했으니 일이 끝이 없었다.

볼 일 보고 뭐 볼 시간도 없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이다.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고, 내 일 하다보면 남의 일 해야 하는 품앗이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끊임없이 이어져 일손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芒種을 다른 말로 亡終이라고도 했다.

끝을 잊었다는 얘기다.

 <사진설명>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산골다랑이 논에 늦모내기를 하고 있는 장면. 6월 3일 전북 무주 내도리 입구에서>

 

작가 이문구의 동시 「오뉴월」은 망종 때의 바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주네."

집이야 어찌 됐든 일부터 해야하니까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제 일을 하다가 저녁 늦게서야 만나는 농촌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이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늦잠 자고 일어나면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차려진 초라한 밥상을 혼자서 대해야 했던 그 시절.

집에서만 놀기가 따분해 엄마 아빠가 있는 일터를 찾아가면 바쁜데 왜 찾아와 귀찮게 하느냐고 면박 아닌 면박을 받았던 기억과 함께….

바쁠 땐 있는 집 애들이나 없는 집 애들이나 다 같이 찬밥 신세였으니 끼리끼리 모여 해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게 하루 일과였다.

소꿉놀이에 풀장난 흙장난 하다보면 옷은 옷대로 얼굴은 얼굴대로 온통 시커멓게 돼 까마귀 새끼나 진배없었다.

 

예전의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망종 절기가 돌아왔다.

현충일인 6일이 망종이니 이 날부터 하지(22일) 전까지가 이른바 망종 절기다.

망종 절기를 맞은 농촌은 지금 무척 바쁘다.

예전처럼 보리 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 데다 농사일도 트랙터나 이앙기 같은 농기계가 대신 하니 발등에 오줌 쌀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바쁜 철임엔 틀림없다.

모내기를 아직 못한 곳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모를 낸 곳도 제초제 뿌리랴 비료 주랴 밭작물 손보랴 하루해가 짧다.

담배나 고추 농사 짓는 농가는 더없이 바쁘다.

담배의 경우 제 때에 잎을 따야 빛깔이 잘 나고 고추는 장마철 오기 전에 말목 박아 탄탄히 해놔야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이 참에 한번쯤 고향에 들러 일에 지친 꼬부랑 노인네들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 도리인 듯 싶다.

명절 때만 찾아갈 것이 아니라 부지깽이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요즘 고향을 찾아 함께 농약 치고 고추 말목 하나라도 박는 게 더 큰 보람이 있으리라.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농촌에 들러 '망종'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그 유래와 의미도 일러줘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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