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꽁지가 길면 무척 춥다고 하는데…

 
 얼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널뛰기 실험을 하는 걸 본 적 있다. 두 여성 전문가가 출현한 그날 실험은 사람이 널을 뛰어 얼마나 높게 울라갈 수 있는 가를 확인하는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출연자는 5m를 훨씬 넘게 뛴 것으로 생각된다. 가히 놀라운 높이다.
두 출연자는 그런 실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될 줄 알았더니 해보니까 된다”며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웬 뜬금없는 널뛰기 실험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당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두 출연자의 널뛰는 모습이 마치 올해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땅을 박차고 올라갔다 이내 내려오는가 싶으면 또다시 올라가는 모습에서 거의 일년내내 극과 극을 오가며 이상기온을 보인 올해 날씨가 연상됐던 것이다.


 기실 올해처럼 날씨가 널뛰듯 한 적도 드물 것 같다. 겨울 끝자락에 봄이 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여름 날씨가 이어졌고 또 그런가 싶더니 수은주가 곤두박질쳐 한동안 겨울·봄·여름날씨가 공존하는, 참으로 이상한 날씨가 연출됐다.
 어디 그 뿐인가. 예년 같으면 서늘해질 시기인 처서·백로·추분 절기에 낮기온이 연일 30도를 웃돌더니만 어느날 갑자기 수은주가 떨어져 하루 아침에 반팔차림에서 두터운 겨울옷으로 갈아입게 했고 최근엔 또 다시 이상기온이 이어져 온 나라안을 ‘이상한 패션쇼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람만 어리둥절했던 게 아니다. 보통 5월 중순께 꽃망울을 터트리던 철쭉꽃과 팥배나무가 4월 중하순께 흐드러지게 폈고 6~7월에나 피던 매발톱꽃도 5월초에 꽃을 피웠다.
 극과 극을 오르내리는 수은주와 그에 따른 극심한 일교차, 수시로 내린 된서리 등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생태계에 이상징후까지 나타나 모기와 병해충이 조기 출현하고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지 못하고 일년내내 방황했다.


 농축산물 피해는 또 어떠했나. 벼 수확철인 요즘에 와서야 누런 들판만 보고 대풍이니 떠들고 있지만 지난 일년간 이상기후로 애간장 태운 농축산가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급격한 기온변화로 꿀벌이 떼죽음 당해 가슴 쓸어내렸던 양봉업자들, 산란율이 크게 떨어져 하소연하던 양계농가들, 애써 심은 고추묘가 얼어죽어 두세번 심어야 했던 농부들, 어린 열매가 동해 입어 일년농사 다 망쳤다고 울먹이던 과수농가들…. 이 모두가 ‘기상 쓰나미’로 인한 아픈 가슴들이었다.


 극심한 가뭄은 또 어떠했는가. 예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으로 온 산야가 타들어가 산에서는 버섯 산출량이 크게 줄고 밭에서는 채소 등 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 올겨울 기온이 무척 추울 것이라는 달갑지 않은 전망이 촌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내용인 즉슨 가뭄이 들어 무의 꽁지가 길게 자라는 해는 영락없이 추운 겨울이 온다는 데 올해 무 꽁지가 무척 길게 자란다는 것이다.
 취재 현장서 만나는 노인들마다 그런 전망을 하니, 한편으론 걱정도 되고 또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해 실제 무를 뽑아보니 과연 꽁지가 길다. 언젠가도 언급했지만 자연현상을 보고 일기를 점쳐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본래는 관천망기(觀天望氣)라 하나 필자는 하늘 대신 자연현상을 들어 관연망기(觀然望氣)라 부름)라 생각하니 그 전망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치솟은 물가와 공공요금으로 서민경제는 갈수록 벼랑으로 내몰리는 데 머지않아 ‘황소바람’같은 추운 겨울이 온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나라안이 하도 시끄럽고 어수선해 날씨마저 자꾸만 심통(?) 부리는 것같아 마음이 영 편칠 않다. 언제나 우리 사회에 화롯불 같은 훈훈한 바람이 불어올는지 괜히 하늘만 쳐다봐 진다.
 

청개구리가 몰고온 희우(喜雨) 타는 농심 달랬다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말 가운데 관천망기(觀天望氣)란 게 있다. 하늘을 보고 날씨를 내다보는 것을 일컫는다.

아침 하늘에 무지개나 노을이 생기면 비가 오고 햇무리와 달무리, 새털구름이 생기거나 마파람이 불어도 머지않아 비가 올 징조로 내다봤다. 반면 저녁 하늘에 무지개 또는 노을이 생기거나 하늬바람이 불면 곧 날씨가 좋아질 것으로 여겼다.
하늘만 바라본 게 아니다.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해 날씨를 점치고 그에 대비하는 지혜가 있었다.

대표적인 동물이 청개구리다. 즉, 주변에 청개구리가 나타나 울어제키면 영락없이 비가 온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막연히 비가 온다고 믿은 게 아니라 ‘하루 한나절 안으로 비가 온다’고 믿었으니 꽤나 구체적이다.
뿐만 아니다.

청개구리가 아닌 여느 개구리가 처마밑으로 기어들고 길바닥의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거나 제비와 잠자리가 낮게 날아다녀도, 또 물고기가 물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뻐끔거려도 비가 올 징조로 보고 서둘러 비설거지를 했다.

자연을 바라보고 날씨를 예측한 것이니 ‘관연망기(觀然望氣)’인 셈이다.
이 관연망기가 때론 놀라울 만큼의 정확도를 보일 경우가 있다. 그만큼 잘 맞는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금요일인 19일 아침 일찍 약속이 있어 괴산군 칠성면의 한 어부 집에 들러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마당 한 편의 감나무에서 갑자기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손을 내밀며 인사를 막 하려던 참이어서 우선 짧게 인사말을 주고 받고는 습관처럼 “비가 오려나 봅니다”고 했더니 그 어부 역시 같은 말을 건넨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이 나오자 서로 신기한 듯 눈길이 마주쳤는데 그 어부 한 술 더 떠서 “청개구리가 우는 걸 보니 30시간 안에 비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예측은 그 이튿날 확인됐다. 영락없이 비가 내린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그 어부의 관연망기 대로 30시간 안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옛 어른들이 말하던 ‘하루 한나절’을 구체적인 시간개념으로 바꿔 ‘30시간 안에’ 비가 올 것 같다고 예측한 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그날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20일 오전 8시 발표 괴산 등 충북지역 일기예보는 “강수확률이 오전 20% 오후 60%로 밤부터 비가 올 것”으로 내다봤는데 엉뚱하게도 이른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 그러니 예보를 믿고 주말 나들이에 나섰던 사람들만 비범벅이 됐다.

어쨋거나 이번 비는 누가 뭐래도 타들어가던 들녘과 산야에는 꿀같은 단비였다. 비록 완전한 해갈은 안됐지만 연일 땡볕에 나가 채소밭에 물 주던 농부들에겐 한없이 고마운 희우(喜雨)요 택우(澤雨)였다.
이번 비를 더없이 반가워한 사람들은 보은,괴산,단양,제천 등 송이 산출지역 농민들이다. 한낮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 늦더위에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송이철인 데도 송이가 나지 않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그들이었는데 늦게나마 낮기온도 누그러뜨리고 땅까지 적셔줄 비가 내렸으니 이 보다 더한 감우(甘雨)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시기 적절한 적우(適雨)는 아니었지만 모처럼만에 내린 비를 약비(藥雨)요 복비(福雨)라며 연신 고마워하는 그들이다.

그렇기에 아무쪼록 이번 비로 모든 작물이 풍작되고 버섯 생산량도 늘어나서 더욱 더 얼굴이 펴지길 기대한다.

한가지 더 바란다면 주말께부터 더위가 수그러들어 예년 기온을 되찾겠다는 기상청 전망이 이번엔 정말 맞아떨어지길 기대한다.
거미가 줄을 치지 않으면 비가 온다는데 또 비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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